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사건·사고 결산] ④검·경 비위 ‘사건 브로커’ 파문
지난 8월 한 60대 인사가 검찰에 구속되면서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사건 브로커' 성모(61·구속기소)씨다. 담양 출신으로 알려진 성씨는 수십년간 경찰과 검찰, 지방자치단체, 정치권과 골프 모임 등을 통해 광범위한 인맥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씨는 방대한 인맥을 활용해 사건 무마 청탁과 경찰 승진 인사 등에 개입하며 '사건 브로커'로서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성씨와 연루된 검찰 수사관과 전·현직 경찰관 수십여명이 구속되거나 입건돼 수사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지자체 관급공사 수주,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수사기관의 비위가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된다.
◆"터질 게 터졌다" 사회적 반향
광주·전남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사건 브로커' 사건은 어이없게도 가상자산(코인) 투자사기 피의자인 탁모씨(44·구속기소)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경찰 내부에서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성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를 문제 삼거나 외부에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코인 사기로 수사를 받던 탁씨가 성씨를 통해 사건 무마 청탁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탁씨는 지난 2020년 8월부터 2021년까지 자신의 코인 투자 사기와 관련해 성씨에게 수사를 무마·축소해 달라는 부탁을 하며 총 18억여원을 건넸다.
이 과정에서 탁씨의 사건이 실제로 사건이 무마되거나 축소된 사건도 있었다는 게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성씨에게 청탁한 것이 뜻대로 처리되지 않으면서 탁씨는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탁씨는 성씨와의 거래를 검찰에 제보하기 시작했다. 이후 검찰에서 수개월간 성씨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고 끝내 혐의를 입증해 지난 8월 성씨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얼마를 줬는지도 모를 정도"… 법정서 진술
지난 5일 광주지법 형사 8단독 김용신 부장판사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성씨와 공범 전모씨에 대한 3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성씨의 검경 로비 자금 창구 역할을 한 탁씨 형제 등 3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공판은 혐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성씨의 변호인과 성씨에게 돈을 전달했던 기억을 조목조목 증언하는 탁씨 형제의 대결 양상이었다.
탁씨는 이날 "지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 강남경찰서와 광주 광산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사건의 청탁을 위해 수차례 성씨에게 현금을 전달했다"며 "특히 2020년 12월9일 광주 서구 모 주점에서 성씨가 고위 경찰, 국회의원 보좌관 등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인사비로 1억을 준비하라고 해서 가져다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러던 중 성씨가 '돈을 찔끔찔끔 주니까 일 처리가 힘들다'는 취지로 말을 하면서 10억원을 요구해, 가지고 있던 코인을 현금화해 5만원권으로 5억원씩 2차례에 걸쳐 캐리어에 담아 성씨 차량 트렁크에 실었다"며 "이 돈들은 검찰과 경찰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또 탁씨의 동생도 증인으로 나와 "형이 준 돈을 내가 직접 성씨의 차량에 실었다"며 "수차례 돈을 전달해 언제, 어떻게, 얼마를 줬는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고 진술했다.
특히 탁씨 동생은 "성씨에게 돈을 가져다주기 전 항상 휴대전화로 사진 등을 찍어놨다"며 "디지털 포렌식을 해보면 알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 더 많은 증거가 나올지 주목된다.
◆경찰 분위기 어수선… 쇄신 목소리 고조
현재까지 성씨의 수사·인사 청탁 비위 의혹을 받는 광주지검 목포지청 6급 수사관 심모씨(수사 기밀 유출·편의 제공), 서울청 전 경무관 장모씨(수사 무마), 광주청 전 경정 김모씨(인사 청탁), 전남청 전 경감 이모·정모씨(인사 청탁)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지거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또 광주경찰청장을 지낸 현직 치안감 등 여러명의 현직 경찰 간부가 직위 해제됐으며 전남경찰청장을 지낸 퇴직 치안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검찰은 성씨의 검·경 인사·수사 영향력 행사를 비롯해 지자체 관급공사 수주 비위,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사건 브로커' 사건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경찰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일선 경찰서는 물론이고 광주경찰청, 전남경찰청까지 강제수사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에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은 물론, 끈끈했던 조직력까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 경찰들은 "하루빨리 수사가 마무리돼서 처벌받을 사람은 처벌받고, 경찰 조직도 쇄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시민들은 관련자들에 대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시민은 "공직자들의 비위는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경찰 고위직, 심지어 한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는 청장급까지 비위 행위에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며 "앞으로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성씨에 대한 결심공판은 다음 달 11일 열린다.
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
- 출소 5년 만에 또 교제 여성 살해, 60대 2심도 무기징역 ★★★ 법원 첨부 이미지 살인죄로 복역하다 출소한 지 5년 만에 또다시 교제 여성을 살해한 60대 남성이 2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광주고법 제2형사부(고법판사 이의영·김정민·남요섭)는 7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서 무기징역을 받은 김모(63)씨의 항소심에서 김씨의 항소를 기각,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원심과 마찬가지로 김씨에 대한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유지했다.항소심 재판부는 "살인죄로 복역하고 5년 만에 다시 범행해 사회로 나갈 경우 재범 위험성도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교도소에서 개선 교화의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술 취해 벌인 우발 범행에 불과하다며 책임 회피 태도까지 보이는 점, 인명 경시 태도,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김씨는 지난 4월15일 오전 1시30분께 구례군 내 자신의 여자친구 A씨의 집에 무단 침입하고, 주변 논두렁에서 범행 도구로 마구 때려 제압한 뒤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김씨는 당시 만취 상태에서 4년째 교제 중인 여자친구 A씨가 자신을 무시하며 '관계를 정리하자'는 취지로 말하자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김씨는 범행에 앞서 5시간 전 A씨의 자택 자물쇠를 공구로 부순 뒤 침입했다. 귀가한 A씨에게 폭행을 휘두르다, 도망치는 A씨의 뒤를 쫓아가 살해 범행에까지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특히 김씨는 2008년 제주 서귀포시에서 동거인을 살해해 중형을 선고받아 복역했으며, 2019년 출소해 5년여 만에 또다시 살인죄를 저질렀다.앞서 1심은 "수사 과정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상황에 대해 선별적으로 답변하거나 또는 기억나질 않는다며 회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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