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가을 정서와 제자리 잡기의 꿈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입력 2024.10.08. 07:41

#가을

가을이다! 말 뒤에 붙인 느낌표의 '느낌'이 새삼 간절해지는 기분이다. 큰 너울 위의 작은 배같이 흔들리면서도 자못 관능적인 여름살이를 거쳐 시선은 어느덧 자신에게 향하면서 문득 문득 '정신을 차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 지난여름 동안 나는 현실감 없이 구름만 바라보았는가 보다. 여름 구름의 현란한 모양들이 하늘을 수놓은 그 아찔하고 장엄한 광경에만 시선이 빼앗겨 있었던 게다. 그러다가 문득 하늘이 텅 빈 듯 까마득하니 높아진 걸 보고는 아차, 가을이 왔구나라고 탄식하는 것이다. 그런 기분이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는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가을날')라고 했지만, 우리에게 지난여름은 굉장했다. 지금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혹독한 더위에다 가뭄과 물 폭탄 등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가혹한 기상이변을 겪었다. 오랜만에 만난 글 친구가 내게 "지난여름을 견디어 용케 살아남았네요."라고 했다. 나는 "네. 우리도 어지간히 독종인 모양이죠?"라고 응수했다. 그런 여름이었다.

아무튼 제법 서늘한 기운이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게 가을이 오긴 온 모양이다. 그런데도 추석을 지나 시월을 넘긴 아직도 여름 색을 바꿀 생각을 아니 하는 듯 머뭇거린다. 계절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기상이변으로 올가을은 예년보다 더 짧고, 이내 혹독한 겨울이 닥친다는 전망만이 나온다.

릴케는 앞의 시에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여름의 잔영을 더욱 끌어당겨 증폭시켜서 결실의 풍요로움으로 이끌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러한 과정을 순탄하게 넘겨야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라는 탄식을 아니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 아쉬움과 불안으로 가을이 열린다. 송창식이 노래한 '푸르른 날'에는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는 구절이 있다. 순탄한 계절의 변환이 아니라 혹독한 여름을 겪느라 지친 상태를 보여주는 가을이어서 더 마음에 당기는 구절이다. 들판의 연꽃들은 이미 잎이 거의 시들어 처참한 몰골로 바뀌었고, 가로수인 벚나무들은 때 이르게 푸름이 남은 곱지 않은 잎들을 엄청 떨구고 있는 상태다(흰불나방의 창궐로 잎이 갉아먹힌 때문이라 하기도 한다). 이런 가을은 본래의 가을 모습이 아니다. 적절한 시기 조절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너무 일찍 조락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조짐이 이끌어 다소 늦어지긴 해도 단풍이 온 천지를 덮는 현란한 색의 향연이 닥칠 것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숨 막히게 무더운 날들 사이의 짧은 가을'(산도르 마라이)이 될 것이긴 하지만.

#제자리

시월은 가을의 중심. 아침저녁 선득해진 공기에 비로소생의 한기를 느끼면서 몸을 웅크린다. "홀로 있다는 것은/ 멀리서 혼자 바라만 본다는 것,/허공을 지키는 빈 가지처럼 …/ 가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오세영 '가을')라는 성찰조의 시는 역설적으로 서로 가까이 있는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운다. 자기 소외의 인식을 통해서 이웃의 정을 살갑게 되새기는 것이다.

또는 가을은 자신의 시선을 멀리 두게 한다. 그러나 그 시선의 끝은 언제나 제 자리, 곧 자신에게로 향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천양희 시인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오래된 가을')라고 했나보다. 추억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기에 자신의 시간을 반추한다. 그렇게 해서 제 자리를 인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늘 겉도는 자신을 성찰하여 제자리로 돌려놓아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연 역시 제 자리 찾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헷갈리는 게 요즘의 현상이다. 며칠 전 충남 보령시 천북면 낙동초 인근 도로의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는 소식이 들린다. 봄에 피는 게 정상인데, 개화 시기를 착각한 것이다. 이를 두고 "올해 유난히 기후가 이상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듯하다"라고도 말한다. 벚꽃이 제철을 모르고 피는 '불시개화'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태풍이나 강풍 등의 영향으로 나뭇잎이 떨어지면 벚나무가 제 몸을 지키기 위해 성장호르몬이 작용해 새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현상이다. "이상기온으로 개체수가 급증한 미국흰불나방이 벚나무의 잎을 갉아 먹어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 데 이어, 역시 이상기온으로 계절을 착각한 벚나무가 성장호르몬 작용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

'자연은 끝없이 변화하는 미학이자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을 이루는 힘이 균형감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 제자리를 찾아가는 자연 역학을 통해 분명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러한 균형감이 기상이변으로 헝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하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에게 다반사가 된 혼돈과 무질서와 불균형은 각자의 제자리 찾기를 어렵게 한다. 정치와 경제, 사회의 모든 게 헝클어져 있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이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이익되게 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역행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균형감의 상실이 빚은 참사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기 성찰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그 힘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 가을을 맞아 우리는 새삼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안에 침잠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런 시선으로 남을 보아야 한다. 그러한 시선이 자신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지침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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