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지구촌 80억명의 조별과제(팀플)로 생각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당장 학기가 시작되면 조별과제를 몇 개씩 해치워야 하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이보다 적절한 비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완전 망했군'이라는 생각도 함께.
조별과제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꼭 대학 수업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을 한데 모아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특히 팀원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어려움은 배로 증가한다. 각자의 사정과 이해가 다른 개인이 늘어날수록, 조율해야 할 것들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80억명이라니. 4~5명의 조별과제도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기에는 충분히 큰 수이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대학에서의 조별과제는 해당 수업의 학점에만 영향을 끼칠 테지만, 기후위기는 인류가 처한 위기이자 개인의 안온한 삶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80억명의 조별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작은 단위로 돌아가보자. 대학에서의 조별과제가 어렵긴 해도 어찌저찌 굴러가는 까닭은, 그래도 '학점'이라는 공통의 이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따라 점수가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즉, 조별과제의 결과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 조에서 성실하지 않았던 조원은 낮은 점수를 받는 반면, 조별과제의 결과가 썩 좋지 않더라도 그 조에서 최선을 다했던 학생은 그 노력을 감안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이는 같은 조의 구성원들이 탐탁지 않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
단위는 달라졌지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조별과제에서도 마찬가지다. 80억명 공통의 이해를 확실히 하고, 기후위기의 영향에 있어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도 공통의 이해는 분명해 보인다. 80억 인구가 서로 다른 지역,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으로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현실은 다르다. 이상 기후가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피해가 80억 인구 모두에게 동등하게 다가가진 않기 때문이다. 폭염이 오면 야외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쓰러진다. 폭우가 오면 반지하 방이 가장 먼저 물에 잠기고, 태풍과 폭설은 농촌의 한 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그 반대편에는 그러한 현상과 무관하게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나 같은 도시민이 있다. 폭염이 오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폭우와 폭설, 태풍으로부터 안전한 거주지와 일터를 가진.
이렇게 보면 기후위기는 전혀 공통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 피해를 온 몸으로 맞을 때, 누군가는 그 피해를 회피하고, 떠넘기며 상쇄하기 때문이다. 과정에서의 공정성은 말할 것도 없다. 기후위기에 가장 책임이 적은 소위 제 3세계 국민들이 기후위기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반대로 책임이 가장 큰 서구 국가들이 가장 작은 피해를 본다는 것도.
조별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려면, 무너진 원칙을 다시 세우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공통의 문제로써 고통은 분담돼야 하고, 더 잘못한 사람들이 더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그로써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가 본인 삶의 문제임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전가될수록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 소수가 사회적 약자들이라면 더더욱. 뻔한 얘기지만, 기후위기에도 그토록 당연한 '정의'와 '공정'이 들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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