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가 점령한 무등산 조망···'독점' 못한 한라산

입력 2023.12.20. 18:55 이삼섭 기자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 혁신하자]
⑤엄격한 높이 관리, 제주다움을 만들다
30년 전 종합계획 수립·고도지구 제정
신·구도심 상업지역 최대 55m 이하
호텔 등 전략 시설에선 유연함 보여
광주 일률적 높이 아닌 차등적 규제
경관계획서 주요 조망점 등 다뤄야
제주 도심지역에서 바라본 한라산. 건축물 고도 관리로 인해 어디서든 한라산을 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 혁신하자]?⑤엄격한 높이 관리, 제주다움을 만들다

"광주에서는 아파트에 살아야 무등산을 마음껏 조망할 수 있는데, 제주도는 어디에 살든 한라산을 볼 수 있으니 정말 다릅니다."

제주시민들은 '한라산이 제주이고 제주가 한라산'이라는 즐겨 쓴다. 제주도민들의 한라산에 대한 애정과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한라산은 광주의 '무등산'과 닮은 점이 많다. 광주사람들은 무등산을 뒷산 오르듯 여기면서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를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특히 두 지역 모두에서 인공물이 아닌, 자연적으로 형성된 랜드마크라는 점에서 조망권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하지만 제주도에서의 '한라산 조망'과 광주에서의 '무등산 조망'은 큰 차이가 있다. 광주에서 무등산 조망은 '높이를 점령한' 이들의 전리품이 된 반면, 제주도에서는 한라산 조망을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등급도 차별도 없다는 무등(無等)의 말이 무색해진 것과 달리 제주지역 어디서나 한라산을 볼 수 있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동네마다 다른 '한라산 뷰'…주택 만족도도 높다

제주도 어디에서나 한라산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제주도의 '상징'이자, 제주도민의 자랑이다. 높은 건축물을 올라가지 않더라도 한라산을 볼 수 있으면서 제주도에서는 동네마다 각기 다른 '한라산 뷰'를 자랑하는 게 일상이다.

무등산 조망권 훼손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광주시에서는 '어느 아파트'에서 무등산 전경이 좋으냐를 두고 자랑하면서 입싸움을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제주로 이주한 지 3년 차라고 밝힌 공기업 직원 김모씨(30)는 "상업지역이 아닌 이상 제주도에서는 어느 건물에 올라가지 않고도 한라산을 볼 수 있다는 게 제주살이 중 중요하게 차지하는 즐거움이다"면서 "한라산이나 오름이라는 특수한 자연적인 랜드마크가 있기 때문에 다른 도시와 비교하는 건 맞지 않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조망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고도 관리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국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단지 아파트의 비중은 극히 적고, 고층 아파트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들의 '거주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시 주거환경 만족도는 2021년 기준 89.4%로, 전국 17개 지자체 중 4번째로 높았다. 특히 특·광역시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치다.

◆엄격한 고도·경관관리가 '비결'

제주도의 경관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완만한 원추형의 섬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고, 여러 부속 섬과 오름이라는 천혜의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경관을 지키기 위해 제주시는 지난 1994년 제주도 종합개발계획 등에 따라 한라산과 오름 등 자연경관을 보호하는 '고도지구'를 제정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조금씩 변화가 있었지만 당시 제정한 고도지구는 큰 틀에서 유지돼 왔다. 고도지구는 크게 신제주생활권(신도심권), 중앙생활권(원도심권), 삼양생활권 등으로 나뉜다. 신도심권과 원도심권 모두 상업지역에서 최대 55m 이하로 유지된다. 이 때문에 흔히 아파트를 가장한 주상복합이 상업지역에서 무분별하게 올라가는 현상을 방지하는 장치도 됐다.

특히 녹지에서는 15m 이하로 강하게 제한돼 있어 도심권을 벗어나면 한라산은 물론, 주변 오름 등을 막는 건축물이 전혀 없는 정도다. 다만, 호텔 등 도시 전략 시설에 한해서는 특별히 높이 제한을 해제하는 유연함도 나타난다.

무엇보다 제주시는 꼼꼼하고 세부적인 경관계획을 마련한 게 주목할 만하다. 경관관리계획 내 경관구조별 분류를 살펴보면 경관권역, 경관축, 경관거점 등으로 세부화했다. 특히 경관권역과 경관축, 경관거점 등을 세밀하게 규제하면서 기계적 높이 규제가 아닌, 입체적 높이 관리를 시행했다.

다만, 최근 제주시는 고도 관리 완화 방침을 추진 중이다. 특히 원도심 내 다수의 공동주택이 재건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가 시민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고도 완화를 통해 보행자 통로 뿐만 아니라 소규모 공원과 녹지,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서다.

제주시의 엄격한 고도 관리로 인해 공동주택이 즐비한 도심에서도 한라산 조망이 가능하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고도 관리는 낮추는 게 아닌, 장소에 따른 '차별화'

제주시의 고도·경관 관리 계획이 일찌감치 만들어져 '제주다움'을 만든 것과 달리 광주시의 경우 구도심을 위주로 고층 난개발이 발생해 '도시 문제'로 떠올랐다.

2000년대 후반부터 구도심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저층 주택단지는 고층 아파트로, 상업지역은 주상복합으로 무분별하게 탈바꿈하면서 무등산을 가려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최근 고층 아파트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가 높아진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높일 데 높이고 낮출 데 낮추는' 도시계획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도 관리는 단순히 높이가 올라가는 것을 막는 것만이 아닌, 필요에 따라 고층화가 필요한 지역은 높이고 경관 확보를 위해 낮출 필요가 있는 곳은 낮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구도심은 높이를 낮추는 대신 고밀도로 개발하고 신도심이나 외곽지역은 고층 제한을 푸는 식이다.

다행으로 광주시는 최근 무등산 조망을 위한 원도심 경관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21년 '광주 도시·건축 선언'을 통해 무등산과 광주천이 어우러져 보여 주는 천혜의 자연 경관을 보존하기로 했다. 민선8기 들어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중점 경관관리 구역'을 확대해 원도심은 낮추고, 광천사거리나 백운광장 등은 더 높이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병풍 아파트를 장려해 무등산 조망이나 스카이라인을 훼손한 건축물 층수제한도 해제했다.

다만, 광주시 경관계획을 통해 무등산이나 주요 랜드마크 조망이 가능하게 하는 지점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박홍근 나무심는건축인 대표는 "도심에서 일률적으로 높이 제한을 하면 15층이나 25층이나 시선을 가리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중요한 것은 경관계획에서 주요 조망점과 경관 포인트(무등산 등 경관 지점)를 정확히 다루지 않으면 어떻게든 무등산 조망은 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현 광주시 경관계획에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조망점 설정 등)을 정하지 않으면 심의를 통해 규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면서 "한 필지에 대해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결국 지역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불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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