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생물학자 커트 리히터 박사가 1950년대에 진행한 야생 쥐 실험은 인간의 심리와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전설적인 연구다. 이 실험은 우리가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지,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어떻게 물리적인 생존력으로 직결되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리히터 박사의 실험 설계는 단순하지만 잔인했다. 그는 먼저 야생 쥐들을 물이 가득 찬 유리 항아리에 넣고 얼마나 오랫동안 헤엄치며 버티는지 관찰했다. 야생 쥐들은 뛰어난 수영 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항아리에 들어간 지 불과 15분 만에 헤엄치기를 포기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체력이 다해서가 아니었다. 낯선 환경에 던져진 공포, 이 항아리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무기력과 절망이 쥐들의 생존 의지를 꺾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리히터 박사는 결정적인 변수를 도입한다. 또 다른 쥐 그룹을 항아리에 넣고, 이들이 지쳐서 포기하기 직전인 14분쯤 됐을 때 슬쩍 쥐들을 건져 올렸다. 그런 뒤 몸을 말려주고 쉬게하고, 다시 물이 든 항아리에 넣었다.
이 작은 구조 작업이 가져온 결과는 경이로웠다. 잠깐의 구조를 경험한 쥐들은 다시 물에 들어가자마자 포기하지 않았다. 이 쥐들이 버텨낸 시간은 고작 몇 분 연장된 수준이 아니었다. 무려 평균 60시간 동안이나 멈추지 않고 헤엄을 쳤다. 15분 대 60시간, 무려 240배에 달하는 초인적인 버팀이었다.
쥐들의 신체 조건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바뀐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조금만 더 버티면 누군가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기억, 즉 희망이었다. 한 번의 구조 경험이 쥐들의 뇌 속에 이 상황은 끝이 있으며 결국 빠져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물이 가득 찬 항아리처럼 사방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번아웃, 실패,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은 체력이 아니라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스스로를 살리는 힘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과거에 아주 작게나마 성취했던 기억, 혹은 누군가 내밀어 주었던 따뜻한 손길 같은 작은 희망의 단서들이다. 지금 혹시 지치고 무기력하다면, 자신을 항아리 밖으로 건져 올려 줬던 인생의 작은 기억들을 떠올려 보자.
한경국 취재3본부 부장대우 hkk4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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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광주 5·18공동체가 배재고에게 손을 내민다면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원과 교사, 학부모들이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원들과 함께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하며 오월영령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5·18민주화운동을 조롱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무수히 많은 희생자가 존재하고, 그 유족들이 여전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고교 야구 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 학생들의 언행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른바 ‘스타벅스 5·18 비하 사건’을 인지하고 이를 통해 상대 팀인 광주일고 선수들의 심리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잘못에 대한 합당한 책임과 반성은 당연히 수반돼야 한다.하지만 정작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대목은 처벌의 방식과 지향점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성숙하기도 전에 주최 측은 해당 학생들에게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안타깝게도 이 성급한 결정은 본질을 흐리고 또 다른 정쟁의 불씨가 됐다.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용하려는 어른들의 개입으로 인해 정작 상처받은 광주일고 학생들과 광주 공동체가 또다시 차가운 시선이라는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마침 배재고 가해 학생들이 7일 광주를 찾아 피해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5·18민주묘지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정쟁 이전으로 돌아가 미처 논의하지 못한 본질을 마주해야 한다. 배재고 아이들이 정말 악하고 나쁜 본성을 지녀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렇게 보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가진 5·18에 대한 교육의 부재에서 원인을 찾는 게 타당하다. 설령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 사회 일부 어른들이 쏟아내는 혐오와 조롱의 문화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일그러진 거울을 비췄을 뿐이다. 우리 어른들의 자성과 함께 조롱과 폄훼의 문화를 근절하려는 근본적인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영령들을 마주한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함부로 던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민주묘지에서 가슴으로 느꼈을 부끄러움과 깨달음은 그 어떤 제도적 징계보다 무겁고 값진 교육이었을 것이라 믿는다.해당 학생들과 학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처벌과 마음의 멍에를 짊어졌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는 이미 처벌의 실효성을 판가름할 만큼 높아졌다. 이제는 5·18 공동체가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광주일고 또한 선처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혐오를 포용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여줄 때 광주정신의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라 믿는다.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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