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한민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스타벅스 관련 논란은 단순히 한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의 오판이나 얄팍한 상술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 현대사에서 결코 가볍게 소비되거나 희화화돼서는 안 될 뼈아픈 역사의 상흔이다. 상업적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 역사적 무게를 망각한 행태에 대해 대중이 즉각적으로 매서운 비판을 쏟아낸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 뜨거운 분노의 이면에서 우리 사회가 지닌 역사적 감수성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건강한 시민 의식의 작동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이번 사태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이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의 기준점이 한 차원 높아졌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과거처럼 단순히 품질 좋은 재화를 제공하고 경제적 이윤만을 창출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바야흐로 소비자들이 기업의 윤리적 잣대와 올바른 역사 인식,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 실질적인 이행 여부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대중의 자발적이고 날 선 비판은 향후 모든 기업으로 하여금 자사의 경영 철학과 마케팅 활동 전반에 걸쳐 우리 사회의 역사적 아픔을 깊이 존중하도록 강제하는 강력한 백신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기업 문화의 근본적인 성숙을 견인할 훌륭한 자양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이 논란을 교묘하게 소비하는 정치권의 태도에 있다. 과연 현재 쏟아지는 분노의 화살이 향해야 할 과녁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지 냉철하게 복기해야 한다. 우리 정치권은 고질적으로 대중의 감정을 자극해 편을 가르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 능통하다. 연일 보도되는 정치인들의 사법 리스크,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정책적 무능, 팍팍해져만 가는 민생 경제의 붕괴 등 진정으로 분노해야 할 국가적 위기들이 기업의 실언 하나가 만든 프레임에 갇혀 증발하고 있다. 혼란의 뒤편에서 반사이익을 챙기며 권력 싸움에만 몰두하는 기득권 정치인들의 민낯을 우리는 꿰뚫어 보아야 한다.
특히 이 기회에 광주와 대구로 대변되는 특정 지역의 낡고 병든 정치 구도를 정면으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우리 지역 정치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해 보자. 맹목적인 진영 논리와 오랜 일당 독점의 견고한 성 안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건강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작동을 멈췄다. 선거철이 다가와도 지역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줄 상대 진영 후보조차 발굴되지 않는 기형적인 토양 속에서 본선 투표는 무의미한 요식행위로 전락했다. 소속 정당의 공천권 획득이 곧 당선이라는 오만한 공식 아래, 지역 정치인들은 주민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닫고 중앙당 권력자의 의중을 살피는 데 혈안이 돼있다.
치열한 정책 경쟁과 상호 비판이 완전히 사라진 곳에 지역의 혁신과 발전이 싹틀 리 만무하다. 지방 소멸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등지고 있음에도, 지역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토론은 실종된 채 철 지난 색깔론과 조직 동원 선거만 반복될 뿐이다. 아무리 참신한 비전을 갖춘 인재가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해도, 당의 간판이라는 거대한 장벽과 맹목적인 지역주의 앞에 번번이 좌절하는 참담한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확실히 끊어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권자인 국민 스스로 뼈를 깎는 각성으로 낡은 투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조건적인 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서늘한 진실을 투표로 정치권에 각인시켜야 한다. 유권자들은 인물과 공약을 철저히 분리해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한 전략적 교차 투표를 감행해 오만한 지역 맹주들에게 뼈아픈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한다. 아울러 다원화된 민심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도록 중대선거구제의 전면 확대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실질화와 같은 선거 제도 개편의 목소리를 거세게 키워나가야 한다.
행정 구역 통합이나 첨단 산업 유치와 같이 지역의 사활이 걸린 구체적인 의제를 시민이 직접 설정해 정치권에 제안하는 능동적인 정치가 뿌리내려야 한다. 이번 스타벅스 사태가 남긴 진정한 과제는 특정 기업을 향한 일회성 분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업에게는 철저한 윤리 의식을 강제하고, 부패하고 나태한 정치 세력에게는 준엄한 심판의 경고장을 날려야 한다. 나아가 우리 스스로 낡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오직 인물의 능력과 실용적인 정책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성숙한 유권자로 거듭나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깨어있는 까다로운 감시자가 될 때 비로소 우리 정치에 진정한 희망의 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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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좋은 관객은 누구일까
최근 극장이 다시 붐비고 있다. 넥플릭스, 유튜브 등 콘텐츠 소비가 OTT 시장으로 집중되면서 사라지는 공간처럼 여겨지던 영화관이었다. 그런 영화관에 다시 천만관객 영화가 등장하고 인기작들이 잇따라 개봉하며 오랜만에 활력을 띄는 모습이다. 물론 이를 극장의 완전한 부활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관객 수 회복은 몇몇 대작에 집중돼 있고 독립영화계의 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다시 극장으로 향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데 실제로 미국에서도 최근 영화관의 재부흥을 이끄는 이들은 다름 아닌 Z세대(Gen-Z)라고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가 밀레니얼세대나 X세대, 베이비붐 세대와 비교했을 때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영화를 가장 많이 본다는 사실은 꽤 놀랍다. 집에서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다름 아닌 Z세대가? 거대한 스크린과 폭발적인 사운드 몰입감 외에도 낯선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극장 특유의 아날로그적 경험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것 같다.바로 그 지점에서 최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HOPE’를 둘러싼 반응은 눈여겨볼 만하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압도적인 에너지와 장르적 쾌감에 열광하는 이들과 산만한 서사와 불친절한 설정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이들이 부딪혔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논쟁이 영화 자체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평론가가 높은 별점을 주었는지, 그 평가는 정당한지, 관객의 반응과 평론가의 판단은 왜 다른지를 둘러싼 논쟁으로까지 번져나갔다. 다만 이런 논쟁들은 개개인이 영화에 대해 충분히 곱씹고 사유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는 이럴 때도 힘을 발휘한다. 서로 다른 감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 어떤 결론에 도착하려 한다.한 편의 영화에 호불호가 갈리는 일은 자연스럽다. 모든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도착할 수는 없으니까. 어떤 관객에게는 서사의 빈틈이 실패의 증거로 보이지만 다른 관객에게는 그 빈틈 때문에 영화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예를 들어 호프 개봉 이후 ‘호프 망상회’라는 것이 유행하며 화제가 됐는데 영화를 본 이들이 서사의 빈틈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채워 넣으며 독창적인 감상을 나누는 것이다. 각종 망상회를 찾아보며 수많은 해석에 즐거워했던 1인으로서는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는 즐거움을 다시 느꼈다. 이렇게 많은 이들과 동시에 하나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게 새삼 오랜만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극장이라는 공간을 다시 떠올려 본다. 영화관은 영화만 보는 공간은 아니다. 같은 장면에서 누군가 숨을 참는 소리, 조용히 번지는 웃음, 엔딩 크레딧 뒤에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분위기까지 함께 감각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관객은 비교적 얌전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고요함 속에서도 반응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스크린을 보는 동시에 함께 보는 사람들의 감각을 느낄 수 있기에 영화관에 간다. 극장이 다시 붐비는 요즘 관객들도 이런 과정들을 좀 더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렇다면 좋은 관객이란 누구일까. 조용히 관람 예절을 지키는 사람 혹은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맞히는 사람일까? 물론 다른 관객을 방해하지 않는 태도는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좋은 관객은 능동적으로 사유하고 적극적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곧바로 정답을 요구하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왜 불편했는지, 왜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르게 보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 영화는 별로다’에서 멈추지 않고 ‘왜 나는 이 영화가 별로였을까’로 질문해 보는 것, 서로 감상이 다를 때 그것을 또 다른 해석의 입구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관객의 태도일 것이다. 좋은 관객은 영화를 더 오래 살아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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