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는 오랫동안 사람의 삶을 품어왔다. 특히 남도의 바다는 수많은 어업인의 삶의 터전이자 대한민국 수산업을 떠받쳐 온 생산기지다.
200여 년 전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물고기의 생김새뿐 아니라 습성과 서식환경까지 세밀하게 기록했다. 바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우리가 마주하는 바다는 예전과 분명히 다르다. 여름철마다 반복되는 폭염과 고수온은 양식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어업인의 한 해 농사를 흔드는 재해가 되고 있다.
올해도 피해는 이미 현실이 됐다. 지난 8월 7일 기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는 고수온으로 16어가에서 어류와 전복종자 등 약 105만 마리가 폐사했으며, 신고 피해액은 5억 1천여만 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피해량의 5.5% 수준이지만 피해 금액은 오히려 261%에 이른다.
이제 고수온을 한여름 잠시 견디면 지나가는 이상현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발생 시기가 빨라지고 지속 기간도 길어지는 만큼 수산정책 역시 사후 복구를 넘어 달라진 바다에서 어떻게 양식업을 지속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현장이다. 수온이 높아지면 양식어류의 먹이 섭취량이 줄고 생리적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질병과 폐사 위험도 높아진다. 따라서 고수온 특보가 내려지면 어업인은 관계기관이 제시한 관리기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특히 어류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급이를 중단하거나 조절하는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제 경험에만 의존해서도 안 된다. 전국 최대 규모의 어장관측망을 통해 연안 수온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만큼 이를 수시로 확인해 필요한 조치를 제때 취해야 한다. 과거에는 하늘과 바람을 읽어 바다를 판단했다면 이제는 축적된 관측자료까지 함께 읽어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현장의 노력만으로 고수온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후변화로 반복되는 재해인 만큼 정부와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최근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고수온 피해 신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수 월호해역에서 폐사가 우려되는 조피볼락 약 17만 마리를 긴급 방류했다. 집단 폐사가 발생한 뒤 수습하기보다 건강할 때 방류해 어업인의 손실을 줄이고 수산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 사후 복구보다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선제적 대응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고수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예방 장비와 관련 사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불가피하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어업인이 신속히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복구지원 체계도 촘촘히 갖춰야 한다.
최근 일부 재해복구 단가가 현실에 맞게 인상된 것은 반가운 변화다. 앞으로도 실제 피해 규모와 생산비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지속적인 현실화가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달라진 바다에 맞는 수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와 같은 품종과 양식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다. 고수온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새로운 해양환경에 적합한 사육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연구성과가 연구실에 머물지 않고 양식현장에서 검증돼 어업인의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의회의 역할도 분명하다. 어업인과 꾸준히 소통하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목소리가 정책과 예산에 반영되도록 집행부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현장과 행정을 연결해 실효성 있는 제도적 해법을 만드는 것이 의회의 책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의 수온은 어류의 생존과 어업인의 소득을 좌우하고 있다. 우리가 당장 바닷물의 온도를 낮출 수는 없지만 그 변화에 대비하고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200여 년 전 정약전이 바다를 관찰하고 기록했듯 이제 우리도 바다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현장의 경험과 과학적인 관측을 정책으로 연결하고, 정부와 연구기관, 의회가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뜨거워지는 바다는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고수온을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난으로 남겨둘 것인지, 기후변화에 강한 전남광주 수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만들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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