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호원 네 명으로 ‘벽’이 쳐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경선 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묻자, 말 대신 몸으로 화답한 거다. 뒤로 밀쳐지자 등허리가 아팠다. 그보다는 민주당 지도부가 호남 민심을 대하는 태도가 실체화된 듯해, 착잡함이 더 컸다.
12일 정 대표가 5·18 민주묘역에 이어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기자들을 극도로 회피하는 행보를 보인 이유는 분명하다. 현 상황에서 삼십육계(三十六計)가 그나마 비책이라 생각해서일 거다. 5·18 민주묘역 참배 이후나 최고위 회의 이후, 모두 기자 질의응답 시간을 없애고 도망치듯 떠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 민심을 경청하러 왔다”던 공언이 궁색했기에 정 대표를 따라가며 연신 질문했다. 할 말 있으면 대변인실 통해 전해달라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꽂힌다. 눈앞에 섰는데, 지역민의 우려에 즉답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그가 걸음을 멈추더니 기자를 한참 쏘아본 건 그때다. 나 역시 물러서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언론의 뒤에 320여만 통합시민이 함께 서 있어서다.
정 대표의 유구무언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민주당 참패·책임론은 이를 방증한다. “지도부가 뻔뻔하다”거나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최고위원들의 지적이 바로 그것. 민주당이 서울시장 탈환에 실패했고, 초대 통합특별시장 경선 과정에서 데이터 비공개·과도한 속도전으로 깜깜이 경선 논란을 빚은 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최고회의에서 위원들 간 공개 충돌이 이어진 데 대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력 있는 민주당이 되면 좋겠다”며 애둘러 갈등을 봉합하려는 반쪽 리더십만을 보였다.
그러는 사이 잡음은 끊길 기미가 없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 정 대표가 출마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 정도다. 전날 의원총회에서도 전당대회 공정관리와 함께 대표직 사퇴 요구마저 나왔다. 실각의 위험 앞, 정 대표에게 ‘무언의 대답’을 들었다는 의미다.
기자는 묻고 정치인은 답할 뿐이다. 과오가 있다면 시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응당 정치인의 의무요, 그 갈증을 해소하는 매개가 되는 게 기자의 책무라면 책무겠다. 기자의 질문은 개인의 궁금증을 넘어 지역민의 여론을 대리하는 일이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권력과 시민을 연결하는 공론장의 핵심 축으로 본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 모두가 일일이 나서 권력자에게 질문할 수 없기에, 언론은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
그가 말 대신 표정으로만 펼친 이 ‘팬터마임’이 호남 민심을 기만하는 서커스가 되어서는 안될 거다. 권력을 쥔 자가 책임정치라는 명분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온 호남 민심과 지역 발전의 염원을 위해서라면 더 그렇다. 정치인은 늘 당당해야 한다. 언론 앞에서 쥐구멍을 찾는 건, 시민의 질타를 피하고 싶다는 말과 다름 없다. 정 대표의 뒷모습에서 꺾여버린 호남의 회초리가 보였다는 의미다.
우리 서로 주어진 소임에 충실해보는게 어떨까. 기자는 그저 묻고 정치인은 시민들에게 답을 하자. 경호원으로 쌓인 검은 벽 너머에 들불 같은 호남 민심이 있다. 기자는 물었다. 정 대표는 언제 호남의 아우성에 답할 건가?
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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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연구원, '통합 공공기관 1호' 될까
2023년 분리 직전의 광주전남연구원 전경. 무등일보DB.
전남광주통합특별시(약칭 광주특별시) 출범에 따라 산하 공공기관의 단계적 통합이 예정된 가운데, 광주연구원과 전남연구원이 가장 먼저 통합 물꼬를 틀 것으로 전망된다. 두 연구원은 과거 한 몸으로 운영됐던 경험이 있어 수많은 산하 기관 중 가장 속도감 있게 통합을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22일 광주특별시의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소관 업무보고에서 광주연구원과 전남연구원은 오는 8월까지 통합을 위한 조직진단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연말까지 통합 절차를 마무리한 뒤, 내년 초 통합 연구원 출범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두 연구원은 2015년 광주전남연구원으로 통합했다가 지난 2023년 분리된 바 있다. 지역별 정책 수요 대응과 전문성 강화가 이유였다. 광주특별시 출범으로 분리 3년 만에 또다시 합쳐지는 수순을 밟게 됐다. 이미 오랫동안 한 지붕 아래 있었던 만큼 통합 절차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계획대로 내년 초 출범하게 될 경우 가장 먼저 통합을 이뤄낸 기관으로 기록된다. 다만, 과제 또한 있다. 3년간 분리되면서 운영 방식에 차이가 누적된 점이다. 두 연구원 측은 “양 기관의 운영체계와 제도에 차이가 있어 이를 조정하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반관리비와 기금 운용 방식, 내부 규정과 연구과제 선정·평가 체계 등 제도 정비에 나설 뜻을 밝혔다. 통합연구원이 들어설 청사와 업무 공간을 새롭게 확보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박필순 의원(더불어민주당·광산구3)은 “청사와 연구환경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우수 연구인력 확보와 중장기 연구과제 수행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안정적인 연구수행을 위해선 조직 통합과 함께 독립된 연구공간을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분리와 통합을 모두 경험한 기관인 만큼 신속하고 균형 잡힌 통합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 의원은 “연구원은 통합의 경험이 이미 있는 기관”이라며 “과거 통합과 분리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면밀히 분석해 특별시 출범 100일 내 신속하고 안정적인 기관통합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한편, 옛 광주시와 전남도의 지방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은 각각 20곳, 23곳 등 모두 43곳이다. 7월 광주특별시 출범에 따라 통합·기능 재편에 착수했다. 43개 기관 가운데 유사한 기능을 하는 기관은 25곳으로, 2027년 6월까지 통합 또는 기능을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맞춰 이달 중 기관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조직과 인력, 재무, 사업 진단에 착수한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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