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률의 '세상읽기'] 그것은 보수가 아니다.

@홍덕률 (전) 대구대학교 총장 입력 2025.01.20. 17:47
홍덕률
(전) 대구대학교 총장

불과 50여일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모범 민주국가였다.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에 성공해 개도국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그 위에서 BTS와 송강호, 한강을 자랑하는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섰다.

그 대한민국이 하룻밤 사이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12.3 비상계엄으로였다. 국회와 선관위에 무장 군인이 들이닥친 것이다. '포고령1호'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자 반헌법 자체였다. TV로 지켜보던 국민은 경악했다. 이후 수사를 통해 밝혀진 내란 설계도는 눈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무자비했다. 그제 새벽, 윤석열은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다. 사필귀정이었다.

380년 전 영국의 찰스1세와 230년쯤 전의 프랑스 루이16세가 떠올랐다. 모두 의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다 혁명을 불러왔고 결국 처형된 전제군주들이었다. 비슷한 예는 우리에게도 있었다. 1972년 10월 비상계엄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영구집권을 꿈꿨던 박정희와 12.12쿠데타, 5.17내란으로 독재체제를 구축했다가 후일 내란수괴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두환이다. 모두 비극의 주역들이었다.

그날 새벽 막아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40-50년 전의 유신 혹은 전두환시대로 퇴행할 뻔한 것이다. 소름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교적, 경제적 피해도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2기 트럼프 정부의 출범도 손놓고 바라봐야 했다. 국격도 급추락했다. 서민 생계는 최악이고 국민의 일상도 심각하게 망가졌다. 많은 국민이 불면증, 스트레스, 우울-불안증세를 앓았다.

그 혼란과 공포를 뚫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천행이었다. 지난주, 윤석열의 체포와 구속으로부터였다. 12.3 계엄부터 43일, 47일만의 일이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의 급추락을 멈춰세운 계기들이 두차례 더 있었다. 12.4. 새벽 1시,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것이 첫째였고, 열흘 뒤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것이 두 번째였다.

야6당의 신속한 대응이 주효했지만 실은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세 차례 모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의 정의로운 분노와 용기가 나라를 구한 것이다. 특히 국회에 진입하던 무장 군인을 온몸으로 막아선 시민과 한남동 관저 앞의 '키세스 시위대'는 세계에 큰 감동을 주었다. 진보 시민이거나 특정 정당의 지지자들이 아니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자유와 인권과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성장한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은 지금까지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국민 앞에 사죄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12.3 내란을 강변하고 있다. 탄핵도 체포도 구속도 모두 불법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의 법 집행에도 불응하고 법원 판단에도 승복하지 않았다. 정치적,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한 말도 허언이 됐다. 심지어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비상대권이 정당한지 심사할 능력이 없다고까지 했다. '나는 법 위에 있다', '짐이 곧 국가다' 식의 전제군주적 발상이다. 최소한의 논리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거짓과 궤변과 책임 떠넘기기로 가득했다. '체포의 체자도 꺼내지 않았다', '경고용 계엄이었다', '포고령 1항은 국방부장관이 잘못 베낀 실수였다' 등은 하나의 예에 불과했다.

법과 논리를 떠난 그는 프레임전환에 승부를 걸었다. 정치적 반대세력과 비판적 언론을 반국가세력, 종북세력으로 악마화하면서 자신은 정당한 비상대권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했다. 계엄군에 의해 짓밟힐 뻔한 야당이 오히려 내란세력이라고 했다. 적반하장의 절정이었다. '민주공화국 국민 대 12.3계엄세력', '21세기 상식 대 반헌법'의 간명한 구도를 보수-진보의 진영대결, 여야간 정쟁으로 뒤틀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 극우 선동까지 더하고 나섰다. 고무된 탄핵반대 시위대는 폭동으로 변했고 급기야 사법부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법원을 습격해 파괴하고 판사에게 테러 위협을 가한 것이다. 민주주의 근간에 대한 야만적 폭력이었다. 기자와 경찰들도 무차별 폭행당했다. 윤석열과 그의 변호인 그리고 전광훈 등의 내란 동조세력이 사실상 부추긴 결과라 할 수 있었다. 국가는 두동강나고 국민 가슴엔 피멍이 들었다. 12.3 내란에 이은 2차 내란이고 또한번의 국가 망신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 하나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여당은?' '집권당이면서 보수당인 국민의힘은 이 비상한 국가위기 상황에서 어떤 존재였는가?'

몇가지만 복기해 본다. 국민의힘의 대부분 의원들은 12.4. 새벽 1시, 국회 계엄해제 투표에 불참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과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과오였다. 엎드려 사죄해야 마땅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을 따라 '계엄불가피론', '탄핵부당론'을 밀어붙였다. 두차례의 탄핵투표에 불참했고 윤석열 체포도 반대했다. 그 과정에서 한동훈대표는 쫓겨났고 김상욱, 김예지 의원 등은 탈당을 강요받았다. 무려 45명의 의원들은 한남동 관저 앞에 나타나 체포영장 집행을 규탄했다. 5선의 윤상현의원은 탄핵반대 집회를 주도하던 전광훈에게 90도 인사를 했고 김민전 전최고위원은 백골단을 국회에 끌어들였다.

국민의힘은 주요 국면마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을 비호했던 것이다. 윤석열의 거짓과 궤변, 극우선동까지 그대로 쫓아했다. 법원난입 폭동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다. 사실상 부추긴 의원까지 있다. 윤석열과 함께 입버릇처럼 되뇌던 '자유'와 '법치주의'와 '공정'의 가치에 관심없다는 뜻으로 읽혔다.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물론, 집권당으로서 갖춰야 할 품격까지 스스로 내버렸다. 당연히 계엄옹호당, 내란공범당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래서는 안된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결단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반헌법과 반법치주의, 반지성과 거짓, 폭력 난동 등과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여기는 상식적인 국민과 싸우려 해선 안된다. 전광훈이 목사라고도 기독교인이라고도 할 수 없듯이 윤석열 역시 보수 가치의 구현자, 헌법수호 의지를 갖춘 국가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권력욕에 눈멀어 전광훈과 윤석열의 손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식의힘은 못되더라도 궤변의힘, 선동의힘이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국민의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란의힘, 극우의힘, 난동의힘이 되면 안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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