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4년 6월, 유튜브 채널 ‘휴먼스토리’가 ‘1년에 50조, 매일 1천300억씩 쓰는 남자의 하루 일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하루에 1천300억 쓰는 남자라…’ 흥미로운 주제의 주인공은 1천만 시민들의 삶과 일상을 책임진 서울특별시장이었다. 물론 하루 1천300억에는 공무원 인건비 등 고정지출이 포함됐겠지만, 그 나머지 용처도 사뭇 궁금했다. 36분 분량의 영상에는 아침 공관 러닝셔츠 차림에서부터 시정과 관련된 보도내용 스크랩 모니터링, 출근 전 남산공원 산책과 운동, 회의 모습, 현장 점검, 현안 보고, 행사 참석, 대학 강연 등 줄줄이 빠듯했다.
한강 이남 최대규모 법인(?) 설립
“서울시장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천만 서울 시민이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 즐기는 것 등 하루 일상 중 서울시가 개입하지 않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2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최근 광주전남 대통합을 보면서 ‘하루 1천300억 쓰는 남자’가 주마등처럼 떠올라 오버랩됐다. 연간 5조 원의 재정지원에 광주 7조, 전남 13조를 보태니 ‘1년에 25조 원을 쓰는 사람’. 다름아닌 인구 320만 명의 첫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다. 서울특별시장과 마찬가지로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단순 계산으로 5조씩 4년간 지원하니, 임기 4년동안 총 100조 원 이상의 예산을 쓰는 꼴이다.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행정적 지위와 자율성을 주고, 교부세와 지원금을 신설해 국가재원을 대폭 재분배하고, 차관급 부단체장 4명에 공공기관 이전 우대, 여기에 기업유치 땐 파격 인센티브까지….
코로나19 때 정부의 주민 지원금을 두고 일각에선 25조에 대해 분당신도시(39만 명 계획도시)주민에 아파트 반값 공급 예산, 또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 노선 4개를 건설할 수 있는 예산 등 그 규모에 놀랐다. 한해 25조 원의 예산권에 광주광역시의 경우 인사권한을 가진 본청과 사업소 공무원만 2천600명, 여기에 소방본부까지 정원이 4천200여명이다. 전남도의 경우 기구정원만 2천300여명, 소방까지 정원이 6천8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될 경우 통합특별시장 중심의 인사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여겨진다. 시쳇말로 한강 이남에 최대규모의 법인(?)이 설립된 셈이다.
현재 광주시 조직은 4실 10국 3본부 75개과 278팀이고, 전남도는 2실 16국 79개과 293개팀이다. 이를 어떻게 합치고 배치할 지, 데이터와 시스템 통합작업은, 업무량이 각기 다른 5천여명의 시·도 공무원들에 대한 이동과 승진을 위한 근평작업은? 6월 3일 당선과 함께 구성될 인수위원회 활동과 조직개편의 향방도 몹시 궁금하다. 여기에 27개 시·군·구와 100여개에 달하는 산하 공공기관까지 관할할 경우 사실상 어마어마한 권력에 가까워진다. 막강한 권한과 권력이 발생할 때 예상되는 혼란과 분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주청사 문제를 비롯해 광주시의회와 전남도의회간 힘겨루기, 시·군·구냐? 구·시·군이냐? 등 크고작은 갈등과 대립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50년, 100년의 미래를 설계하는 통합시는 미래세대들에게는 지방주도성장 대전환을 통한 확실한 기회가 될 수 있는 반면, 현 세대들에겐 위기처럼 여겨지는 갈등과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백범 김구 선생은 동지들에게 ‘쟁족운동(爭足運動)’을 주문했다. 백범은 “우두머리 지위가 자기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어제 맹세했던 것도 언제 그랬냐며 분열되는 것을 보았다”며 대가리 싸움보단 행동하는 다리가 되기를 다투자는 것이다. 즉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권모술수를 쓰는 대가리 싸움이 아닌, 높고 쉬운 자리는 서로 사양하며 힘들고 천한 일을 먼저 하려드는 쟁족의 실천운동이다.
건설적 권력의 힘과 임파워먼트
두 사람만 있어도 위계와 권력이 발생하는게 인간의 삶이라고 한다. 부부 사이, 부모 사이, 자식간에, 친구 사이에도 미묘한 위계와 권력이 작동한다. 독일의 SRH 베를린 응용과학대학 경영심리학 셰르물리 교수가 쓴 ‘권력중독’(2026. 미래의 창. 곽지원 옮김) 책에서는 권력은 중독이 강해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못된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지게 되면 못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직과 리더십의 심리메커니즘을 연구해온 그는 권력이 인간의 심리와 신경체계를 바꾸며 그 과정에서 공감은 줄어들고 자기중심성은 강화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사회·경제적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적인 권력의 힘’이 필요하다며 그 해결책으로 임파워먼트(empowerment, 권한 부여 또는 권한 이양)를 제시한다. 평화롭고 자발적인 권력 분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더 많은 혼돈과 불행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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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청년 떠난 광주·전남...통합시장은 뭘 준비해야 하나
15년 전 쯤에 썼던 낡은 취재수첩을 꺼냈다. ‘양심’이란 단어가 주는 양가적 감정 때문이었다. 위기는 기회였다. 국난은 되레 국민을 뭉치게 했다.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겪던 시기였다. ‘양심냉장고’는 암울했던 사회 분위기에 한줄기 빛이었다.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사람들은 울고 웃었다. 신용·믿음의 상징인 양심이 화두로 등장한 배경이다.고육지책이었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 신촌마을 입구의 ‘양심가게’가 문을 연 건 2005년 5월이었다. 농촌 인구가 갈수록 줄면서 마을 구판장이 폐업하면서다.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초고령화 된 공동체는 흔들렸다. 거동조차 힘든 주민들이 간단한 생필품 하나 사기 위해 20㎞ 이상 떨어진 읍내까지 나가야 했다. 당시 마을 이장이 수 백만원의 사비를 털어 가게를 오픈한 이유다.결국 문 닫은 장성 양심가게주인은 따로 없었다. 주민들은 지켜보는 이가 없더라도 각 물품 아래 붙은 가격표를 보고 동전과 지폐를 가게에 두고 가는 시스템이었다. 전국 최초 무인 양심가게 탄생에 국민은 환호했다. 때마침 대기업 광고와 방송 다큐멘터리에 소개되면서 방문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우여곡절도 겪었다. 이듬해 가을, 200만원 상당의 절도 사건에 CCTV를 설치했다가 3일 만에 뗐다. 경찰에 신고도 못한 채 속앓이만 했다. 자부심에 상처가 났다.결국 고령화와 탈 농촌의 그늘을 빗겨가지 못했다. 사랑방 역할을 했던 양심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에 속내가 복잡했던 이유다. 20여 년 전, 가게 문을 열 당시 51가구 136명이 살았던 마을엔 현재 30여 명만 생활한다고 했다. 단골 고객이었던 어르신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난데다, 요양시설과 자녀 집 등에 머물고 있는 주민들도 많아서다. 애써 외면했던 현실이 언친 듯 걸렸다. 장성의 무인가게는 전남 일선 시·군이 겪고 있는 농업·농촌 문제의 축소판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따른 우리네 미래를 암시하는 듯 해서다. 주민과 인프라가 사라진 마을에선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양심가게 이야기를 꺼낸 건 광주·전남의 상황이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광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25년 11월 139만4천301명으로, 인구 140만 명이 무너진 지난 한 해에만 1만3천여 명이 순유출됐다. 올해도 이 같은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지난 1분기 광주의 인구 순유출 규모는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광주에서 3천973명이 순유출돼 경남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순유출률도 1.2%로, 세종에 이어 전국 2위 수준이었다. 전남은 지난 1분기 1천498명이 순유출됐다.문제는 청년들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광주에선 매년 6천여 명에 달하는 청년이 떠나고 있다. 청년으로 분류되는 20~39세 인구는 지난해 34만5천785명이다. 전체의 24.8% 수준. 5년 전, 27.29%에 비해 2.49%p 줄어든 수치다. 고용률도 낮다. 광주의 분기별 고용률은 37%대로, 서울(50%대)과 10%p 이상 격차를 보였다. 수도권에 청년이 빠르게 집중되면서 실업률 증가와 부동산값 급등 등 부작용이 되풀이 되고 있다.이처럼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 침체 등 위기의 광주·전남에 기회가 왔다. 인공지능(AI)과 에너지로 대표되는 최첨단 산업의 대전환 시기와 맞물려서다. 막대한 지방재정을 집행하고, 개발사업을 인·허가하는 권한을 가진 대표를 뽑는 6·3 지방선거가 일주일 뒤 치러진다. 전국 첫 광역단체 간 통합에 따라 320만 명 규모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첫 수장이 선출되는 거다. 지역내총생산(GRDP) 150조원 규모의 초광역 지방정부다.대의 민주주의 위기 속, 미래는선거기간, 여러 경고음이 잇따랐다. ‘대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거다.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광주·전남지역 민심 이반과도 무관치 않다.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공천 잡음과 함께 무투표 당선 등 그 간 지속된 일당 독점 폐해와 부작용 등이 갈수록 악화되면서다. 그들 만의 잔치가 돼 가는 건 민주주의의 위기다. 공천 후폭풍에 휩싸인 민주당의 균열을 틈타, 조국혁신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이 눈길을 끌 정도다.통합된 전남광주의 꿈을 위해선 ‘강한 지방’이 전제돼야 한다. 문제는 가시밭길도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광주와 전남, 전남 서부권과 동부권 등 각 지역 간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민선 9기, 통합시장 취임 때부터 핵심 현안을 놓고 잠재된 갈등과 지역주의가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시 주청사와 의회 청사 ▲20조원 재정인센티브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국립전남의대 ▲군공항 이전과 무안국제공항 이슈 등이 대표적이다. 7월 공식 출범을 앞두고 시·도민들의 신뢰를 토대로 한 협력과 협치를 위한 통합 동력 확보가 중요한 이유다.광역단체장이 대권 경쟁에 나서는 시대다. 전남광주통합시는 첫 수장 취임과 함께 낙후된 광주·전남 발전 등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경쟁력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는 거다. 수도권 블랙홀에 중앙-지방 격차와 불균형은 갈수록 심 화되고 있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정책에 맞춰 통합을 이뤄내는 등 이른바 ‘퍼스트 펭귄’을 자처한 것도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퍼스트 펭귄’을 자처할 만큼 절박하다.투표엔 미래 가치가 담겼다. 전남광주통합시의 새로운 브랜드와 방향성은 상상력이 필요한 고차 방정식이다. 통합시가 초고령화된 전남지역 농촌은 물론, 청년과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까. 전남광주 유권자들이 시장 후보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리더는 도시를, 도시는 리더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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