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 '12·3 계엄' 단죄···5월이 대한민국을 구했다

입력 2025.04.30. 18:26 유지호 기자
■ 두 번의 계엄 마주한 광주 청년, 민주주의를 묻다 - 프롤로그
1980년 전두환 신군부 ‘광주의 피’ 희생양 권력 잡아
군사력 동원 정치갈등 해결 시도 尹 친위 쿠데타 단죄
헌재, 시민 저항·군경 소극 임무 5월광주 정당성 부여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군인들이 국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2024.12.04. xconfind@newsis.com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지난달 4월 4일 오전 11시20분께 헌법재판소 재판정.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요지를 읽어가던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헌법학자·법조인들로부터 가장 깊은 울림을 줬던 문장 중 하나로 꼽힌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역사성·정당성 확보 차원에서다. 윤 검찰총장 시절 대검 감찰부장을 지냈던 한동수 변호사는 "45년 만에 다시 일어난 친위 쿠데타, 그 역사의 반동에 대해 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이 물리친 그 힘을 기록한 것"이라며 "5·18 민주 호국 영령들이 군인들에게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때 한강 작가를 붙들었던 화두를 떠 올리게 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1970년 광주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를 처절한 고뇌로 몰고 갔던 질문이었다. 국가나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문제 의식을 일관되게 다뤄 온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 준비 과정에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보며 그는 깨달았다고 했다.

정치권의 공통된 평가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목숨을 내놓고 민주주의를 지킨 1980년 광주의 시민들이 있었기에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에 국회로 향하는 장갑차 앞을 가로막은 시민들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최근 출간한 '결국 국민이 합니다'를 통해서다. 이 후보는 "5·18 광주의 계엄이라는 과거가 12·3 비상계엄이라는 현재를 도운 것.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 것이다"며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이렇게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기일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4.04. photo@newsis.com

박찬대 원내대표 겸 대표 직무대행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2차 표결을 앞두고서다. 그는 "44년 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섰던 광주시민들의 용기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 시민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또 다시 자극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헬기를 타고 국회에 나타난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본청 유리창을 깨는 폭력적 장면에서다. 총을 든 공수부대원들이 민간인과 맞서는 모습에, 80년 5월 광주의 악몽이 소환됐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린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는 이듬해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모두가 숨죽이고 엎드려 주저했다. '시위 진압에 공수부대가 투입된다'는 설이 돌면서다.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년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광주 금남로에서 시위대가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광주는 저항했다. 대가는 처참했다. 유언비어는 사실이었다. 광주는 총칼·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해마다 5월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제사 지낸다"는 말이 돌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났다. 직접 피해를 당한 시민은 모두 5천517명에 달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대학생과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최정예로 길러진 공수부대 투입 탓이다. 혹독한 훈련을 받아 온 군인들이 광주에 투입돼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 '서울의 봄'같은 영화 덕분인지 계엄의 비극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1980년과 2024년 두 번의 계엄은 결국 실패했다. 5·18은 갈림길이다. 80년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의 피'를 희생양으로 권력을 잡았다. 5·18이 집권의 발판이 된 것이다. 그 해 9월 이른바 체육관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곧 이어 7년 단임제 개헌 뒤 이듬해인 81년 1월 간선제 대통령에 다시 취임했다. 하지만 간접선거, 비민주적 집권은 정통성 시비를 낳았다. 현재의 좌·우, 지역·계층 간 갈등과 대립의 출발점은 신군부의 집권과정에서 기인했다.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진입하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2024.12.04. photo@newsis.com

올해 5·18 45주년은 각별하다. 진정한 민주주의 회복의 시험대가 됐다. 80년 5월과 달리 권력 찬탈이 아닌,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 등 민주적 절차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엔 45돌을 맞은 5월 18일이 있다. 아직도 내란 종식을 외치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다. 통합과 공동체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배경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과 파면 결정 과정에선 미래 세대들이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 했다. 세대·성 별에 따라 정치·사회적 대립은 격화됐다.

45년 만의 비상 계엄에 대한 공감과 역설. 광주의 청년들은 5·18과 비상계엄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봤을까. 무등일보가 5·18 45주년을 맞아 광주 4개 대학 대학생들이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에게 궁금해 하는 질문들을 토대로 광주·전남지역 2030세대 10명을 그룹 인터뷰 한 이유다.

유지호기자 hwaon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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