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 후보 등록 결과는 광주·전남 정치의 익숙하지만 불편한 현실을 다시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의 우위는 여전히 압도적이고, 상당수 선거구에서는 본선 경쟁보다 공천 결과가 사실상 당선을 결정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광주·전남에서 무투표 당선이 가시화된 후보가 80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지역 민주주의에 주는 경고가 가볍지 않다. 이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 없는 선거가 늘어날수록 시민의 선택권은 줄어들고, 지역 정치는 시민보다 공천 권력에 더 민감해진다. 이번 선거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을 앞두고 치러진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 크다. 출발점부터 공천 독점과 무투표 당선 구조가 두드러진다면, 통합특별시는 시민주권의 새 출발이 아니라 더 거대한 일당 독점 구조의 연장이 될 수 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광주·전남에서는 63명이 무투표로 당선됐다. 2026년 후보 등록 결과는 그 우려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주·전남 전체 후보 등록자는 781명으로 집계됐고, 이 가운데 무투표 당선이 가시화된 후보는 80명이다. 더 주목할 대목은 이들 가운데 79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이 강한 지역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구조가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물론 민주당에 대한 광주·전남 유권자의 지지는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선 지역의 기억,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열망, 보수정치에 대한 불신이 그 기반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지지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쟁, 견제, 책임, 대안이 함께 작동할 때 건강해진다. 특정 정당의 우위가 장기화되고 공천이 당선을 결정하는 단계에 이르면 정치는 시민을 향한 경쟁보다 내부 권력 경쟁에 몰두하게 된다.
공천 과정의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역 선거구 단위에서는 수백 명에서 천 명 안팎의 조직화된 권리당원이 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원 참여는 정당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조직된 소수의 선택이 일반 시민의 선택권을 압도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후보자는 정책 경쟁보다 권리당원 명부 확보와 조직 관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고, 시민은 이미 결정된 후보를 추인하는 관객으로 밀려날 수 있다.
여성 가점과 정치 신인 가점도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더 투명하고 일관되게 운영되어야 한다. 이 제도들은 다양한 인물이 정치에 진입하도록 돕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제도 환경은 달라졌다. 여성의 정치 참여는 과거보다 확대됐고, 각 정당 안에서도 여성 후보의 역량과 경쟁력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여기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광주 일부 광역의원 선거구에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다양한 후보가 진입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도 일부 넓어졌다. 이런 흐름이 확대된다면 여성과 정치 신인의 참여 확대는 특정 지역을 별도로 지정하는 방식보다 공정한 경선 구조와 투명한 평가 기준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광주에서 논란이 되어온 ‘여성 전략특구’ 역시 지금도 필요한 제도인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여성 정치 참여 확대라는 취지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미 여성 가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전략 특구가 중첩된다면 출발선의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여성 참여 확대의 후퇴가 아니라 제도의 재설계다. 규칙은 사전에 공개되어야 하고, 경선 이후 순위 조정이나 전략 지역 지정이 사후적으로 결합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시민사회의 역할을 다시 물어야 한다. 일본의 NPO가 지역 복지, 돌봄, 환경, 마을만들기 등 생활 현장의 공익서비스를 보완하는 성격이 강하다면, 한국의 NGO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권력 감시, 부패 고발, 제도 개혁, 인권 보호, 환경운동, 소비자 권익, 사회적 약자 대변의 현장에서 성장했다. 한국 NGO의 정치성은 특정 정당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민주주의의 결핍을 메우는 공공적 정치성이었다. 한국 시민사회가 선거와 공천 문제를 말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깨는 일이 아니라 시민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따라서 광주·전남 시민사회는 더 무거운 책임 앞에 서 있다. 시민단체가 정치를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특정 정당의 하부조직처럼 움직여서도 안 된다. 단체의 조직적 중립성과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구분하면서, 공공적 기준으로 권력을 평가하고 감시해야 한다. 현실적 대안도 필요하다. 민주당은 공천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하고, 시민사회는 상설 공천감시기구와 시민평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선거 때만 성명을 내는 방식으로는 독점 구조를 흔들기 어렵다. 4년 내내 지방의원과 단체장의 의정활동, 예산 사용, 이해충돌, 생활 정책 성과를 기록하고 공개해야 한다. 나아가 시민 공천과 시민후보 운동, 중대선거구제 확대, 기초의회 비례성 강화, 무투표 당선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공천 과정 외부 검증 장치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이번 선거의 큰 흐름은 상당 부분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민에게 남은 과제는 이 현실을 한탄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민주당 독점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도 보수정당 선택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유권자라면, 진보정당과 소수정당에 대한 전략적 선택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민주당을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이 시민 앞에 더 책임 있게 서도록 만드는 민주주의의 압력이다. 지방의회 안에 다른 목소리가 존재해야 집행부를 감시할 수 있고 정책 경쟁도 살아난다. 한 정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내부 견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시민주권은 선거일 하루 행사되는 권리가 아니다. 공천의 문이 닫힌 뒤에도 시민의 선택은 남아 있다. “누가 공천을 받았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가”, “누가 시민의 삶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진정한 시민주권 도시로 출발하려면, 첫 선거부터 의회 안에 견제와 다양성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바로 그 선택에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민주주의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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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라운지] 통합은 출범이 아니라 '재설계'에서 완성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 광역시와 도가 하나의 통합정부로 재편된 대한민국 첫 번째 행정실험이다. 이 실험의 성패는 대구·경북, 부산·경남 등 타 권역의 통합 논의에 이정표가 될 것이다. 성공한다면 새로운 분권 모델이 되겠지만, 실패하면 또 하나의 정치적 구호로 남을 뿐이다. ‘출범 그 자체’보다 ‘출범 이후의 4년’이 더 중요한 이유다.통합의 배경은 자명하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수도권 집중과 청년 유출이라는 복합 위기 앞에서 기존의 행정 경계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산업과 교통은 이미 광역화됐고, 청년의 삶은 행정구역이 아닌 생활권을 따라 움직인다. 통합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절박한 생존전략이다. 하지만 그릇만 만든다고 음식이 절로 담기지는 않는다. 이제 통합이라는 큰 그릇에 어떤 행정체계와 정치구조, 공간설계를 채워 넣을 것인지 치열하게 논의할 ‘공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가장 시급한 과제는 광주의 법적 지위와 5개 자치구, 그리고 전남 22개 시군의 행정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현재 이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첫째는 현행 5개 자치구와 22개 시군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행정적 안정성은 있지만, 이름만 바뀔 뿐 내부 구조는 그대로인 ‘무늬만 통합’이라는 한계가 명확하다. 둘째는 통합특별시 아래 광주특례시를 두고, 그 밑에 다시 자치구를 두는 3중 구조다. 광주의 특수성은 인정하나, 행정 계층이 복잡해져 효율성이 떨어지고 권한과 책임이 모호해질 우려가 크다. 셋째는 5개 자치구의 권한을 일반 시군 수준으로 대폭 강화하자는 것인데, 이는 자치구의 독립성은 높일 수 있으나 광주라는 대도시가 가진 행정적 통합성과 전략적 운영을 약화시킬 수 있다.필자는 행정 효율성과 공동체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제4의 길’을 제안한다. 기존 광주 권역을 통합특별시 내의 ‘광주특례시’로 재정립하되, 자치구는 ‘행정구’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구청장은 임명직으로 전환하여 행정의 효율을 높이고, 기초의회 폐지로 인한 대표성 공백은 통합특별시의회의 ‘중대선거구제’ 개편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에 대해 지방자치의 후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구감소 시대에 중복된 행정은 슬림화하는 대신, 주민자치회·온라인 정책투표 등을 통해 주민 참여를 오히려 실질화하자는 혁신이다. 대표성의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전남 22개 시군 역시 재설계가 필요하다. 강제적 행정통합보다는 실제 생활·산업·교통권을 기준으로 행정서비스를 공동 운영하는 ‘협약형 광역행정’부터 시작하고, 재원과 행정역량을 공유하는 경험이 쌓인 뒤에 권역별 통합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다.두 번째 과제는 이를 공간 위에 구현할 ‘다핵형 컴팩트시티(Compact City)’ 전략이다. 광주는 대학·병원·문화·창업이 집합된 중추 엔진으로 응집하고, 전남은 권역별 거점으로 압축해야 한다. 예컨대 목포·무안권은 해양물류와 관광, 순천·여수·광양권은 항만·산단·해양산업, 해남·완도권은 재생에너지와 해양 치유의 거점으로 특화할 수 있다. 저밀도 외곽은 무분별한 개발 대신 스마트농업·재생에너지·생태관광 공간으로 전환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영국 그레이터 맨체스터는 중심도시를 해체하지 않고 주변 10개 지방정부와 광역시장이 교통·주택·경제성장을 함께 조정했고, 프랑스 리옹 메트로폴은 58개 코뮌을 묶어 생태전환과 도시계획을 광역 단위로 추진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는 8개 지방정부를 통합하면서도 로컬보드 체계로 생활권 대표성을 보완했다. 이들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중심 도시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 도시를 광역권 전체를 살리는 강한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 그것이 세계적 흐름이다.이제 시작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시민적 합의를 통해 정치·행정·공간구조의 재설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1년 차에는 행정체계 재편에 대한 대대적인 시민 공론장을 열고, 2년 차에는 특별법 개정과 재정 분권 모델을 구체화해야 한다. 3년 차에는 광역 교통·의료·교육·산업·생활권 재편 등 분야별 시범 사업을 추진하고, 4년 차에는 주민 투표를 통해 통합특별시의 최종 구조를 확정해야 한다. 주민 스스로 통합의 완성을 선택하는 이 마지막 단계야말로, 이 실험이 진정한 민주적 과정임을 증명하는 장면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장, 지방의원, 주민 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는 민주적 재료로 삼는 일이다.통합은 광주만을 키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광주를 통합특별시의 중추 엔진으로 세우되, 전남의 시군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특화 거점으로 재편해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목표는 하나다. 광주와 전남이 하나의 생활경제권, 하나의 미래 전략으로 다시 설계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인 광주·전남은 이제 지방행정의 미래까지 앞장서 설계해야 한다. 통합은 화려한 출범식이 아니라, 치밀한 재설계와 시민적 합의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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