[청년칼럼] 국가가 시민을 배신한다는 것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입력 2024.12.10. 17:37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먼저 불안에 떨며 밤을 지새운 수많은 우리에게,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따뜻한 위로를 보낸다. 모든 폭력은 나쁘지만, 그중 특히 국가폭력은 개인을 가장 무력하게 만든다. 국가가 나를 배신한다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트라우마로 평생 작동하는지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인, 오월 광주를 통해 확인했다. 사실 뭐 광주뿐인가 제주에서, 부산에서, 마산에서, 곳곳에서 우리는 확인해 왔다.

그러나 12월 3일, 비상계엄령은 한국 사회를 한순간 45년 전으로 되돌려 놨다.

'군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80년 광주가 흘린 피로 쓰였다. 비상계엄이라는 네 글자가 한국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집단적·역사적 트라우마를 남겼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감히 2024년에 비상계엄 이란 단어를 내뱉을 수 있는가. 윤석열은 근대 입헌주의 국가의 기본원칙 '군은 대외적 폭력만을 수행한다'를 전면으로 위배했다. 언제든 군이 대내·대민을 향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다. 명태균, 김건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시민에 대한 배신이다.

여당은 탄핵 반대당론을 결정했다. 3명의 의원만이 표결에 함께 했고, 나머지 105명의 의원은 탄핵안 표결을 거부하고 본회의장을 떠났다. 선거 때마다 투표해달라 호소했던 이들이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당론이 헌법 위에 있는가? 이제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이번 비상계엄으로 민생은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윤석열 정부는 물가 안정에 실패하고 경제 불안정에 대해 이렇다 할 대안이 없었다. 그냥 방치해 온 것이란 평가도 피할 수 없었다. 고용시장도 얼어붙었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취업 정보 사이트 '워크넷'을 이용한 구인 인원이 11월 기준으로 15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 선포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이번 정국으로 국가신용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갈수록 치솟는 물가와 불안정한 내수경제에 더해 구직 단념 청년은 올해 상반기 40만 명 돌파했다. 일터의 죽음은 지척에 널렸고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지는데 정치는 더욱더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필자는 94년생이다. 우리 세대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더는 믿지 않기로 한 세대이기도 하다. 군이 입법부를 장악한 6시간, 수많은 시민들이 흘린 피로 세워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역사가 기록하고 우리가 기억할 것이다.

더하여 우리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안다.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가 얼마나 큰 폭력과 적대, 그리고 혐오를 낳았는지. 그리고 이는 단지 지도자 한 명,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이제 우리는 혐오와 탐욕으로 가득한 사회가 배제해 왔던 이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과 총체적인 무책임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수많은 금희와 동호의 목숨을 앗아갔던, 수많은 시민들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게 했던 그 역사를 우리는 여전히 기억한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역사가 빠짐없이 기록할 것이고, 45년 전 그날처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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