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살아요, 근데 아파트는 싫어요

입력 2023.12.05. 21:36 이삼섭 기자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을 혁신하자] 프롤로그
도시 급속히 성장하며 '히트 상품'
난개발 막고 인구수용 높지만
대단지 개발 위주에 '부작용' 심각
보급 불가피…'어떻게 만들지' 관건
광주 도심 전경.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을 혁신하자] 프롤로그

"광주는 아파트 공화국입니다. 건설사와 투기꾼들의 탐욕으로 이뤄진 재앙이에요. 그만 좀 지어야 합니다."

광주에서 사회적 지위가 꽤 있는 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광주지역 주택문제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파트 획일화나 공급 과잉 문제야 지역 오피니언 리더층의 인기 있는 소재였기 때문에 새로운 것도 없지만, 지역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광주지역 주택 10채 중 8채는 아파트. 성냥갑으로 대표되는 볼품 없는 모습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난립하면서 도시의 개성을 잃게 한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질문 하나를 던졌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때 상대방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혹시 어디에 거주하고 계신가요?"…"OO아파트요."

순간 짧은 침묵이 흐른 건 기분 탓일 것이다. 광주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대단지 아파트라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광주에서 좀 산다는 사람치고 아파트에 안 사는 사람이 있던가.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광주에서 OO아파트에서 산다는 것은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근처에 아파트가 계속 생겨서 조망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만 안 했으면, '더 평범한' 광주에서의 일상적 대화일지도 모른다.

고민의 지점을 확장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아파트는 우리 대부분이 당연하게 살아가고, 또 살고 싶은 주거 형태이면서 동시에 '혐오'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파트를 그만 지으라고 하는 이들 중에 빌라나 2~3층의 다세대 주택에서 살고 싶은 이 있던가. 아파트에서 내려올 용기가 없는 것과 아파트로 올라가고 싶은 욕구는 같다.

"아파트는 죄가 없습니다."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아파트는 단기간에 급속하게 성장한 국내 도시에는 축복과 같은 존재다. 아파트의 양적 보급은 도시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급속히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면서 수평 난개발을 막고 비교적 쾌적한 도시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어느 광역시보다 아파트 보급률이 높은 광주시민들은 경제력이 높지 않더라도 보편적으로 안전하고 만족도가 높은 보금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집단으로 모여살면서 어떤 주거 형태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며, 에너지 사용 측면에서도 친환경적이다.

그럼에도 아파트가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개발도상국 시대를 지나 선진국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보급이나 형태가 여전히 과거의 '대량 공급'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지 위주의 획일적 아파트 형태의 공급은 공간적·문화적 맥락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아파트 보급률이 높은 광주에서는 이 같은 부작용이 크게 나타났고, 그 만큼 혐오 또한 강했다. 아파트 자체가 아닌, 그동안 이 도시에서 지어진 아파트의 모습이나 발생한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파트를 그만 짓자'가 아닌, '어떤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개인과 사회, 도시 모두에게 필요한 아파트를 생각해야 한다. 지난 시대의 잔재와 같은 아파트와 결별하고 지속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아파트를 어떻게 보급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도시 간 경쟁의 시대, 건축물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동주택은 '도시 경쟁력'이다. 그 도시 문화 수준의 결정체임과 동시에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다. 공동주택 혁신에 실패하면 도시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무등일보는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을 혁신하자'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광주뿐만 아니라 국내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기존의 공동주택 문제점을 진단해보고 국내외 사례를 통해 광주라는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시민들의 삶의 질을 책임지는 공동주택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를 살펴본다. '아파트 혐오'를 더 나은 공동주택을 만들어가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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