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다크 투어리즘 지표 제주4·3평화기념관
제주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정부 진상규명보고서 토대
몰입감 높이는 콘텐츠 많아
한강 인기 덕에 방문객 증가
전문가 "방문객들 생각해야"
국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대표적 명소인 '제주4·3평화기념관'은 제주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5·18민주화운동과 아울러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 중 하나인 제주4·3사건의 기록과 기억이 한데 모여있어서다.
이곳은 처참하고 비극적인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등일보는 5·18 정신을 계승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시설 복원과 함께 전시콘텐츠를 설계하고 있는 옛 전남도청이 향후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최근 제주4·3평화기념관을 직접 찾았다.
제주4·3평화기념관은 12만평가량에 달하는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자리 잡은 제주4·3평화공원(제주시 봉개동 237-2) 안에 자리 잡고 있다. 4·3사건 당시 중산간 지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본 기념관 외관의 모습은 안내도에 설명된 것처럼 마치 4·3사건의 역사를 담고 있는 그릇처럼 느껴졌다. 설계자는 한라산의 봉우리를 뒤집어 형상화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좁고 어두운 동굴 당시 절박함 느껴져
정부의 4·3사건 진상규명 보고서를 토대로 연출된 상설전시실은 동굴을 본떠 만든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동굴은 4·3사건 당시 제주 사람들의 대피처가 된 공간이다. 성인 두 사람 정도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좁고 어두운 동굴은 당시 제주 사람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동굴 곳곳엔 놓인 깨진 항아리들과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듯한 물방울 소리도 절박한 느낌을 더했다.
동굴을 빠져나오면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커다란 비석이 덩그러니 바닥에 눕혀져 있다. '백비'라고 불리는 이 비석은 5·18처럼 폭동이나 사태로 다양하게 불리는 4·3사건이 나중에 제대로 된 이름을 갖게 되면 비문을 새겨 세운다고 한다.
상설전시실은 전반적으로 일본 항복과 미군정의 실시, 신탁통치를 둘러싼 찬반 시위를 비롯해 4·3사건이 발발하기 전 국내·외 상황부터 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절 발포사건,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지역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은 폭도이므로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초토화 작전, 민간에서 시작된 진상규명 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4·3사건의 역사가 시간 순서대로 정리돼 있다.
특히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인 어린아이가 쓰러졌는데도 경찰이 그냥 지나가자 사람들이 항의했고, 경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6명이 숨진 3·1절 발포사건의 급박했던 상황을 재현한 애니메이션은 3분가량의 상영 시간 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몰입감이 높았다.
4·3사건의 피해 상황을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한 지도도 눈길을 끌었다. 방문일 기준 희생자는 총 1만4천822명에 달했다. 희생자 수는 추가 신고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계속 증가한다고 한다.
◆국가폭력 참혹함 엿볼 수 있는 공간도
피난 중이던 민간인 11명이 질식사한 다랑쉬굴을 발굴 당시 모습으로 재현한 공간도 국가폭력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친 방문객들이 추모의 글을 적은 종이를 매다는 '해원의 퐁낭'도 깊은 뜻을 담고 있었다. 퐁낭은 팽나무를 가리키는 제주 방언으로 마을 주민들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공간이지만 4·3사건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려 죽었다고 기념관 해설사는 설명했다.
기념품샵에는 4·3사건을 상징하는 동백꽃 기념품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강지현(26·여)씨는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 4·3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져 방문하게 됐다. 글로 느낀 것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며 "제주도에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다. 제주도 여행을 계획 중이 친구들에게 꼭 들렀다 오라고 추천할까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방문객 입장에서 전시콘텐츠를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콘텐츠를 설계하는 사람에 따라 관점과 견해의 차이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방문객 입장에서 그냥 훑어보고 나가는 공간이 될 것이냐 다시 오고 싶은 공간이 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옛 전남도청은 4·3기념관과 다르게 장소적 진정성도 갖고 있으므로 역사적 현장에 직접 왔음을 느낄 수 있도록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활용해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옛 전남도청과 5·18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며 "설계가 아직 끝난 게 아닌 만큼 한강 작가의 작품도 일정 부분 활용하는 등 콘텐츠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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