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와 광양에 뿌리내린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은 대한민국 산업화와 수출 경쟁력을 견인해 온 주역이다.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광양제철소는 단일 산업단지로 국내 최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자랑하며 수많은 일자리와 지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 산업들은 한계에 부딪혀 있다. 글로벌 공급과잉,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탈탄소 전환이라는 '3중고(三重苦)'가 겹치면서 근본적인 산업구조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여수·광양 산업 전환' 공약이 단순한 지역 민원성 공약이 아니라 국가 산업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전남도는 '석유화학·철강산업 대전환 메가 프로젝트대'의 조속한 실행과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수출 중심 전략 바꿔야
여수산단과 광양제철소는 과거 수출 중심 전략으로 고속 성장을 이뤘다. 여수에서는 범용 석유화학 제품들이 대규모로 생산돼 세계 시장으로 수출됐다. 하지만 글로벌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이러한 수출 중심 전략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우선 석유화학산업은 중국과 중동 국가들이 대규모로 신규 설비를 증설하면서 공급과잉 상태에 빠졌다. 특히 중국은 정부 주도의 설비 증설과 저가 전략으로 세계 석유화학 시장의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동시에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수출 시장에서는 환경 규제 강화로 기존 범용 제품의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수 NCC(납사 크래커) 공장 가동률은 역대 최저 수준인 74%까지 떨어졌고, 2023년 기준 생산액과 수출은 각각 15.3%, 16% 감소했다.
철강산업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한국산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었지만, 지난 4일에는 이를 50%까지 확대했다. 이로써 한국산 철강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사실상 상실됐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경우 올해 1분기 대미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0.2% 감소했고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현대제철 역시 북미 현지 합작법인을 통한 생산 이관과 현지 전기로(EAF) 설비 투자를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들은 해외 현지 생산 확대라는 선택지가 있지만 국내 중소 협력업체들은 대안이 없고 수출 감소가 지역 내 중소기업 생태계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탄소중립, 미룰 순 없어
여수·광양 산업단지는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여수산단과 광양제철소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온실가스 다배출 지역이다.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이들 산업단지의 구조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전남도는 이들 산업을 고부가가치·친환경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석유화학·철강산업 대전환 메가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총 5조5천628억원(국비 2조3천억원 포함)이 투입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핵심 내용은 ▲국가기간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 ▲고부가·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 ▲탄소중립형 특화단지 조성 ▲청정수소 산업벨트 구축 등 산업 전반의 구조 전환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스페셜티, AI, 바이오 기반 신기술 적용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철강산업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과 철강 부산물 재자원화, 고순도 산업용가스 개발 등을 추진해 탈탄소화와 첨단화를 병행할 방침이다. 특히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기존 고로 기반 철강 생산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법·제도·인프라 재정비 필요
이번 메가 프로젝트의 또 다른 핵심 축은 국가기간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이다.
전남도는 현재 산업구조 전환을 위한 법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관련 법이 제정되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기업 지원, 규제 특례 등이 가능해진다.
아울러 탄소중립형 특화단지 지정도 추진된다. 이를 통해 여수·광양 일대에 친환경 인프라와 공용 배관망 등이 구축된다. 또 청정수소 인프라 확충에도 박차를 가한다. 무탄소 원전을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과 수소 공유 배관망 구축, 그린수소 에너지 섬 실증 사업 등이 포함됐다.
유화학·철강산업 대전환은 단순히 산업 경쟁력 제고 차원을 넘어 지역경제와 주민들의 일자리와도 직결된 문제다. 여수 산단에서는 신규 투자와 유지·보수 예산이 줄면서 협력업체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이미 일부 업체에서는 인력 감축이 시작됐다. 철강산업 협력업체들도 수출 감소와 내수 부진에 따른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전남도는 대응책으로 여수가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는 앞장섰고 광양만권도 지정을 추진 중이다. 여수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후 현재까지 19개 사업(3천707억원)이 지원 대상 사업으로 선정됐으며, 긴급 경영안정자금과 고용안정 지원 등도 시행 중이다.
이처럼 극심한 위기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철강산업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여수·광양 산업 대전환'을 약속했다. 이제는 공약을 실천으로 옮길 시간이다. 정부와 정치권, 산업계, 지역사회가 긴밀히 협력해 한국 산업의 미래를 다시 그려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진호 전남도 기획조정실장은 "현재 여수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됐지만, 그에 따른 금융지원·세제감면 등 실질적 지원이 추경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며 "이번 추경에서는 예산지원과 후속 정책조치를 신속히 담아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윤 실장은 이어 "구조조정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도 필요하며, 이는 국회 및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진할 계획이다"며 "광양은 현재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추진 중으로, 관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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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띄운 광주 군공항 TF, 무안군은 엇박자?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시민·전남도민과 타운홀미팅을 하고 있다. 뉴시스=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광주군공항 이전 '6자 TF' 가동을 앞두고 무안군이 '공개 공모 방식' 카드를 꺼내 들면서 지역사회 우려가 커진다. 이재명 대통령이 무안공항 이전을 전제로 타운홀미팅 토론회를 주최한 데 더해 무안군이 참여하는 TF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신뢰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일각에서는 무안군이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카드로 보고 있지만, 자칫 지역 간 불신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 늦기 전에라도 광주시와 전남도, 무안군이 상호 신뢰를 높일 보완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조언이다.15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군공항 이전을 위한 6자 TF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조만간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한편 이해관계가 있는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 의견도 청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런 가운데 6자 TF에 포함된 무안군이 군공항 이전 후보지를 공개적으로 공모하는 방식으로 전환해달라고 건의하면서 긴장감이 팽배해지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6자 TF는 광주군·민공항 모두 무안국제공합으로 통합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으로, 이를 거스르는 행보이기 때문이다.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광주시민, 전남도민 타운홀미팅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이 대통령은 지난달 말 광주에서 타운홀미팅 미팅을 통해 군공항 이전 토론회를 열면서도 '무안공항 통합'을 전제로, 무안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책임지는 것이 맞다"며 지자체 3자는 물론 국방부와 기재부, 국토부가 참여하는 TF 구성을 약속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난 7일 "사실상 국정과제"라고 밝히기도 했다.더군다나 토론회에서 김 군수는 "결국 신뢰가 문제"라며 국가가 주도하고 획기적 인센티브가 제공되면 군민을 설득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대통령도 이에 호응하며 무안군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광주 종전 부지 개발 과정에 무안군이 사업자로 참여토록 제안하기도 했다.하지만 TF 첫 회의가 진행되기 직전에 무안군이 엇박자를 내면서 스스로 신뢰를 깨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광주지역에서는 차선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임한필 광산시민연대 대표는 "무안군수가 대통령 왔을 때는 조건들이 맞으면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하는 태도는 내년 선거도 있고 하니 절대 안 받으려고 하는 분위기 같다"면서 "그렇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광주에 존치하고 소음을 개선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했다.김산 전남 무안군수가 2025년 6월 25일 광주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광주시민, 전남도민 타운홀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다만, 일각에선 김 군수의 이번 대응이 '정치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TF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전 협상력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무안군 입장에서는 대통령실 TF에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면 협상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최대한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로서 균형적 조정을 시도하더라도 시·도와 무안군 간의 신뢰가 무너지면 그 자체로 협의 동력을 상실한다. 대통령실 TF와 별개로 지자체 간 신뢰를 유지할 별도의 보완적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는 제안(무등일보 6월 23일·7월2일자 보도 참고)이 힘을 얻는다.강기정 광주시장 또한 지난 10일 "대통령실 직속 광주 군 공항 이전 TF가 만들어졌고, 이에 발맞춰 우리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시·도민 협의체 구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광주시와 전남도 간 상당한 교감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무안군이 협의체에 부정적 모습을 내비치면서 실질적 진전을 이뤄지지 않고 있다.광주시 관계자는 "3자 간 협의체 구성을 검토 중이지만, 무안군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함께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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