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지방소멸'이란 말을 쓰지 말아야 하나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10.15. 07:35
강준만(전북대 명예교수)

어느 심리학자가 남자 한 명을 길 모퉁이에 세워놓고 텅 빈 하늘을 60초 동안 쳐다보게 하는 실험을 했다. 대부분의 행인들은 그냥 지나쳤다. 다음 번엔 다섯 명이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했다. 길을 가다 멈춰 서서 빈 하늘을 응시한 행인은 이전보다 4배 많아졌다. 15명이 서 있을 땐 길 가던 사람 가운데 45%가 멈춰 섰으며, 하늘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무려 80%가 고개를 올려 하늘을 쳐다 보았다.

1968년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이른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의 원리를 밝히기 위해 실시한 실험이다. 이 원리는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그걸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회적 증거'는 이젠 상식으로 통할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언론에겐 딜레마 상황을 유발한다. 사회고발의 역효과 때문이다.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정보에 접하게 되면, 그런 '대세'에 따르려는 사람들이 늘기 마련이다.

언론의 서울 강남 보도를 보자. 높은 집값은 물론 사교육비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기사들이 자주 양산된다. 특히 강남 출신들의 서울대 진학률이 매우 높다는 걸 밝히면서 그걸 사회적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기사들이 많다. 물리학자 김대식은 (2014)이란 책에서 그런 기사들에 대해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

"사람들이 강남에 있는 학원으로 더 몰리게 됐어요. 전세를 얻어서라도 기를 쓰고 학원 주변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생긴 거예요. 강남 학원 가면 점수가 오른다는 걸 오히려 선전해준 셈이죠. 잘사는 집에서 교육비를 열배 쓴다고 진보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해요. 부잣집에서 교육비를 더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래서 어쩌라는 말입니까. 그런 기사는 가난한 집 애들의 공부 의욕을 꺾어요. 진보언론 기자들이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기 때문에 자기 애들은 학원 잘 보내면서 가난한 아이들 마음만 아프게 하잖아요! 진짜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쓴 기사가 아니에요."

그런데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기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쓰더라도 모든 종류의 사회고발 기사는 그런 부작용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고발기사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그건 드라마건 책이건 모든 종류의 사회고발 행위가 안고 있는 숙명이다. 서울대 출신의 고위직 독과점을 비판한 나의 책 (1996)는 "서울대 출신이 그토록 많이 한국사회 요직을 장악했다니, 내 자식은 꼭 서울대에 보내야겠네!"와 같은 의도하지 않은 반응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사회고발을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거야말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016년 어느 지식인이 '전라도 혐오'를 비판하는 신문 칼럼을 썼다. 혐오를 비판하기 위한 좋은 뜻으로 쓴 글이었지만, 이 칼럼엔 다음과 같은 비판적인 댓글이 달렸다. "누가 전라도를 혐오하는가. 국민들이 전라도사람을 혐오한다고 떠들어대는 당신같은 사람들 때문에 전라도 사람들이 혐오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고장이고 우리 국민들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전라도 사람들, 누가 그들을 혐오한다는 말인가. 지난 과거의 상처를 들먹거려서 좋을 일 하나도 없다. 소위 지성인을 자처하는 분들, 꿈에라도 전라도를 혐오한다는 그 잘못된 인식을 떠올리지 마세요."

이 또한 '사회적 증거'의 부작용에 대한 경계이자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급기야 '지방소멸'이라는 말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졌다. 올 3월에 을 출간한 충북대 명예교수 박진도는 "정작 '지방소멸'로 가장 커다란 고통을 당하는 지역민들은 '지방소멸'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조차 싫어한다"며 "'지방소멸'은 그곳에 살고 있는 지역민을 무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고 비판한다. 그는 오히려 문제는 '지방소멸 팔이'라고 했다. "'팔이들'은 누구인가. 첫째로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다. 자기 지역구 돈을 더 끌어오는 것이 목표다. '우리 동네 지역소멸하는데 돈을 더 줘'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언론사들, 단체장들, 학자들도 숟가락을 얹고 재미를 보는 것이다."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는 (2024년 10월 1일) 칼럼에서 "'지방소멸'이란 말이 청년이 줄어드는 지역 현실을 묘사하며 대안을 찾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방의 불안을 가중시켜 인구유출을 부추기는 역설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방소멸이란 말을 아예 쓰지 말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박진도와 하승우의 비판은 지방소멸이란 말이 안고 있는 부정적인 면에 대한 경고로 이해하는 게 옳다. 앞서 지적했듯이, '사회적 증거'는 속시원하게 어느 한쪽만을 택할 수 없는 딜레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 대부분이 '장점과 단점' 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라는 명암(明暗)을 갖고 있잖은가.

우리는 거시적(국가적) 차원에선 정권이 5년 임기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식의 단기적 안목을 갖고 국정운영을 해나가는 것에 대한 비판과 경고의 의미로 지방소멸을 계속 거론하되, 크고 작은 각 지역별로는 지방소멸을 헛소리로 여기면서 각자 자신들이 발을 딛고 선 땅에서 살아갈 길을 찾는 능동성을 실천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구조적인 문제에선 어쩔 수 없이 지방소멸의 위험을 끊임없이 경고할망정, 지역의 삶은 지역민들이 결정하며 결정해야만 한다는 지역자결주의 원칙의 실천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적 증거' 효과가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세금 체납자로 골머리를 앓던 영국 국세청은 2009년 새로운 시도를 했다. 국세청이 세금 체납자에게 보내는 독촉장 첫 줄에 "영국인 90%가 세금을 냈습니다"라는 한 문장을 추가하자 전년도에 비해 연체된 세금 56억파운드(약 9조3000억원)를 더 걷을 수 있었다. 지역이 죽어간다는 신음소리만 낼 게 아니라 지역의 성공사례를 만들어내고 널리 알려 공유하면서 긍정적 '사회적 증거'를 창출해내는 것, 이게 지방소멸을 진짜 헛소리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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