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 피는 시기가 순차적이지 않고
한꺼번에 일어나버리니, 자연계는
물론 인간들도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꽃 피는 시기가 당겨지는
'교란 현상'이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듯하다
이대로 가면 진달래가 2월에 필 것이라
예견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의외로 빨리 닥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인다. 온실 가스의 계속적인 배출로
지구 온난화가 높아지면, 생태계의 현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식물과 곤충들이 특히 기후 변화에 민감한데,
이에 적응하지 못해 허약해지거나 점차
멸종의 길을 걸을 거라는 경고가 섬뜩하게 들린다
-씀바귀
씀바귀의 계절이다. 노란 꽃들이 지천이다. 들과 천변은 물론 도시의 길가와 담벼락 아래, 계단의 틈들을 가리지 않고 돋아나 앙징맞게 꽃들을 흔든다. 회색 도시를 파고드는 자연의 세력이 놀랍다. 꽃은 가녀리고 작지만, 총명하다. 바람에 민감하다. 4월 중순도 지나. 이미 다른 봄꽃들은 졌다. 엄청난 꽃 세상을 구가했지만, 서둘러 제 봄을 닫아버린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 씀바귀가 노란 꽃들을 또록또록하니 켜서 이 땅을 밝히는 것이다.
'전봇대 따라 곧게 자란 씀바귀/ 꽃이 환해서/바야흐로 오월// 가문 또 하루/ 조심스럽게 말을 헹군다'(복거일의 '씀바귀와 더불어')라는 시는 씀바귀를 오월의 꽃으로 말하지만, 지금 4월의 중심을 이루는 꽃이다. 벚꽃 등 요란하게 천지를 덮던 꽃들이 지면서 봄마저 져버린 듯, 날씨가 일변하여 이미 여름의 기운이 만연한 요즘이다. 그런데, 지금 피어나는 씀바귀는 오월을 향한, 여름을 향한 예감으로 가득한 기운을 드러내며 봄꽃들이 져버린 허전함을 제 낮으면서도 작은 몸의 꽃으로 메우려는 듯 모질게 피어 흔들린다. 강인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가, 씀바귀를 두고 '분노'의 '씁쓰름한 향기'라 말하는 시인도 있다. '달콤하기 싫어서/ 미지근하기 싫어서/ 혀끝에 스미는 향기가 싫어서// 온몸에 쓴 내를 지니고/ 저만치 돌아앉아/앵돌아진…// 뿌리에서 머리끝까지 온통 쓴 내음/ 어느 흉년 가난한 사람의 빈창자 속에 들어가/ 맹물로 피를 만드는/ 모진 분노가 되었네/ 그래 코끝에 스미는 씁쓰레한 향기가 되었네'(문병란의 '씀바귀의 노래').
뛰어난 봄나물로, 특유의 쓴 맛으로 우리의 속을 달래지만, 그 또록또록한 꽃들은 그것들대로 우주적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씀바귀 꽃이 도시를 덮는 광경은 그래서 장엄하기조차 하다.
-가로수
그래, 우리나라에서는 봄과 가을이 짧다지만, 봄이 언제였나 싶게, 이미 여름 기운이 우세해진다. 거리에는 가로수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대개 봄에 하는 작업들인데, 그런 면에서 늦은 감이 든다. 가로수 정비 모습을 보며, 자연을 길들이고, 왜곡하는 인간의 모습이 가로수 가지치기에도 나타남을 느낀다. 최근 '닭발 가로수'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지나친 가지치기로 기둥과 굵은 가지 몇 개만 앙상하게 남기는 걸 그렇게 부른단다.
가로수라는 말에는 낭만성이 따르곤 한다. 도심의 정취를 자아내는 자연의 풍경으로 시인들의 시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가로수는 대표적인 도심지 내 녹지다. 도시생태 축을 이어주는 가하면, 도시열섬을 완화 한다, 더불어 탄소흡수, 미세먼지 흡착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가 간판이나 햇빛 가림 등을 이유로 과도한 가지치기나 제거를 요청하는 민원이 발생하기도 한다.
김기택 시인은 말한다. '지나가는 차들과 행인들에게 거치적거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가지를 쳐낸 가로수들이 전봇대처럼 전선을 따라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가로수들이 껴입은 더러운 껍질은 긁혀 있거나 벗겨져 있거나 스티커가 붙어 있거나 현수막을 지탱하는 끈에 붙들려 있습니다. 남루하고 칙칙한 이파리들이 박쥐처럼 가지에 떼 지어 달라붙어 있습니다/ 무성한 잎으로 여러 상점들 간판을 가리던 나무 하나는 분노한 톱에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아 있습니다. 한때 생명을 담았던 그 그릇에는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가는 나이테가 있습니다. 그 나이테의 무늬 속에는 생명이 바삐 드나들던 맑은 소리와 함께 혹한의 시간과 두꺼운 매연과 소음이 레코드판처럼 녹음되어 있습니다. 목 없는 통닭의 다리처럼 움직이지 않는 뿌리는 여전히 힘차게 땅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닭발 가로수는 최근 울산시가 남구 대학로 가로수 중 느티나무 한 그루가 고의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의심됨에 따라 행위자를 색출해 강력 대응하고자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사실과 크게 대조된다. 시는 가로수 고의 훼손은 불법행위로 '도시숲 등의 조성·관리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음을 알리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 수사 의뢰를 하게 됐단다. 나무 사랑의 한 전형으로 꼽을 만하다. 그런 자연에 대한 배려로 최근 환경부는 닭발 가로수 같은 과도한 가지치기가 도시 미관 뿐 아니라 대기오염 정화와 나무 성장에도 좋지 않아 개선책을 마련했다고 밝혀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짧은 봄
나무심기 시기도 당겨지는 듯하다. 4월 초에 하던 걸 이제는 3월에 주로 한다. 뭐든 빨라진다. 정상적인 계절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3월 들자마자 매화와 살구꽃에 잇달아 벚꽃이 피고, 진달래가 다투어 피어나버렸다. 꽃 피는 시기가 순차적이지 않고 한꺼번에 일어나버리니, 자연계는 물론 인간들도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꽃 피는 시기가 당겨지는 '교란 현상'이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듯하다. 이대로 가면 진달래가 2월에 필 것이라 예견되기도 한다. 부산 지역에서는 10년 만의 이른 개화라고 해서 화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의외로 빨리 닥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인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문제를 파악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마련한 국제기구인 IPCC가 최근 펴낸 평가보고서는 특히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 우려를 드러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1850년에서 1900년에 비해 현 기온이 섭씨 1.1도가 상승, 생각보다 빨리 지구 온도가 오르고 있단다. 만약 1.5도가 상승할 때는 기후로 인한 극단적 현상이 8배 이상 증가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그러면서 앞으로 10년이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의 시한폭탄'이 가동 중이라는 공포스러운 예견이 나오는 것이다.
온실 가스의 계속적인 배출로 지구 온난화가 높아지면, 생태계의 현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식물과 곤충들이 특히 기후 변화에 민감한데, 이에 적응하지 못해 허약해지거나 점차 멸종의 길을 걸을 거라는 경고가 섬뜩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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