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에서 전통 목조건축을 대표하는 지역이 어디냐 굳이 묻는다면 월출산이라 할 수 있겠다. 북쪽으로 영암에 도갑사 해탈문이 있고 남쪽으로 강진에 무위사 극락보전이 있기 때문이다. 두 건물 모두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살아남은 15세기 건축물들이다. 특별히 무위사 극락보전은 1430년(세종12년)에 건축되어 전남에 남아있는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확인되었다. 고려시대 대표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예산 수덕사 대웅전의 계보를 잇고 있다.
백제의 승려였던 혜현(慧顯)은 사부대중의 번잡한 관심을 벗어나 수행을 위해 예산 수덕사를 떠나게 되었고 한적한 달나산(達拏山, 월출산 옛 이름)으로 옮겨왔다고 하니 두 지역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수덕사 대웅전과 무위사 극락보전은 기둥 위에만 공포가 성글게 설치되어 경쾌한 모습이 되는 주심포 양식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렇지만 고려와 조선의 시대적 차이가 보이는데 측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수덕사 대웅전은 부재 간격이 일정해서 규칙적이다. 이와 비교하면, 무위사 극락보전 벽면은 여백의 차이가 있어 리듬감으로 여유가 있다. 예를 들면 건물 중심에 기둥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측면에서 튀어나온 도리들 간격이 규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점에서 다르다. 도리는 좌우 기둥을 서로 연결하면서 지붕의 서까래를 받치는 건축 부재다. 도리 간격은 서까래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옛날 옛적에 참선하는 스님들은 ‘삼조연하(三條椽下) 칠척단전(七尺單前)’이라 하여 수양을 위해 필요한 면적은 가로 방향으로 서까래 셋이요, 세로 방향으로 일곱 자만 된다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천장으로 보이는 서까래와 그 사이 간격들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던가 보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현재 수리중이다. 1956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수리공사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이라 하여 뿌듯함으로 넘쳐났다고 한다. 이후로 크고 작은 수리가 계속되면서 변화된 모습이 발생하였다. 서까래의 아랫면과 부딪치면서 하단의 부재가 잘린 모습도 관찰되는데 원래 있었던 서까래가 교체되면서 발생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휘고 굽은 나무로 서까래를 만들어 사용했을 때는 넓고 좁은 간격을 조절해서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게 뻗은 일정한 모양의 서까래를 사용하면서 간격을 조절하기 어렵게 되었다. 지붕 위에서 이루어지던 대목장의 순발력 넘치는 안목이 없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못이 귀하던 옛날에는 서까래 위쪽 끝부분에 구멍을 만들고 여기에 연침이라는 가는 나무를 꿰었다. 굴비 엮듯 한 몸이 되도록 연결하고 그것을 지붕 앞뒤로 人 모양으로 걸쳐놓았다. 이렇게 하면 서까래들을 한 몸처럼 일체화할 수 있어서 비싼 못을 드문드문 박아도 충분히 고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건비가 비싸 서까래에 구멍을 뚫는 작업, 연침 꿰는 일을 사람이 하기 어렵게 되었다. 제각각으로 생긴 나무를 목수들이 가공하지 않아도 되고 단순한 기계 작업으로 곧고 똑같은 서까래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서까래를 도리에 고정하기 위해 박는 못은 철물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짓는 한옥에 곧고 쭉 뻗은 서까래를 사용하고 연침 구멍 대신 모든 서까래마다 못을 박아 튼튼한 집을 짓는 일에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600년의 건축유산의 경우라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서까래마다 연침 구멍을 뚫는 장인, 연침을 끼우는 전문가 장인들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모양새가 제각각인 서까래를 보기 좋게 조정할 수 있는 대목장은 과연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까 역시 고민되는 점이다.
이번 수리 공사에서 건축문화유산 보존과 전승을 위한 수준 높은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선구적인 해결책들이 많이 적용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무위사 극락보전이 건축 600주년 되는 2030년에 그 성과를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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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커피 한 잔에 담긴 품위, 다형(茶兄)을 떠올리며
장은영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문학평론가
다형 김현승은 그의 시비(詩碑)가 있는 양림동에서 한 시절을 보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다방에 가서 호젓한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던 커피 애호가였다. 「커피를 끓이면서」라는 글에는 “넓은 호올 안에 아직은 음악 소리도 없이 호올로 앉아 있는 그 시간”이 하루 중 어느 때보다도 쾌적하였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술이 인생을 잠재우게 한다면 홀로 마시는 차는 인생을 깨우며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 다형의 커피 지론이다. ‘절대고독’이라는 견고한 정신적 경지에 이르는 순간에도 그의 곁에 있던 커피잔에서는 더운 김이 오르고 있었으리라.홀로 커피와 고독을 즐긴 다형은 나르시시즘이나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먼 시인이었다. 그에게 진정한 고독이란, 그 속에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고독으로부터 자신을 건져내는 일이었다. 신을 잃어버린 인간으로서 자신과 대면하며 인간의 양심과 이성과 정의를 생각하는 일, 이것이 밤에 홀로 커피를 끓이면서 그가 탐닉한 고독의 실체다. 그의 말을 직접 옮기면 이렇다. “나는 정치나 경세(經世)의 원리를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존하는 양심의 소리와 정의의 명령에 따라 실천만 하면 그 사회와 그 국가에는 복지가 저절로 실현되리라고 믿고 있다. 나는 신을 상실하여 가면서 내 양심과 내 정의에 대한 책임을 더욱 무겁게 느낀다.”(「커피를 끓이면서」)실존하는 양심과 정의를 따르기 위해 고독을 감내한 다형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아름다운 시편만이 아니다. 개인의 기호나 문화적 취향을 넘어서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정신적 품위가 담긴 커피 한 잔의 묵직함은 그가 남겨준 또 다른 문화적 유산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내 커피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 스타벅스 코리아는 카페를 찾는 소비자의 취향을 볼모로 5.18을 비롯한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다형 못지않게 커피를 즐기던 수많은 시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이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신세계그룹 회장은 뒤늦은 사과를 하면서 AI에게 마케팅 기획을 물어본 담당자의 실수일 뿐 역사부정에 대한 의도가 없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그간의 맥락을 통해 대중은 이번 사건이 실수와 우연의 산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 왜 이런 마케팅이 가능했을까? 몰랐다는 말로 책임을 형해화하는 사과 아닌 사과를 들으면서 그들이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 공동체에 대한 극단적 무사유와 무책임을 자신의 혹은 기업의 자유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더 어이없는 상황은 지난 선거 기간 동안 ‘커피 한 잔의 자유’를 지키자고 외친 한 정당 정치인들의 유세 장면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스타벅스 불매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보려는 계산에서 나온 괴변이지만 그들이 부르짖었던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묻고 싶다. 그가 옹호하고자 한 것은 역사와 희생자를 조롱해도 되는 자유인가, 아니면 기업의 혐오 마케팅에 동조하는 자유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정파적 입장에 따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마음대로 재단해도 되는 자유인가? 설령 그들의 외침이 진정성을 담은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특정 대상에 대한 비난과 편견을 드러내는 혐오발언은 양심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를 위협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이기적 맹목일 뿐이다.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가치 판단을 상실한 채 ‘자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결정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는 도덕적 공백과 개인주의적 나르시시즘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의미의 지평을 상실한 채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행위는 맹목적일 수밖에 없고, 그런 맹목적 자유를 자기 진정성으로 착각하는 태도는 극단적인 원자주의(原子主義)와 도구주의를 향하며 결국 세계를 파편화한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에 대한 판단을 배제한 채 외치는 공허한 자유는 결국 우리를 공동체 없는 인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공동체 바깥의 존재로 내몰고 만다. 그 끝에는 세계를 잃고 고립무원에 빠진 불행한 주체가 있을 뿐이다.“아무도 모를/높은 향기를/두고 두고/나만이 호올로 마신다”는 다형의 시구에는 자기성찰적 고독이 담겨 있다. 홀로 커피를 마시며 세계와 타인 속에서 비로소 인간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성찰했던 다형은 남을 위해서도 기꺼이 커피를 내놓았다. 커피가 귀한 시절이었지만 집을 찾아온 허다한 손님과 제자들을 위해 손수 커피를 끓여 몇 사발씩 대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 스타벅스 사태를 보면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고독이 담긴 다형의 커피 한 잔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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