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관용구 '왝더독'(wag the dog)은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이다. 어원학적으로 '개를 흔드는 꼬리'(the tail wagging the dog)라는 문학표현이 축약돼 '왝더독'이 됐다. 웹스터 사전은 '강력하거나 본질적인 어떤 사안이 덜 강력하거나 덜 중요한 부차적인 것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이라고 풀이한다. 경제계에선 주식 선물(先物)이 현물 시장을 크게 흔드는 걸 말한다. 현물 거래 위험을 보완하려고 선물시장을 만들었는데 그 '파생상품'이 오히려 본 시장을 흔들어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개가 꼬리를 흔들어야 정상이지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드는 상황은 아무래도 당혹스럽다. 주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 국민 눈 돌리기 군사 작전
정치 용어로서 '왝더독'은 1997년 같은 이름의 영화로 유명해졌다.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니로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영화 첫 장면은 넌센스 퀴즈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댔을 것이다" 국민에게 지탄받아 마땅한, 창피스러운 성범죄를 저지른 미국 대통령이 황당무계한 '전쟁 사기 쇼'를 벌여 국민을 현혹하고 위기를 피해 간다는 이야기다.
재선을 노리던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을 온 걸스카우트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터졌다. 선거일까지 딱 12일 남은 상황. 다급해진 대통령실 참모들은 스핀닥터(홍보전문가)의 조언을 구한다. 나온 대책이 사람들에게 생소한 알바니아와의 '가짜 전쟁' 만들기. TV에 폭격기와 군 병력 이동 상황이 긴급 보도된다. 앵커는 국민 애국심을 강조하는 멘트를 날린다. 여당은 국가 비상시기에 군 통수권자 대통령의 리더십이 손상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할리우드 제작자까지 끌어들인 이 사기극은 그러나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섹스스캔들을 온전히 잠재우진 못한다. 스핀닥터는 급기야 가짜 전쟁영웅을 만들어내고, 눈물 빼는 귀환과 죽음까지 그린 2차 스토리로 국민의 눈과 귀를 더욱 가린다. 이제 피 끓는 애국심만 장착된 민중에겐 본질인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은 그냥 사소한 일일뿐이다. 이슈 돌리기 작전으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제2기 시대를 화려하게 연다. 이 영화로 '군사 작전을 벌여 부정적 정치적 관심을 돌리는 행위'가 '왝더독'의 사전적 정의 중 하나로 정리됐다.
# 왝더독 친위쿠데타 벌써 40일
어떤가. '왝더독' 줄거리를 읽으며 혹 기시감을 느끼지 않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서슬 퍼렇게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 군사 작전을 벌인지 벌써 40일이 넘었다. 말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침 바르며, 실제론 총구를 들이대고 국가를 아예 탈취하러 나선 그다. 국회를 무력 해산하고 국민의 낱낱 자유와 기본권, 일상을 앗으려고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이 가능하게 만들려던 장본인이다. 실체도 불분명한 '반국가세력이 대한민국 체제전복을 획책'한다며 요인 암살 등 특수전 군인을 국회와 선관위에 보내고 법관 언론인의 체포도 실행 직전까지 갔다.
이 군사 작전을 실행하기 전 그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여론은 70%를 웃돌고 있었다. 긍정 여론은 20% 초반 선에 머물렀다. 브로커 명태균 씨와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결탁해 정치를 왜곡 타락시켰다는 증거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기 직전이기도 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부정부패와 안하무인 국정 개입, 인사 농단 등 종합스캔들은 이제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짓물러져 있었다. 야당 주도 특검법의 국회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 모든 약세 국면을 한꺼번에 쓸어 엎으려 왝더독 전략의 친위쿠데타, 내란을 시도한 것이란 분석이 지금도 유력하다.
# 이젠 대놓고 내전(內戰) 선동
어쨌거나 권력의 무한 확장을 꾀한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무위로 돌아갔다. 군과 경찰을 온몸으로 저지한 민주시민과 헌법에 정한 절차대로 헌정 파괴 시도를 막아낸 국회의 결기 덕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초법적 쿠데타의 주역, 내란수괴는 죄의 대가를 받고 무대에서 사라졌어야 옳다. 그것이 정의고 법치며 국가 질서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그러지 못하고 있다. 법의 머리 꼭대기에 선 대통령은 관저에 꽁꽁 숨어 철옹성 요새를 쌓았다. 그리고 다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2차 왝더독 전략을 구사한다.
그는 영장에 의한 체포 등 합법적 공권력 집행에 이빨을 드러내며 되레 위법 불법이라고 삿대질한다. 관저 앞에 모인 태극기부대엔 자신을 지켜달라고 애걸하며 아예 내전을 부추긴다.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며 '여러분과 함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편지도 썼다. 정작 대한민국이 위험해진 쿠데타 본질은 '평화적 계엄'이란 말장난으로 호도한다. 자신의 위법 불법은 가리고 법원 검찰 경찰과 헌법재판소에 대고 법을 지키라며 큰소리를 친다.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윤 대통령 체포야말로 내란'이란 말 같잖은 소리도 거리낌 없이 지른다. 부차적 곁가지를 왜곡하고 부풀려 아예 문제의 본질을 희석하려는 전형적 물타기, '왝더독' 작전이다. 주객이 뒤바뀐 것이며 한편으론 적반하장, 도둑이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격이다.
# 하다 하다 백골단까지
여당 국민의힘의 행보도 이에 못지않다. 처음엔 대통령의 헌정 파괴에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더니 이젠 완전히 그편을 들고 나섰다. 새해 들어 슬로건을 '국민 기만, 사기 탄핵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바꿔 걸었다. 당 회의실 전면에 격문을 붙였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면 바로 이 문구가 뜨게 해놓았다. 체포 구속 수사는 물론이고 법절차에 맞게 대통령직에서 파면하는 것(탄핵 인용)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기세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만 해도 가당찮은데 최근엔 독재시대의 망령, 백골단까지 불러와 대통령을 지켜내겠다고 설쳐댄다. 그것도 강단에서 민주주의와 여론을 가르쳐온 대학교수 출신이 전면에 섰다. 의원들은 태극기부대 앞에 나가 굽신거리고 극우 유튜버들에게 잘 보이려 아양을 떨고 있다. 정말로 온갖 꼬리와 깃털이 나서 대한민국이란 민주주의 헌정질서와 공동체의 몸통을 흔들고 치고 찌르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셀프쿠데타의 우두머리 윤이 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주객이 뒤바뀐 상황은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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