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0주 단위로 계약하는 000입니다'
광주청년유니온에서는 매달 청년 프리랜서 모임을 진행한다. 지난달에 진행했던 프리랜서 모임에 온 A씨가 자신을 소개하며 했던 말이다.
같은 직장에서 7년을 근속했으나 매번 10주 단위로 계약하는 그는 퇴직금도 시간 외 수당도 없다. 당연하다. 10주 단위로 계약하는 프리랜서니까. 같은 직장의 정규직과 몇 배 이상 차이 나는 연봉과 수당, 일은 똑같은데 고용의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는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다.
'고용이 불안정 하다면 단가라도 높여주면 좋겠어요'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 일한 B씨는 N잡러다. 사측의 부당해고 이후에 복직했으나 사측은 B씨에게 기존보다 더 적은 일감을 주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서 납품하는 자영업자이자 사측으로부터 도급계약을 받아 수행하는 프리랜서다. 그는 가끔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고용이 불안정하면 단가라도 높아야 한다. 지난달 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사회적 약자 보호분과가 개최한 플랫폼 프리랜서 간담회에 참석한 당사자들은 플랫폼 사의 수수료 갑질에 대해 털어놨다. 플랫폼 기업들은 프리랜서들을 출혈경쟁으로 몰고 그로 인해 단가는 낮아진다. 더하여 높은 수수료와 수입의 불안정성, 사회보험 적용제외 등은 프리랜서들을 더욱 사각지대로 위치시킨다. 웹 기반의 플랫폼 종사자들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이들은 플랫폼 사의 수수료에 허덕인다.
'나는 예술노동자다'
2020년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갑질, 임금체불 등을 고발했던 내부고발자이자 예술인 C씨는 문제 제기 이후 예술계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지역예술계에선 그에 관한 이야기가 파다하기 때문이다. C씨는 10년간 월 평균 수입이 100만원이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자부심으로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나 작품을 준비하던 도중 지속되는 감독의 갑질과 성희롱 등 노동인권 침해에 저항했고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프리랜서 예술인 5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C씨는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법 위에 문화예술계의 카르텔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정 노동의 최전선에는 청년들이 집중돼 있다.
국세청이 발표한 '2016~2020년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성별·연령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특수고용직 등 비임금 노동자는 2016년 이후로 5년간 189만명으로 급증했다. 이들 중 30세 미만은 54만명으로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천543만원이었고 30세 미만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674만원이었다. 비임금 노동자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금액이다.
MZ세대의 일터와 삶터는 이렇다.
지난달 6일 정부는 '주 69시간 노동'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MZ세대와 이들이 주축이 된 MZ노조를 가장 소통해야 할 파트너로 삼기로 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달 12일 윤석열 정부는 급하게 청년세대 의견 청취에 나선다.
그러나 정부는 비정형·불안정청년 노동자들은 만나지 않았다. 정부가 비정규직, 파견용역직 등 정규직 울타리 바깥 노동자를 만난 건 지난달 24일 청년유니온과의 만남이 유일했다. 노동부가 만남 전날 일방적으로 비공개 회동을 제안하면서 그마저도 공개 비판을 피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청년유니온은 면담 전 근로시간 개편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면담이 비공개로 진행된 데 대한 고용부에 유감을 전했다. 반면 같은 날, 여당 대표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일원, 고용부 사무관 등 청년들을 호프집에서 만났다. 새로고침 협의회는 지난 2월 출범한 신생 단체로 현재 10개 대기업 및 공공기관 노조로 구성돼 있다. 이 자리에 청년유니온, 라이더 유니온과 같은 비정형, 불안정 노동자들은 없었다. 정부의 의견 청취 대상에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없었다.
2020년 3개월 간 주간 58시간을 넘게 일하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27세의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병도 없었던 건장한 남성 청년이었다. 쿠팡에서 일한 지 1년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2017년 엘지 유플러스 해지 방어팀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은 '콜 수 다 못 채웠어'라는 문자를 남기고 스스로 삶을 등졌다. 어디 쿠팡과 콜센터 뿐이랴, 대한민국엔 이미 이와 같은 일터가 널렸다.
에어팟을 끼고 사원증을 목에 건 사무직 노동자, MZ세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그러나 언론은 일하다 죽고, 부채에 허덕이며, 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 사는 청년들은 보지 않는다.
MZ세대 라는 단어에는 보고싶은 청년들만 보려하는 기성사회의 기만이 녹여져 있다.
젊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하지만 젊은이의 노동력은 싼값에 사고 싶어 한다.
이 사회는 우리 세대에게 유독 가혹하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생률은 0.78%로 OECD 국가 중 꼴찌를 차지했다. 인구절벽, 지방소멸 어느 순간부터 위기가 아닌 현실이 돼가고 있다. 매년 2천명의 청년들이 광주를 떠난다. 지자체는 인구정책에 심혈을 기울이고 그 대안으로 복합쇼핑몰 건립 따위를 제시한다. 본질에 가려진 이러한 논의들은 정치를 더 우습고, 냉소하게 만든다.
이것은 '저출생' 이라는 사회현상이 아니다. '낳지 않겠다' 는 사회적 파업이다. 인간답게 일하고 삶을 영위할 기회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우리가 절벽으로 가기 전에, 조금 더 본질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노동법 바깥의 노동자들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과 청년을 생애주기별로 분류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취약계층 청년들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청년 정책이 필요하다.?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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