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재판 유감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3.05.30. 09:56

나는 우리나라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

노릇이나 충실히 하면서 정의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걸 보면서 자주

분개하는데, 요즘 와서는 분노의 화살이

판사에게 향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도저히 납득 못할 이상한 판결을 보고

분개하는 일이 자꾸 생긴다. 그런 판결

보도 밑에 시민들의 댓글을 보면 분노의

홍수를 이루는 걸 보면서 내 생각이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사형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논리는 혹시

인간이 실수할지 모른다는 오심의 가능성이다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는 흉악범, 반인륜범은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 대신 정치범이나 사상범은 어떤 경우에도

사형 집행을 해서는 안 되고 재심의

기회를 남겨 놓는 게 맞다고 본다

최근 사회적 이목을 끄는 재판이 두 건 있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지난 5월 19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 범죄 등),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파트 입주민 이모(28)씨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이씨는 2019년부터 아파트 상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온갖 갑질로 경비원들을 괴롭힌 혐의를 받는다. 그는 하루에 수차례씩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내가 관리비 내는 입주민이다"며 "개처럼 짖어봐" "똥오줌 싸러 왔냐" 등의 폭언과 욕설을 했다. 또 경비원들에게 잦은 흡연구역 순찰과 택배 배달을 시키는 등 지속적 갑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다못한 경비원들은 2020년 12월 경찰에 이씨의 '갑질'을 신고했다. 그러자 이씨는 이들을 찾아가 얼굴에 침을 뱉고 "내일 나오면 죽여버린다"고 폭언했다. 이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피해자를 해고하라며 입주자 대표회의에 내용증명을 보내는가 하면, 피해자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해당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이를 기사화한 언론사와 피해자들을 도운 입주민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피해자들을 변호한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씨는 재판부의 징역형 선고 이후에도 입주자 대표회장에게 피해자를 해고하라고 요구하는 등 '갑질'을 이어가고 있다.

또 하나의 재판은 춘천에서 있었다. 춘천지법 형사1단독 송종선 판사는 특수상해와 폭행 혐의로 기소된 A(50)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12일 오후 9시 20분쯤 강원도 춘천에서 고등학생 B(16)군의 머리채를 잡아 벤치에 눕힌 뒤 대형견 목줄로 머리를 때리고, 목줄로 C(16)군의 목과 가슴, 뒤통수 등을 때려 각각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B군 등이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훈계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화가 나 폭행을 했다. A씨는 폭행을 말리는 D(26)씨도 목줄로 때렸다. 재판부는 "현재까지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점과 피해 정도가 비교적 중하지 않은 점, 벌금형을 초과한 전과는 없는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두 개의 판결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앞의 갑질 아파트 주민에 대해서는 시민의 공분이 일었다. 비난 일색의 댓글이 붙었고 더 무거운 벌을 내렸어야 한다는 데 거의 만장일치였다. 반대로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 훈계하다가 폭행한 50대 남자에 대해서는 동정과 지지가 쏟아졌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도로 두들겨 맞을까봐 겁이 나서 못하는데 잘 했다. 통쾌하다, 용기가 대단하다 이런 칭찬이 봇물을 이룬다. 표창을 해야지 무슨 징역형이냐 이런 댓글도 보인다. 과거에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을 훈계하던 어른이 도로 두들겨맞은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 다만 주먹으로 쥐어박은 것도 아니고 개 목줄로 때린 것은 분명 과했다.

두 개의 재판을 본 나의 소감도 시민들의 일반적 느낌과 같다. 앞의 아파트 갑질 범죄는 약자에 대한 심한 모욕이고 지속적 폭력이므로 분노가 치민다. 후자는 사회적으로 좋은 목적을 갖고 한 행동이지만 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우발적, 충동적 범죄로 보인다. 그러므로 앞의 갑질범보다는 뒤의 폭행범이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도 재판 결과는 뒤의 폭행범이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징역 1년은 같지만 집행유예 기간이 2년 대 3년이고, 사회봉사 시간도 80시간 대 120시간으로 폭행범이 갑질범보다 더 센 처벌을 받았다. 물론 두 개의 재판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별개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보도가 되니 저절로 비교하게 되고 선고 결과에 대해 승복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나라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 노릇이나 충실히 하면서 정의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걸 보면서 자주 분개하는데, 요즘 와서는 분노의 화살이 판사에게 향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도저히 납득 못할 이상한 판결을 보고 분개하는 일이 자꾸 생긴다. 그런 판결 보도 밑에 시민들의 댓글을 보면 분노의 홍수를 이루는 걸 보면서 내 생각이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이런 상식 밖의 판결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전관예우?, 판사와 동창생 변호사를 샀나? 판사가 퇴직 후 노후 안락을 노리나?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이럴 바엔 차라리 판사를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조차 든다. 왜냐하면 AI는 동창생도, 전관예우도, 노후도 없으니까.

또 하나 요즘 생각하는 것이 사형 문제다. 사형 폐지가 세계적 추세이고 한국도 그 추세를 따르고 있다. 나도 전에는 폐지를 지지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각종 흉악범, 반인륜범들을 보면서 이들을 평생 감옥에 가둬 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또 이들이 혹시 감형을 받아 세상에 다시 나올까봐 겁도 난다. 사형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논리는 혹시 인간이 실수할지 모른다는 오심의 가능성이다. 그러니 두 가지로 나누는 게 좋겠다.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는 흉악범, 반인륜범은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 대신 정치범이나 사상범은 어떤 경우에도 사형 집행을 해서는 안 되고 재심의 기회를 남겨 놓는 게 맞다고 본다. 억울하게 죽은 죽산 조봉암이나 인혁당, 민청학련 사형수들을 생각해보라.

대체로 진보파는 사형을 반대하고 보수파는 사형을 찬성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다른 면에서는 비교적 진보적인데도 사형제에 대한 생각은 흔들리고 있다. 사형 폐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게 인권의 신장인가? 이런 의문이 자꾸만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경북대 명예교수,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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