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한 해를 보내며 다시 쌓인 책들을 묶는다. 주로 시집들이다. 안동의 피재현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도서관에 보낼 예정이다. 며칠 전 문학 행사장에서 그를 만나 책이 꽤 쌓였다고 얘기했더니, 새해 벽두에 짬을 내어 우리 집에 와서 책을 싣고 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내게 온 많은 시집들이 수차 그리로 보내졌다. 보내놓고는 또 그 책들을 뒤적일 필요가 생기면 그리로 가서 베끼거나 빌려오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읽은 그 책들을 읽기를 바라기도 한다. 인터넷 이용의 일상화로 종이책의 관심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세계를 향한 시선이 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기에 그러한 바람을 갖는 것일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사람들은 새삼 우리 문학을 돌아보게 되어 서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권에는 그녀의 소설들이 차지하지만, 그런 가운데 이를 계기로 종이책들에 대한 기대를 새롭게 인식, 종이책에 대한 새삼스러운 조우를 경험했다는 이들도 꽤 있는 듯하다. 한 문인은 "책을 처음 구매하는 건 비행기 표를 구하는 것이고 첫 장을 넘기는 건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입구를 넘어서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과도 같다"고 책을 여행과 비교하여 말했다. 책읽기의 긍정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실 책의 전성기는 인터넷이 보편화된 20세기 후반을 정점으로 사실상 끝났다고 말해진다.
책으로 전달되던 지식이 이제 디지털 정보로 바뀌어서 누구에게든 '마구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성인 1인당 연간 책 구매비가 채 3만 원이 되지 않는다는 통계로 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새해에는 모처럼 책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살려 보다 많이 책을 읽기를 권하는 마음은 어떤 심사일까? 비록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가진 책들을 '버리는' 모순을 내 스스로 가지면서도 말이다.
#신발
신발을 새로 샀다. 접힌 부분들이 헤어져 너덜너덜했다. 뒷굽이 한쪽으로 경사지게 닳아서 걸을 때마다 뒤뚱거리는 기분이었다. 마침 한 소도시를 지나다 보니 가게 정리로 신발을 '대폭' 할인하여 판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서 들어갔다.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그 안에서 신발들을 고르고 있었다.
신발을 사선 바로 신고, 헌 신발을 버렸다. 돌아오면서 버린 신발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들었다. 내가 끌고 왔던 기억들과 이름들이 그렇게 내버려지는 게 아닌지 반성이 되기도 했다. 올해 내가 버리고, 떠나보냈던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밀려오기도 했다.
한편, 며칠 전에는 내가 속한 문학단체 소속 회원인 문우가 몇 년째 식물 상태로 투병하고 있어서 그 쾌차를 비는 성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가 마련됐다. 평소 애지중지하던 걸 내놓아야겠다며 서재를 뒤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잖을지 몰라도 내겐 소중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걸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심심할 때 소나무 옹이로 깎아 만든 새 두마리와 수채화로 널리 알려진 이경희 선생의 소품 그림 한 점을 챙겼다. 바자회는 성황이었다. 저마다 손때가 묻거나 애착이 가는 물건들을 내놓았다. 모두 의미가 있고,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또 회원들이 기꺼이 사서 챙기는 것이었다. 바자회에 임하는 회원들의마음이 또박또박 짚여졌다. 그들이 내놓은 것들은 못 써서 '버린' 게 아니라 원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것이며, 우리의 '곁'을 지키기 위한 지극한 연민의 정을 드러낸 것들이기
도 했다. 그렇게 모인 성금은 바로 환자의 가족들에게 전달됐다. 이 바자회로 인해 올 송년이 새삼 따뜻하게 되돌아 보인다.
#촛불
연말연시가 촛불로 일렁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및 탄핵을 계기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새삼 촛불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촛불집회는 시위·집회 문화의 한 종류다. 비폭력 시위 방법이기도 하다. 1974년 9월 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주관한 시국기도회가 한국에서 일어난 첫 촛불집회로 꼽힌다. 이후 촛불은 수시로 밝혀졌다. 한국 사회가 그만큼 밝혀야 할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 당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의 기자 '앙마'가 추모의 촛불을 켜자는 주장을 한 것에서 다시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는데, 특정 단체의 주도가 아닌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으로 촛불집회가 진행된 최초 케이스로 알려지고 있다.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가 촛불로 밝혀졌다. 이 움직임은 전국 대도시로 번졌다. 진보, 보수 할 거 없이 많은 시민이 참가했다.
그러한 진영론의 무너짐이 국회의원들과 언론들을 크게 움직였다. 그리하여 대통령의 탄핵 소추와 가결 후 파면, 새로운 대통령 선출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평화적 방법을 통한 대혁명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번 촛불집회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도화선이 됐고, 시민들의 빠른 대응이 이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 작용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집회에서 쓰이는 촛불은 불이 꺼지거나 촛농이 흐르지 않게 종이컵으로 받침을 해 놓은 형태가 대세였다. 최근 들어서는 배터리로 켜는 LED 촛불도 많아졌다. 다수의 시민이 촛불 대신 팬라이트 응원봉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새로운 모습도 보인다. 민중가요와 K-POP이 뒤섞이는 등 시위가 콘서트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분노와 슬픔이 깃들어있지만, 춤추고 노래하면서 구호를 외치는 축제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20~30대가 주류를 이루는 등 세대교체 현상을 보이는데, 친구와 연인들이 함께 하면서 거꾸로 가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애쓰고 있는 모습들이 미덥게 여겨진다.
송년을 밝히는 이런 촛불들로 우리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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