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잊혀질 권리는 가능할까

@김꽃비 독립기획자 입력 2024.07.23. 18:06
김꽃비 독립기획자
김꽃비 독립기획자.

천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며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유명 유튜버가 몇 년에 걸쳐 전 소속사 대표에게 폭행과 협박을 당하며 부당하게 일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며칠간 계속 뉴스가 시끄럽다. 웃는 얼굴로 항상 팬들을 챙기고 꾸준히 방송을 이어왔던 그이기에 대중들의 충격이 큰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직접적인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외에도 협박의 빌미가 된 내용을 서로 공유하며 2차 가해를 한 의혹을 받는 일명 '사이버 렉카'들에게 대중들이 느끼는 분노가 더 큰 것 같다. 사이버 렉카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콘텐츠들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누구라도 자신의 미디어 채널을 갖고 그 채널이 돈벌이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콘텐츠는 넘쳐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최대한 끌어모으려면 뭐든 강하고 자극적으로 만들기 쉬워진다.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 사이버 렉카들은 빠르게 성장했다. 사이버 렉카라는 얼핏 들어도 부정적인 어감으로 이들이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대중의 알 권리와 공익적 가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취재한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채널의 구독자수, 클릭수, 좋아요 등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 활동들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자극적인 편집과 악의적인 재해석은 서슴없이 일어나며 매일 어디선가 새로운 피해자가 생겨난다.

이번 협박 사건에서 사이버 렉카 중 한 명으로 지목받은 한 유튜버는 언론 앞에 서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며 피해자의 "잊혀질 권리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잊혀질 권리라는 말이 참 공허하게 들렸다. 애초에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내용은 자신이 정보를 공개하거나 비공개할 수 있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 잊혀질 권리가 아니더라도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 잊혀질 권리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Right to be forgotten' 잊힐 권리, 잊혀질 권리 등으로 불리는 이 말은 정보 주체가 온라인상에서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대한 삭제 및 확산 방지를 요구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 및 통제권리를 뜻한다. 하지만 유명세가 곧 돈이 되는 시대가 오면서 사람들은 '잊히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이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알리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온라인상에 남겨진 나의 로그(log)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고 싶다면? 그것이 가능한 환경에서 우리는 살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밈이 돼 릴스, 숏츠 등으로 온라인에 박제된 각종 자료들을 볼 때면 가끔 두려울 때가 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상이 이렇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분명 어디에선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댓글에서 사람들은 마치 벽에 그려진 우스꽝스러운 낙서를 품평하듯 조롱과 비난을 거침없이 내뿜는다. 희화화된 콘텐츠는 말할 것도 없고, 감동을 가장한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들을 가져다가 자기 멋대로 편집해 만든 것들도 많다. 그들은 과연 어떤 경로로 누군가의 삶이 담긴 이야기들을 마음껏 가져다가 재편집하고 써먹을 권리를 획득한 걸까? 다시 생각해 보면 꽤 무섭게 느껴진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드림 시나리오'에서는 유명세의 명과 암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평범한 생물학 교수였던 폴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유명인이 된다. 사람들은 폴이 자신의 꿈에서 의미 없이 등장할 때는 호기심을 보이며 그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다가 그들의 꿈속에 폴이 악인으로 나타나자 (실제로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폴에게) 노골적인 악의를 드러낸다.

이 영화 속 대중들의 모습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세에서 비롯된 즐거움은 모두가 함께 누렸지만, 그것이 비난이 돼 돌아올 때 오직 모든 화살은 유명인에게만 향해 있다. 감독은 전작인 '해시태그 시그네'에서도 온라인에 업로드 한 자신의 셀피에 '좋아요' 하나를 더 받기 위해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게 하는 현대인의 기괴한 모습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잊혀질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이런 사회 행태에 모든 원인은 '관종'들에게 있으며 그들의 콘텐츠를 이리저리 소비했던 대중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우리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3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