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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권익위원칼럼] 품격 있는 어른

입력 2026.04.29. 18:53 최민석 기자
박정열(치과의사·대동고 이사장)

얼마 전 내가 운영하고 있는 치과에 점잖게 보이는 92세 환자가 진료실에서 다짜고짜 큰 소리로 불만을 호소한 일이 있었다.

우리 치과에서 틀니 수리 진료를 받으셨던 환자인데 돌연 병원을 찾아와 틀니 수리를 하지않고 비용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진료 기록과 수리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이를 ‘허위 청구’라 단정 지으며 막무가내로 사과를 요구했다. “일을 키우지 않을 테니 사과하라”며 고함을 지르는 환자의 모습 앞에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황당함과 어이없음을 느꼈다.

치과의사로서 지켜온 소신이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환자의 본인 주장만 앞세우며 수리하지도 않은 틀니를 허위로 청구했다고 막무가내로 사과를 요구하는 환자 앞에서, 나는 개원 이래 처음으로 이성을 잃고 목소리를 높였다.

억지 주장 앞에 그동안 지켜왔던 진료 철학이 부정당하고 한순간에 훼손되는 삶의 품격을 목도하며 느낀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환자 하고 싶은대로 알아서 하시라”는 말을 끝으로 상황은 멈췄지만, 상처 입은 자존심과 허망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얼굴은 얼이 나오는 굴이라는 말이 있다. 얼은 정신적 줏대를 의미한다. 바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어릴적에는 부모 가르침을 받고 자라다보니 얼이 형성되지 않아서 자신의 얼굴 형태를 갖추지 못하지만 나이가 먹으면서는 자신이 만든 얼굴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된다고 믿었다. 세월이 쌓이면 경험이 생기고 그 경험이 지혜가 되어 어른은 존중받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이는 더이상 존중의 근거는 아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존중을 기대하는 순간 관계는 어색해진다. 그때 일을 생각해보면 나도 많은 생각과 후회감이 든다. 상대가 어떻든 흥분하지 않고 품격있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나눔이 품격이다. 재능을 나누어도 좋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이면 더 좋다. 나눔이 품격있는 삶, 그 자체다.

둘째, 건강이 품격이다. 매일 술에 절어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무슨 비전과 열정이 있겠는가.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시기인 중년의 최대 걸림돌은 나쁜 건강과 나쁜 습관이다. 중년의 건강이 노년의 건강을 좌우한다. 당장 뛰쳐나가 운동을 하자. 운동을 통해 앞으로 30년동안 쓸 수 있는 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내몸안에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6개월 정도라고 한다. 6개월 열심히 투자해서 30년 건강한 몸으로 살자. 건강해야만 중년 노년때 배우자와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품격은 배려에서 나온다. 배려는 결코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 감정과 태도를 절제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종종 배려를 양보나 손해로 오해한다. 한발 물러서는 것이 약함처럼 보일때도 있지만 그러나 진짜 배려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의식하는 동시에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내면의 질서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배려는 기술이 아니라 품격이다. 품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매순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선택의 중심에는 언제나 배려가 있다.

넷째, 감사와 풍요이다. 감사의 마음은 풍요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채워진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고 그 감사는 다시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그 순환이 쌓일 수록 사람의 태도는 깊어지고 관계는 단단해진다. 결국 풍요로운 마음이 품격을 만들 것이다.

내 나이 이제 중년인데 중년의 품격은 세월이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선택의 결과다. 어떤 태도로 말할 것인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따라 같은 나이도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사람의 깊이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의 품격을 갖추어야 어른이 되는것이다. 스스로를 다듬고 품격을 쌓아가는 사람만이 비로소 어른의 자리에 선다.

지금 우리는 나이를 먹고 있는가 아니면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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