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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원이 '목줄 쥔' 320만 시민의 미래···나는 ‘구경꾼’이다

입력 2026.04.27. 08:00 최류빈 기자
■민주주의 심장 광주·전남, 박탈당한 선택권
전남대 사회과학대 재학생 '지현 씨의 이틀' 내러티브
첫 지선 참여 들떴지만, 사실상 ‘찬반 투표' 배신감
선거 원래 이런가…"취업 문제 해결사 내 손 뽑고파"
전남대 사회과학대학에 재학 중인 임지현(21·여·가명) 씨가 25일 스터디카페를 나서 교내 가로수길을 걷고 있다. 처음으로 지방선거에 참여할 예정인 그는 어차피 정해진 결과에 투표를 망설이고 있다. 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지난 주말, 꽃잎이 뜸 잘든 하얀 밥알(이밥·흰 쌀밥)처럼 생긴 이팝나무 흐드러진 전남대 교정. 도서관의 적색 외벽과 청색 하늘을 번갈아 보며 임지현 씨(21·여·가명)는 당혹스러웠다. 혹은 무력감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쏟아진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가 확정됐다’는 뉴스 때문이다. 그의 스마트폰 액정에는 흔한 여론조사 전화번호 하나 찍혀있지 않았다. 광주와 전남이 합쳐지고 일자리가 쏟아질 거라는 장밋빛 청사진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면서 그 또한 기대감을 가졌다.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 떠나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통합특별시가 하나의 희망이 돼 줄 것’이란 막연한 희망이었다. 뉴스를 자주 챙겨본 이유다.

6월 3일 지방선거 때 통합특별시장으로 누굴 뽑아야 할까란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선택권은 나에게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것도 없는데 통합시장은 정해져 있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가 선출이 됐다는 건, 선거가 사실상 마무리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명운이 걸린 통합특별시장을 뽑는 민주당 경선은 ‘국민참여’라는 이름을 달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국민’이 끼여들 여지가 있었나 싶다. 민주당이 당원 주권을 명분으로, 예비경선(권리당원 100%), 본경선·결선투표(권리당원 50%, 시·도민 여론조사 50%)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320여만 명 유권자 가운데 당원이 아닌 지현 씨가 표본으로 선택받아 조사에 참여할 확률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에 가깝다.

민주당원도 아니고, 국민참여경선 여론조사를 받지도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 정서상 당원이 아닌 지현 씨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6월 3일 투표장에 가서 사실상 ‘확인 도장’을 찍는 요식행위 뿐이다. 다른 후보를 선택한다 한들 그게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테니 말이다.

“원래 광주가 이래”라는 별일 아닌 듯한 부모님의 태도에 더 기운이 빠졌다. ‘원래 그렇다’는 말이 우습게 느껴진다. 행정학도인 그가 강의 시간에 배운 정치는 이런 게 아니다. 행정학 교재에 써있던 건 ‘참여 민주주의’의 중요성이었다. 시민 모두가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민주주의의 근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대학생이 돼서 처음 겪는 광주의 지방선거는 10%의 당원이 나머지 90% 시민의 미래를 결정하는 구조였다. 정당이 지역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이 기묘한 민주주의 앞에서 대학생 유권자의 존재감은 어디에도 없다.

이튿날 찾은 스터디 카페에서 만난 친구들의 반응은 더 건조했다. “누가 나오든 내 취업이랑 상관있어? 친구끼리 정치 이야기는 하는 거 아니야” 친구의 말에 지현 씨는 입을 닫았다. 그나마 정치에 관심 있는 윤서(가명)가 민주당 후보가 누구인지 말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윤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오후의 햇살은 눈부시게 맑았지만 펼쳐둔 토익 문제집의 낯빛은 창백했다. 정치적 무력감이 올라왔다. ‘차라리 관심을 끊자’는 마음의 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지현 씨는 다 마신 일회용 커피컵을 찌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6월 3일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 대신 도서관으로 향하는 걸음이 더 가벼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정해진 결과라면 갈 필요가 있을까?” 지현 씨는 첫 지방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광주 투표율은 전국 최저인 37.66%. 선택권 없는 이들의 ‘소리 없는 저항’일지 모른다.

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6·3 지방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박탈당한 선택권’ 문제를 다룬 이 기사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활용했습니다. 국회가 광주·전남 행정통합의 법적 근거가 되는 특별법을 통과시킨 지난 3월 이후, 본격 시작된 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경선 과정의 문제점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관찰자로서 기자가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했습니다. 사실상 한달여 만에 마무리 된 민주당 통합시장 경선을 계기로 투표 참여까지 망설이는 유권자들의 문제 제기와 고민 등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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