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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과 불만족의 ‘동거’…'콘크리트 병풍' 결별할 때

입력 2023.12.05. 21:37 이삼섭 기자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을 혁신하자]
①광주 아파트 왜 흉물이 됐나
광주시민 대부분 아파트 거주 불구
"더는 공급 안돼" 비판 목소리 높아
개발시대 대량공급 방식 '반발' 분석
주거만족도 높아…공공성 회복 관건
광주지역 아파트가 급증하면서 주택 10채 중 8채가 아파트인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조망 훼손 등 사회적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4일 광주천 뿅뿅다리에서 바라본 무등산이 최근 지어진 아파트로 인해 가려져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을 혁신하자]①광주 아파트 왜 흉물이 됐나

"아파트 그만 건축하세요. 고층 건물에 갇혀 사는 지옥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게 해주세요."

지난 2021년 8월. 광주지역 구도심은 물론 외곽으로 아파트가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있는 것에 대한 지역사회의 문제인식이 극에 달할 때, 광주시의회가 의미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광주시민들의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었는데, 적잖은 시민들은 아파트 공급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냈다. 시민들은 여론조사에서 "고층 아파트 남발보다는 주택단지 조성으로 도심 속의 각각 개성 있는 주택 조성을 원한다", "아파트 공급이 너무 많아 그로인해 녹지가 급속도로 줄어든다" 등의 의견을 냈다.

아파트 공급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은 2명 중 1명이 49.2%에 달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찬성은 38.2%에 불과했다. 당시 집값이 폭등하고 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반에 달하는 응답자가 아파트 공급에 반대한 것이다. 이유도 아파트 공급으로 인해 보유한 자산 가치 하락(6.4%)이 우려된다기보다는 기존 주택 활용(35.5%)이나 조망권 침해 등 도시문제 유발(17.4%)과 같은 공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응답자들의 거주 주택을 보면 다소 미묘한 반전이 나타났다. 무려 83.2%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파트를 짓지 말라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자신은 아파트에 살고 싶지만 다른 이들은 연립주택(빌라)이나 단독주택에 살기를 바라는 이중적 태도라고 봐야하는 걸까? 아니면, 아파트 말고 선택지가 없기 때문일까? 혹은 일종의 '애증의 관계'인 걸까


◆아파트 비중 압도적이지만…주거만족도 '높다'

2022년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주택 종류별 주택 비율을 살펴보면 아파트 비율이 64.0%, 연립·다세대가 14.7%, 단독이 20.2%, 비거주용이 1.1%였다. 광주는 아파트가 81.3%, 연립·다세대가 3.6%, 단독이 14.1%, 비거주용이 1.0%다.

전국 평균보다 아파트 비율이 17.3%가 높은 수치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일종의 신도시인 세종시(86.9%)를 제외하고는 압도적인 1등이다. 다른 특광역시의 경우 아파트가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전 75.2%, 대구 75.1%, 울산 73.9%, 부산 68.7%, 인천 66.0%, 서울 59.5%다.

우선 수치로만 보면 광주에서 아파트가 특히 '혐오 대상'이 된 이유는 아파트 위주의 획일화에서 나오는 문제의식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른바 '성냥갑 도시'로 대표되는 특색 없는 아파트가 구도심과 신도시를 막론하고 공동주택 부지만 생기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인 셈이다. 2021년 광주시의회 대시민 여론조사에서도 시민들은 "다양한 주택 형태로 공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의식과 달리 주거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2' 자료에 따르면, 광주의 주거만족도는 91.4%로 세종(95.9%)과 대전(92.8%) 다음으로 높았다. 대체로 특·광역시의 주거만족도가 높았는데, 대구 89.6%, 울산 89.0%, 부산 88.7%, 서울 85.3% 등으로 조사됐다. 눈여겨볼만한 것은 공동주택 비율과 주거만족도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유형별 주택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를 살펴보면, 아파트는 만족한다(매우·대체로)가 93.4%에 달했다. 이에 반해 다세대는 82.1%, 단독은 80.5%, 연립은 74.8%에 불과했다.


◆문제는 7080에 멈춰 있는 아파트 공급

결국 광주지역에 아파트가 많다는 점은 주거환경이나 주거만족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으로 결론낼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파트가 다세대나 단독, 연립 등보다 압도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상황에서 아파트 공급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은 아파트에 입성(?)하지 못한 상당수의 세대에게는 불합리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광주도시공사 도시주택연구소가 올 1월 발표한 주거복지트렌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광주지역 무주택가구는 전체 가구수의 42% 수준인 26만714세대다. 이들 중 87.8%는 자가보유를 갈망했고, 상당수는 아파트를 보유하고 싶을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아파트 공급을 줄이려는 정책보다는 왜 아파트가 미움을 받게 됐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등의 방식으로 기존 공간적 맥락을 파괴한 채 대단지로 지어지는, 이른바 '성채화'(Fortification)로 인한 기존 공간의 왜곡과 단절 등이 문제가 크게 문제화되고 있다. 또 시민들의 공간적 욕구의 수준이 높아진 데 반해 '성냥갑'으로 대표되는 저품질의 디자인, 다양한 가족형태와 거주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채 공장에서 찍어낸 듯 획일화된 내부 구조 등도 큰 문제로 지목된다.

함인선 광주시 총괄건축가는 "개발시대 때 아파트를 싸게, 빠르게,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대량 생산하다 보니 고무도장 찍어내듯 하게 됐다"면서 "결국 똑같은 판상형 아파트로 이뤄진 병풍, 장벽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사업성을 높이려 획일화된 아파트가 양산돼 도시의 흉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광주에 한해서 살펴보면 최근 구도심을 중심으로 난개발이 발생함에 따라 무등산 조망권이 크게 훼손된 것도 아파트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광주시 경관관리계획에서 조망점 등을 세밀하게 반영하지 않고 수립하면서 무등산과 같은 랜드마크 조망 훼손을 막지 못한 것도 시민들의 비판을 높인 한 원인으로 꼽힌다.

박홍근 나무심는건축가 대표는 "도심에서는 일률적 높이제한을 하면 15층짜리든 25층짜리든 (랜드마크) 시선을 가리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경관계획에서 주요 조망점과 경관포인트(무등산 등)를 정확히 해 철저한 높이 관리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관관리를 총론(기본원칙)으로만 할 게 아니라, 각론(개별적 부분)에서 실행계획을 촘촘히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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