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 잘난 사람들 자기 부족함 몰라, 행동에 늘 성찰 따라야

입력 2025.02.17. 10:37 이용규 기자
방송으로 계엄령 접하고 “미쳤어, 미쳤어“ 외쳐
딸 노벨상 시상식 참석못하나 가장 먼저 떠올라
법만 잘알고 책읽지 않으면 잔인해 독서 중요
법꾸라지 판쳐도 민중들 의식 성장해 희망가져
노벨상 프로젝트는 책읽는 분위기 조성부터

아버지는 딸의 성공이 대견스럽다. 그렇다고 어디에 자랑하지도 않는다. '세계적 작가'의 아버지로서 자랑스럽게 언론에 나서 인터뷰나 강연도 할 법하나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딸도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아버지의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은 것 말고도 '절제된 겸손'도 그랬다. 아버지는 딸이 자신의 문학적 바탕을 이어받아 진정성 있게 세계인을 감동시킨 것이 고맙다. 딸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 모습에서 지독지애(l지犢之愛)를 느낀다. 어미 소가 새끼 송아지를 혀로 핥아 사랑하듯, 비록 자신은 늙어가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자식 걱정과 애정, 사랑이 묻어난다. 무등일보와 한승원(85) 소설가와의 대담은 어렵게 이뤄졌다. 언론 인터뷰가 딸에게 자칫 부담을 주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거절해오다, 12·3비상계엄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본보의 간절한 요청에 한국 문단의 원로로서 대담을 허락했다.(*한승원 소설가는 노벨문학상 탄 아버지 노릇도 힘들다며 웃었다) 한승원 소설가는 국민학교 5학년때 어머니에게 혼나면서 듣고 그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성찰론'으로 말문을 열었다. 한승원 소설가와의 대담은 지난 6일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 해산토굴에서 이뤄졌다.

-선생님의 좌우명인 '성찰론'을 듣고 싶습니다.

▲국민(초등)학교 5학년때 우리 어머니가 화를 내고 매를 때리셨어요. 무슨 일 때문인지는 확실하게 잘 모르겠는데 고집을 부리고 어머니에게 대들었던 가봐요. 제가 대드니 더 힘있게 종아리를 치셨어요. 오후쯤 됐을 때 어머니가 나보고 가까이 오라고 하시곤 회초리질 한 부분을 만지면서 "승원아, 모자란 사람하고, 모자라지 않는 사람하고 어떻게 다른 줄 아냐"고 물으셨어요. 내가 얼른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까 "자기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모자라지 않고, 모자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모자란다. 자기가 모자란 짓을 하고 모자란 말을 하면서도, 모자란 줄을 모르는 사람이 모자란단다. 그러고 모자란 사람들은 늘 영리하다고, 공부 잘한다고 칭찬받고, 1등하고 일류 중학교, 일류 고등학교, 일류 대학가 지도자가 된 이들한테 모자란 게 더 많다"고 덧붙이셨어요, 나는 가방끈 짧은 어머니에게 이 말을 들은 이후 평생 좌우명으로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 따님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의 벅찬 감동과 감격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이자 소설가로서 지난 해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스웨덴 한림원 노벨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으셨을 때 어떠했는지요.

▲그날 신문과 방송사 등 언론사 기자들이 전화로 "딸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식을 아냐"고 물어왔어요. 그거 가짜뉴스 아니냐고 되레 물었죠. 인터넷에서 확인 하니까 정말 그렇더라구요. 스웨덴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후보자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선정했지 않았겠어요.(*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국가 폭력으로 희생당한 비극을 언어의 씨줄과 날줄로 정서적, 서정적으로 아주 그윽하고 아주 아름답고 슬프게 표현해 전세계인에게 울림을 주었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해 12·3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 국회 탄핵안 가결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국이 혼란스럽습니다.

▲어제부터 혹독한 추위가 와서 그런 지 몸과 마음이 더 꽁꽁 언 것 같아요. 군사독재 시절에 우리의 선배들, 가령 함석헌 옹의 경우 셀리의 '서풍의 노래'를 외면서 살아갔다고 해요.(*영국 낭만파 시인 셀리는 그의 시 서풍의 노래 중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는 마지막 구절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 민도,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많이 달라져 더럽고 무서운 세상으로 변하지 않고 그 언저리에서 회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선생님께서는 우리 지역 역사 문제에 꾸준하게 관심을 가졌고, 선생님의 문학적 뿌리를 한강 작가가 이어받아, 노벨문학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 달,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계엄령 소식에 충격이 컸을 것 같습니다.

▲그날 밤 방송을 보면서 "미쳤어, 미첬어, 저, 자식들 미쳤어"라고 했어요. 노벨상 시상식이 12월 10일 예정돼 있어 (한강 작가가)5일 출국 해야 되는데, 만약에 계엄이 성공하면 시상식에 못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비상계엄 생방송 중계를 지켜 보면서 5·18때 동원된 군인하고, 이번에 동원된 군인하고 몸짓이 달랐어요. 5·18땐 악마같은 모습이었는데, 이번엔 사정을 두는 몸짓이 달랐어요. 그러나 윤 대통령은 나중에 경고성으로 계엄을 선포했다고 하나 큰일 날 뻔했어요. 만약 계엄이 성공했으면 국회는 마비되고 비상 입법기관을 만들어 전두환 처럼 장기 집권하려고 했던 것같아요. 실패를 했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정치가 사나우니까 경제도 추락하고 소상공인들은 죽을 맛으로 살아가요.

-인류 문명의 발달에 있어 문학의 역할은 컸습니다. 선생님이 정의하는 문학은 무엇인가요.

▲문학은 삶의 정신과 윤리 문제와 밀접해요. 사람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데, 우리안에 있는 에너지가 악 쪽으로 가면 악인이 되고, 선 쪽으로 나가면 선인이 돼요. 생명체 하나 하나가 깨어나 선 의지로 나아 가는 것이 문제여요. 문학은 폭력이 선으로 순화되는 참다운 삶을 뒤따라가는 거여요. 문학이 그렇습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문학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소설가를 향해, "한심한 영혼아. 너는 돈을 주고 고기·빵·포도주를 사서 먹는 게 아니라 하얀 종이를 꺼내서 거기에다 빵·고기·포도주라고 쓰고 그 종이를 먹는구나"라고 했어요. 그의 눈에 소설가는 어처구니 없고 비현실적인 사람이었어요. 돈을 주고 빵과 포도주를 사서 먹는 사람들이 현실적이잖아요. 그런데 이들이 비현실적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삐뚤어진 영혼을 바로 잡는 게 문학이에요. 책을 읽어야 합니다. 특히 문학을 읽으면 자비로워지고, 종교적 얘기가 아니라도 인품이 바로 잡아져요. 서양 격언에 '법을 잘 아는 사람과 이웃하지 마라'는 말이 있어요. 덕으로 다스리는 것이 무너지면 법치로 가는데, 이들은 죄를 짓고도 법망을 피해 빠져나가는 재주만 보여줍니다. 그래서 법을 잘 알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잔인해요.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살이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잖아요. 자비로워지는 것과 덕치를 하기 위해 애를 쓴 분이에요. 요즘 법꾸라지들은 글쎄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이후 광주시와 전남도 등에서 선생님 가문의 인연을 내세워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외국 여행을 해보면 우리나라처럼 유명한 작가나 시인 문학관을 거푸집처럼 지어 보여주는 데는 없어요. 시인과 소설가가 살았던 집을 개조해 역사적인 현장으로 만들거나 책을 숭상하고 책을 가까이하도록 가르쳐야 해요. 쓰고 사고하고 사유할 줄 아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해요. 지자체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기념관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마지막 세대예요. 큰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1966년 '가증스런 바다'가 신아일보에 당선된 이후 한국 문단에 궤적을 남겼습니다. 준비중 작품은요.

▲지금은 제가 몸이 안좋아 힘들어요. 노인은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지역민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법꾸라지들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우리 민중들의 의식이 현명하게 성장했으니 희망을 갖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간절합니다. 올바르게 사는 것과 올바르지 않은 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늘 성찰하는 삶이 됐으면 합니다. 성찰하는 것은 깨어난다는 것입니다.

대담 및 정리=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사진=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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