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린
코로나19의 시대가 떠오른다
다 그랬지만, 특히 힘없고 이름
알릴길 없는 젊은 시각 예술가들은
고통이 더했다. 공포에 질려 막무가내로
'버텨'온 3년이었다.격리와 배제의
시대는 얼마나 우리 삶을 황폐하게
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을 수 없다
지금의 해방감과 흥청댐이 그 아팠던
기억을 잊지 않은 채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오만과 욕망으로 자행했던
자연 파괴를 반성하면서, 새롭게
올지도 모를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억
아픔은 어떤 색깔과 모양으로 기억되는가? 6월 들어 찾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에서 문득 해보는 생각이다.
여행 중 주제에 끌려 들린 한 갤러리. '에코토피아'라는 주제의 전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아픔의 기억들을 본다. 에콜로지와 유토피아의 합성어 에코토피아는 생태주의적 이상세계를 뜻한다. 이 말은 생태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삶이 고통을 받고 있는 만큼, 그걸 역으로 생태 회복의 상태로 만들어 보다 원할한 삶을 회복하자는 꿈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 전시에서는 자연과 인류의 관계와 공존의 방식들을 다양하게 풀어낸 작가들의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아픔의 기억은 바로 전에 겪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것이다. 코로나19는 3년여의 기간 동안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왔는데, 6월 들어, 가까스로, 그로 인한 규제들이 해제됐다. 그래서 이제 비로소 작가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심하게 겪었던 역병으로 인한 고통의 기억들을 나름대로 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작가는 털실을 통해 자연이 전하는 온기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자연의 에너지로 내면의 힘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게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서 듣는 미세한 소리, 식물과 공존하는 미래를 상상하는 신생태계에의 꿈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비닐과 빨대 등 플라스틱을 재해석하여 쓰레기가 되고 껍데기만 남은 상태를 통해 물화되고 소외된 현대인의
위기 상황을 은유하기도 한다. 플라스틱이 자연의 풍화작용에 의해 암석화한 것들의 채집도 보인다. 현 문명의 단면들을 박물관의 유물처럼 박제한 것도 있다. 이런 작업들은 끊임없는 자연의 파괴로 결국 코로나의 역습을 초래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걸 반성하면서, 새삼 인류의 미래를 불안하게 내다보는 시선들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기억을 통해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린 코로나19의 시대가 떠오른다. 다 그랬지만, 특히 힘없고 이름 알릴길 없는 젊은 시각 예술가들은 고통이 더했다. 공포에 질려 막무가내로 '버텨'온 3년이었다. 백신이 나올 때까지,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그러다 보면 역병이 사그라들 것이고, 그러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전시관의 휴관으로 온라인 전시, VR 전시 등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지만 그것은 이미 있는 전시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늘리는 정도였다. 젊은 작가들은 그러한 아픔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동적 태도를 넘어서 언택트 시대에도 예술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과 소통, 접점을 늘리기 위한 적극적 태도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도 해가면서. 그러나 코로나19가 지나가더라도 새로운 바이러스는 또 창궐할 것이라는 불안은 여전히 강력하게 남는다. 팬데믹은 앞으로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할 기본 조건이라는 체념과 수용의 마음도 인다.
어쨌든 이런 기억과 반성의 전시는 물론, 인류 멸망의 예견들을 그린 문학 작품의 발표들이 전국에서 이달 전후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인류가 겪은 기막힌 경험의 기억이며, 공포의 기억이며, 때로는 끝내 승리로 이끈 고투의 기억들을 드러낸다. 한 편으로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에 노출된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 나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해제
그래, 마침내, 6월의 해제다! 국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격리 의무와 동네 의원과 약국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이달부터 해제됐다.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7일 격리 의무'는 '5일 격리 권고'로 바뀌었다.
입국자들에게 입국 3일차 이내에 권고하는 유전자증폭(PCR) 검사도 종료됐다. PCR 검사를 위한 선별진료소 운영은 유지하되, 임시선별검사소 운영도 중단됐다. 무료 백신 접종, 치료제 무상 공급, 입원환자 치료비 지원,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비 등은 운영된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이후 3년 4개월여 만에 사실상의 일상회복을 맞은 것이다. 한국도 비로소 코로나19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화) 전환에 진입한 것이다. 여전히 확진자가 나오고 있어서 섣부른 해제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격세지감이 인다. 코로나19로 일상은 중단되고, 사람 간의 사이는 일정한 거리 유지로 바뀌어버렸으며,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가지 않는 기이한 현상들이 계속되어온 지난 일들이 몸서리쳐지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스크를 낀 채 말하고, 강연하고, 대화하는 생활을 오래 했다. 바이러스와의 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전쟁은 전 세계적 전쟁으로 확대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참상이었다. 우리에게는 그 싸움이 한국 전쟁만큼 길었다.
#보복
코로나 상황의 해제로 사람들을 반사적으로 밖으로 발길이 쏠리는 듯하다. 한동안 조심스럽게 국내 여행에 골몰하던 이들이 서둘러 해외여행으로 몰린다. 각 지역의 축제와 행사 등 모임들이 봇물 터지듯 흥청거린다. 코로나 종식 분위기에 맞춰 벌어지는 이런 현상들을 두고 보복여행이니, 보복 축제니 말을 한다. 그동안 못했던 모임과 여행을 그야말로 코로나에 대한 복수심으로 더욱 강화한다는 뜻일까? 세상은 언제 그런 아픔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북적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격리와 배제의 시대는 얼마나 우리 삶을 황폐하게 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을 수 없다. 지금의 해방감과 흥청댐이 그 아팠던 기억을 잊지 않은 채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오만과 욕망으로 자행했던 자연 파괴를 반성하면서, 새롭게 올지도 모를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치열한 작업에 열중하는 젊은 작가들의 아픔에 대한 기억들은 그런 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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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易地思之'] 장동혁을 위한 변명
지난 7월7일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잠실개표소 봉쇄 시위’ 현장에서 대통령 이재명을 향해 “재명아, 고등학생 말고 나랑 싸우자”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논란을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장동혁은 이전에도 “이재명은 그 존재 자체로 대한민국의 재앙” 등과 같은 막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유치한 조롱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 이번 막말이 준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그 충격을 “저급하기 짝이 없는 망동”(한병도), “무턱대고 시비 걸고 다니는 동네 건달이 연상되는 문구”(천준호), “국가 원수에 대한 예우를 완전히 짓밟은 이따위 짓”(박지원) 등과 같이 표현했다. 진보당의 논평도 “최소한의 품격도 없이, 천박한 인식만 날것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라고 했다.처음엔 매우 점잖은 정치인이었던 장동혁이 왜 그런 놀라운 ‘변신’을 한 걸까? 그의 ‘변신 친화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2024년 11월5일 윤석열을 추종한 친윤 정치인들이 한동훈을 당대표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터뜨린 ‘당원 게시판’ 사건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당시 장동혁은 이 프로젝트의 음모를 열심히 비판했다. “한동훈 대표의 정치적 생명을 끝내려고 마음먹고 달려들고 있다”는 게 그가 내린 진단이었다.그렇게 한동훈을 적극 옹호했던 장동혁은 약 열흘 후인 12월3일 불법 계엄이 선포됐을 때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 한 명이었지만, 12·14 윤석열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이후 친윤 의원들의 ‘윤 어게인’ 캠페인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물론 휩쓸린 게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스스로 변신한 것일 수도 있다.12월16일 한동훈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면서 친윤으로 돌아선 장동혁은 2025년 3월22일 탄핵 반대 집회에선 “12·3 계엄은 반국가세력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라는 시대적 명령”이라며 계엄을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극우적 활동을 밑천 삼아 7월21일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장동혁은 8월1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세 번째 합동연설회에서 눈시울이 불거진 모습으로 온몸을 던지는 웅변을 내뿜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감동하면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는데, ”히틀러를 보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군중의 피를 끓게 만드는 탁월한 선동가로 다시 태어난 장동혁은 ‘윤 어게인’을 선도하는 공격성을 보임으로써 8·26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당선되었다. 그는 바로 다음날 당원 게시판 문제에 대한 당무감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의 인사권을 이용해 과격한 ’윤 어게인‘ 인사들을 당의 요직에 앉히고 스피커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당의 정체성을 바꿔 버렸다.장동혁은 2026년 1월 당원 게시판 사건을 빌미로 한동훈을 제명했지만, 극단적인 ’윤 어게인‘ 노선으로 인해 국민의힘 지지율을 바닥을 치게 만들었다. 4월 보수논객 조갑제는 “장동혁 세력을 정치판에서 제거하는 것이 민주당 정권의 폭주를 견제하고 국익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며 “보수당의 조종실을 극우 컬트그룹(내란비호음모론)이 장악해 남쪽으로 가야 할 항로를 북쪽으로 돌리는데도 부조종사(의원)와 승객들(당원)이 무저항을 선택한다면, 납치된 이 여객기를 격추시켜 9·11 같은 피해를 예방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6·3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의 패배로 끝났지만, 장동혁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요구를 비웃으면서 해당행위자에 대한 징계를 통해 당의 기강을 잡겠다고 했다. 장동혁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거리를 두는 의원들은 ‘윤 어게인’ 강성 팬덤이 보내는 ‘항의 문자·전화 폭탄’에 시달렸다. 이런 팬덤이 그의 믿는 구석이겠지만, 보수 언론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 그의 ‘아스팔트 정치’에 그 어떤 미래가 있는 걸까?그럼에도 나는 관점을 달리 해 장동혁을 위한 변명을 해보련다. 조갑제가 시사했듯이, 국민의힘의 근본 문제는 장동혁이라기보다는 ‘윤 어게인’ 노선에 대해 무저항을 선택한 다수 의원과 당원들이다. 국민의힘을 하이재킹한 ‘윤 어게인’ 세력은 현 한국 정당 체제의 치명적인 약점을 꿰뚫어보면서 내심 이렇게 외치고 있다. “마음에 안 들면 탈당해봐. 삭풍이 부는 광야에서 당신들이 춥고 배 고픈 걸 견딜 수 있겠어?”정치학자 박상훈이 잘 지적했듯이, “한국 정당은 공직 진출권이라는 독점 상품으로 권리금을 받아 번성하는,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이른바 ‘제왕적 당대표’의 공천권이 정당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고 있건만, 개혁적이라는 정치인들마저 그 틀은 유지하면서 개혁해보겠답시고 내부적으로 티격태격하느라 결과적으로 정치혐오만 조장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공천 시스템의 변화다. 지역 당원이나 주민이 선출하는 예비선거, 즉 상향식 공천제도의 도입이다. 그런데 이 제도 역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돈이나 인맥으로 동원된 사람들과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 예비선거에 적극 참여한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전자보다는 자발적인 종교적 열정으로 뭉친 후자가 더 문제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예비선거 시스템이 정치적 양극화를 악화시키는 주범 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유권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참여의 불균등’을 바꿀 수 없는 한, 우리는 최선과 차선이 아니라 최악과 차악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최선과 차선이 있는가?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기존 시스템을 악용해 버티려는 사람들과 싸우는 데에 탕진해서야 되겠는가?올해 초에 발표된 조선일보·서울대 국민 의식 조사에서 정당 신뢰도는 7.8%로 최하위 수준이다. 약 열흘 후에 발표된 국민권익위원회의 ‘2025년 부패인식도 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정당·입법 분야를 3년째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지목했다. 정당이 한국의 대표적인 불신·부패집단이 된 현실을 바꾸는 데에 어떤 게 더 도움이 될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만약 장동혁과 ‘윤 어게인’ 세력이 제왕적 당대표 제도의 폐해를 적극 드러나게 함으로써 대대적인 정당 개혁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들의 공로는 찬사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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