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전두환 신군부 ‘광주의 피’ 희생양 권력 잡아
군사력 동원 정치갈등 해결 시도 尹 친위 쿠데타 단죄
헌재, 시민 저항·군경 소극 임무 5월광주 정당성 부여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지난달 4월 4일 오전 11시20분께 헌법재판소 재판정.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요지를 읽어가던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헌법학자·법조인들로부터 가장 깊은 울림을 줬던 문장 중 하나로 꼽힌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역사성·정당성 확보 차원에서다. 윤 검찰총장 시절 대검 감찰부장을 지냈던 한동수 변호사는 "45년 만에 다시 일어난 친위 쿠데타, 그 역사의 반동에 대해 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이 물리친 그 힘을 기록한 것"이라며 "5·18 민주 호국 영령들이 군인들에게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때 한강 작가를 붙들었던 화두를 떠 올리게 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1970년 광주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를 처절한 고뇌로 몰고 갔던 질문이었다. 국가나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문제 의식을 일관되게 다뤄 온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 준비 과정에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보며 그는 깨달았다고 했다.
정치권의 공통된 평가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목숨을 내놓고 민주주의를 지킨 1980년 광주의 시민들이 있었기에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에 국회로 향하는 장갑차 앞을 가로막은 시민들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최근 출간한 '결국 국민이 합니다'를 통해서다. 이 후보는 "5·18 광주의 계엄이라는 과거가 12·3 비상계엄이라는 현재를 도운 것.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 것이다"며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이렇게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찬대 원내대표 겸 대표 직무대행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2차 표결을 앞두고서다. 그는 "44년 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섰던 광주시민들의 용기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 시민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또 다시 자극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헬기를 타고 국회에 나타난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본청 유리창을 깨는 폭력적 장면에서다. 총을 든 공수부대원들이 민간인과 맞서는 모습에, 80년 5월 광주의 악몽이 소환됐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린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는 이듬해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모두가 숨죽이고 엎드려 주저했다. '시위 진압에 공수부대가 투입된다'는 설이 돌면서다.

광주는 저항했다. 대가는 처참했다. 유언비어는 사실이었다. 광주는 총칼·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해마다 5월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제사 지낸다"는 말이 돌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났다. 직접 피해를 당한 시민은 모두 5천517명에 달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대학생과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최정예로 길러진 공수부대 투입 탓이다. 혹독한 훈련을 받아 온 군인들이 광주에 투입돼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 '서울의 봄'같은 영화 덕분인지 계엄의 비극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1980년과 2024년 두 번의 계엄은 결국 실패했다. 5·18은 갈림길이다. 80년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의 피'를 희생양으로 권력을 잡았다. 5·18이 집권의 발판이 된 것이다. 그 해 9월 이른바 체육관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곧 이어 7년 단임제 개헌 뒤 이듬해인 81년 1월 간선제 대통령에 다시 취임했다. 하지만 간접선거, 비민주적 집권은 정통성 시비를 낳았다. 현재의 좌·우, 지역·계층 간 갈등과 대립의 출발점은 신군부의 집권과정에서 기인했다.

올해 5·18 45주년은 각별하다. 진정한 민주주의 회복의 시험대가 됐다. 80년 5월과 달리 권력 찬탈이 아닌,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 등 민주적 절차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엔 45돌을 맞은 5월 18일이 있다. 아직도 내란 종식을 외치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다. 통합과 공동체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배경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과 파면 결정 과정에선 미래 세대들이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 했다. 세대·성 별에 따라 정치·사회적 대립은 격화됐다.
45년 만의 비상 계엄에 대한 공감과 역설. 광주의 청년들은 5·18과 비상계엄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봤을까. 무등일보가 5·18 45주년을 맞아 광주 4개 대학 대학생들이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에게 궁금해 하는 질문들을 토대로 광주·전남지역 2030세대 10명을 그룹 인터뷰 한 이유다.
유지호기자 hwaon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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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부터 5·18까지···광장에서 재현된 시민 저항의 역사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가결되자 국민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12·3 비상계엄은 5·18민주화운동 등 민주주의의 역사적 경험이 시민들의 내면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계기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당시 국회와 광장으로 향했던 시민들의 발걸음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기억'이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위기의 순간, 섬광처럼 번쩍이는 5·18의 기억이 작동한 것"이라며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지키려 했던 국가, 그리고 2024년 12월 시민들이 다시금 지켜낸 민주주의는 결국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다"고 설명했다.우리 사회에 내재된 역사적 기억이 위기의 순간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는 "4·19, 5·18, 6월 항쟁, 촛불혁명, 그리고 12·3까지 이어지는 시민 저항의 계보가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라며 "이 같은 연속적 시민 항쟁의 역사 덕분에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덧붙였다.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문에 담긴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에 대해 김 교수는 "그들 또한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역사적 교훈 앞에 스스로를 절제한 셈"이라고 평가했다.그는 현재 한국 사회가 '후기 파시즘' 시대를 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국가 세력 척결'이라는 언어를 대통령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이에 동조하는 담론이 형성됐다는 사실은 권위주의 문화가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동시에 파시즘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모순 속에 있다"고 말했다.문제의 해법으로 그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교육 체계의 줄 세우기, 등수 경쟁, 승자 독식 구조는 학생들에게 '지배와 복종'의 논리를 삶의 질서로 내면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김 교수는 "민주주의는 제도 이전에 태도의 문제이며, 일상에서 민주적 사고와 태도를 기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헌법은 단순한 법적 문서를 넘어, 사회가 공유하는 기억과 가치를 담는 상징이며, 5·18은 그 정신적 근간에 놓인 사건이라는 배경에서다.김 교수는 "학교와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적 감수성을 기르고 확산시키는 공간이 돼야 한다"며 "시민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연대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고 조언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 · "후기 파시즘의 시대, 경쟁 아닌 민주교육 전환해야"
- · "5·18과 12·3, 국가훼손 맞서 시민들이 국가 지킨 것"
- · "5·18이 없었다면, 12.3 비상계엄 때 무슨일이..."
- · 엇갈린 정치 지형, 젠더·세대 갈등이 만든 '감정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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