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흔히 뱀은 인간을 타락시킨 원흉으로 여겨지곤 한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결과로 놓고 그 원인을 간교한 뱀의 유혹에서 찾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적 사건을 기록해 놓은 '창세기'를 스피노자와 함께 잘 들여다보면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창세기 2장은 "사람과 그 아내가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어지는 3장에는 사람(아담)과 그 아내(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고 눈이 열려서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녁에 하느님이 사람을 찾았을 때,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된 사람을 동산에서 내쫓으며 하느님은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혔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알몸의 이미지에 오도된 독자는 금지된 열매를 먹고 인간이 겪게 된 변화가 벌거벗은 상태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열매를 먹기 전에 인간은 다만 수줍어하지 않았을 뿐이고, 열매를 먹은 후에 신의 시선을 피해 숨은 이유는 '두려워서'였다. 두려운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인간이 '알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사실 인간이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인간은 신이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열매를 따 먹었고, 그래서 신의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는 자신의 행동을 다른 사람이 비난하는 것을 상상할 때 뒤따르는 슬픔을 일컬어 '부끄러움(pudor)'이라고 했다. 스피노자는 이와 구별해, 그런 부끄러움을 나쁘게 여겨서 두려워하는 상태를 '베레쿤디아(verecundia)'라고 일컬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상태를 두려워함으로써 도덕적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억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의 비난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거나, 상상은 하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모세가 자신들을 떠났다고 확신했을 때 아론에게 신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사건을 묘사한 뒤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이것이 그 많은 기적으로부터 결국 그들이 형성한 신에 대한 관념이었다니." 그런데 정작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모세와 스피노자이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히브리인들과 아론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부끄러운 상태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이후 신은 율법을 통해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것을 금했다. 다른 사람의 비난 가능성을 각자 주관적으로 상상하거나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더 나아가 법을 어겨서 남의 비난을 받는 부끄러운 상태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했다. 이로써 히브리인들은 도덕적 일치 속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부끄러움이 화합(concordia)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법의 도입을 통해 인간이 부끄러움을 아는 상태에 있는 것이 공동생활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부끄러움은 인간의 유능함보다 무능함을 표현한다. 그래서 슬픔의 정서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마치 고통이 손상된 신체의 부분이 아직 부패하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한에서 선이듯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올바르게 살려는 욕구가 있음을 가리키는 한에서 선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어떤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슬픔이라는 부정적 정서에 빠져 있을지라도 그가 도덕적으로 살려는 욕망을 전혀 가지지 않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한다.
을사년(乙巳年), 뱀의 해를 맞아 뱀이 우리 인간에게 가져다준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본다. 창세 설화 속의 뱀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은, 인간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 금지된 열매를 따 먹음으로써 결국 얻게 된 것은 부끄러움의 감정과 부끄러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일지 모른다. 국민의 뜻을 배반하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를 대통령을 위해 미리 국민이 성문 헌법을 제정해두었는데도 계속해서 궤변을 늘어놓는 윤석열과 그 추종자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슬프다. 왜 늘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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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두달만 더 정신 바짝 차리면 된다 조경완 역사와언론연구소장 괴상하게 들리겠지만 시간은 때에 따라 질량과 밀도가 다르다. 산책을 하고 봄옷을 쇼핑하는 사람의 한시간과 은행강도나 항공기 납치사건의 인질이 겪는 한시간은 다르다. 역사책은 죄다 인류가 겪어온 고밀도 고질량의 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한국사회에서 2024년 12월 초부터 2025년 5월 말까지 반년간의 시간 역시 고밀도 고질량으로 흐르고 있다. 이 동안 국민들은 '계엄쇼크'니 '탄핵우울'이니 하는 신드롬으로 고통을 겪는 중이다. 이 고통은 헌재 선고 이후엔 다소 완화될지 모르나 그에 못지않은 스트레스가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다. 헌재 선고가 끝이 아니란 얘기다. 앞으로 펼쳐질 국면은 다음 네가지다.첫째,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로,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고 5월 대선이 실시되는데 야당 후보가 이재명인 경우다. 온갖 방어논리에도 불구하고, 윤을 다시 권좌에 복귀키는 건 비상식적이다. 윤 지지자들의 격렬한 반응이 있겠으나 한시적일 것이다. 민주당은 대선 단기 레이스를 기다렸다는 듯 시작할 것이지만 지지율 압도 1위인 이재명 외에 다른 후보가 나서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힘 후보가 누군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선거는 이재명의 낙승일까? 탄핵당한 대통령을 배출했던 정당은 선거해 보나 마나 패배할까? 많은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지표는 65대 35의 비율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을 예측하고 있다. 다만 진통은 심각할 것이다. 두달의 선거운동기간 동안 국민들은 해방직후의 좌우대립을 능가하는 분열 반목 증오에 휩싸이는 고밀도 고질량의 스트레스에 휩싸일 것이다.둘째,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고 5월 대선이 실시되는데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아닌 다른 후보가 나서는 경우다. 현재로선 설마 하겠지만 다음주 이재명 2심 선고 형량에 따라 후보 자격시비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또, 당사자는 정치적 탄압 운운하고 있으나 3심제 하에서 2심까지 유죄인 사람이 국가원수가 되겠다고 출마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라면 난센스다. 몇 년 전만 해도 민주당에선 당내 주요 인사가 기소만 되어도 자진 탈당을 했다.당 밖을 보자면 지난 대선 때부터 광범위하게 퍼진 반 이재명 정서가 여전하다는 점도 문제다. 여권 지지층에서는 그가 거대 야당 당수가 된 이후 행한 일련의 의회정치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를 대신할 마땅한 민주당 후보가 두달 안에 출현하겠느냐는 거다. 민주당에 혼란스러운 선택이 강요될 것이다.셋째, 희박하겠지만 탄핵이 기각되고 윤이 복귀하여 임기를 다 채우는 경우다. 다수당인 민주당과 범 진보세력의 정권퇴진운동은 내내 지속될 것이고 아스팔트 극우세력과의 물리적 충돌로 서울의 거리는 총기없는 내란, 몽둥이와 돌멩이가 난무하는 장면으로 외신에 송출될 것이다. 비상식적 돌발사태, 즉 테러나 암살이 빈발할 수도 있다. 해방 직후에 그랬다. 이를 빙자한 제2의 계엄도 가능하며 이때 한국사회는 계엄 발동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을 것이다.넷째, 역시 희박하지만 탄핵이 기각되고 윤이 조기퇴진을 선언하며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경우다. 염치가 있다면 임기를 다 해먹겠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 사이 개헌을 완료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차기 대선을 실시하는 방안도 있다. 일년 남짓한 재임기간 중 윤이 자발적 이원집정제를 실천하여 내치에서 손을 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윤과 주변세력의 선의를 가정한다면 그렇다.이 네가지 경우 말고 다른 상황이 있을까? 한두 가지 있기는 했다. 국회가 탄핵을 의결하자마자 윤이 자진 사퇴하는 경우였다. 숨돌릴 틈 없이 헌법 68조 2항에 따라 60일 이내 대선이 치러졌을 것이다. 벚꽃 대선.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또 다른 하나는 이재명 대표가 진행 중인 모든 재판의 판결이 날 때까지 대통령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경우다. 이낙연이 말한 윤-명 동시퇴장 선거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도 없었다.지난주 서울서 열린 모 학술행사 이름은 '한국 민주주의 구출하기 심포지엄'이었다. 민주주의가 죽어간다는 진단 때문에 붙인 이름이리라. 민주주의라는 이 희랍 발명품은 20세기 말까지 변용을 거듭해 왔으나 결국은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범지구적인 극우 포퓰리즘의 등장이다. 이같은 트렌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희한하게도 한국에선 극우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이 동시에 작동되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포퓰리즘은 경제적 낙오자들의 분노를 에너지로 한다. 민주주의가 고장 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을 역사 발전이라고 한다면 역사는 어느 나라에서나 발전하는가? 전혀 아니다. 아르헨티나 베네주엘라 콩고 미얀마 아이티 국민들은 100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 죄다 국운을 가르는 고밀도 고질량의 순간에 엘리트들이 무능했거나 부패했거나 나태했기 때문이다.앞에 적은 네가지 경우 중 어느 것이 현실이 되더라도 우리는 이제 멈춰 서서 모든 것을 리셋할 필요가 있다. 헌법을 고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유권자인 국민들도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왜곡 되거나 교묘히 의도된 정치 편향 정보에서 자유로와야 한다.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서 푼어치 정보를 가지고 술자리 웅변가가 되려고 하면 안 된다. 비록 지금의 일상을 살아가기가 인질극처럼 초조하더라도 이럴수록 모두가 자기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다이나믹 코리아인지 다이나마이트 코리아인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은 던져버리자. 이제 두어달만 정신 바짝 차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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