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아랑곳 않고 어민 1천500여명 참석
수십장 현수막에 어민들의 절박함 묻어나
“벌써부터 뒤숭숭…생계터전 잃는다” 항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면 국내 수산업계는 완전히 좌초된다. 방류 전인데도 벌써부터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정부가 코 앞으로 다가온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를 적극 저지하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2~3주 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나라 수산물의 약 60%를 생산하는 전남지역 어업인과 어업경영인들이 한목소리로 방류 저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16일 오후 2시 30분 고흥 녹동바다정원에서 고흥군 어민회와 고흥군수협 주최로 열린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육상 집회'현장.
전남 22개 시·군과 지역 80여개 어업인 단체 소속 1천500여명의 어업인과 어업경영인들은 이날 한목소리로 "일본 오염수 방류되면 전남 어업인들이 도산한다"고 소리쳤다.
고흥군 어민회는 집회 2시간 전인 낮 12시부터 녹동바다정원으로 들어오는 다리부터 메인 무대인 바다정원까지 100여m 거리에 20여장의 현수막을 걸며 집회 분위기를 띄웠다. 이들은 바다정원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우리 바다는 쓰레기통이 아닙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걸었다. 특히 도로 양 옆에 걸린 '바다야 미안해, 우리가 지켜줄께!',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투기 철회하라!',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투기 규탄' 등의 현수막에는 어민들의 절박함이 묻어나 있었다.
집회가 시작되는 2시가 다가오자 전남 곳곳에서 모인 어민단체들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결사 반대', '정부는 어업인 생존권을 보장하라', '방류를 철회하라' 등 정부를 규탄하는 피켓을 받아들고 착석했다.
전남지역 마지막 집회인 이날,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나온 어민도 있었고, 70대 고령의 어민을 비롯해 어업경영인들도 참석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키웠다.
집회 시작을 알린 김용민(경기 남양주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본은 경제성을 이유로 바다에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고 한다. 경제성과 효율만 따지게 된다면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어민들의 삶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 어민들의 삶을 보호해야 할 윤석열 정부는 최근까지 단 한 차례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는 정부만이 할 수 있지만 정부는 할 마음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여기 모인 어민들과 정치권이 강제적으로 일본을 막아설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일본 재판부에 직접 재판을 신청하는 것"이라며 "정치권과 어민들이 함께한다면 재판에 승소해 강제적으로 일본의 잘못된 행정을 막아설 수 있다"고 동참을 호소했다.
이희정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고흥지부 회장도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2차 정화해 방류하겠다고 하지만 삼중 수소를 비롯한 8개 방사능 액종은 완전히 제거가 불가능하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원전 오염수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자국의 공업용수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원전 오염수"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진다면 200일 내에 고흥이 자랑하는 물김을 비롯한 삼치, 병어, 문어 등 다양한 수산물 또한 먹지 못하게 되고, 어업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다. 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에 '국민 84%가 반대하는 원전 오염수 방류를 하지 못하겠다'는 의지를 단호히 전달하라"고 촉구했다.
집회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모(82)씨는 "자식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바다에서 어부로 살아오다 이제는 그만뒀다"며 "바다는 어민들의 생계 터전이자 최후의 보루다. 정부는 어민들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말고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 철회를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어업인 단체들은 지난 6월 23일 완도군을 시작으로, 장흥군과 보성군, 영광군에서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를 진행했다. 어업인 단체들은 추후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시기를 보며 집회와 정부 규탄 대회 등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과 전남도의회도 원전 오염수 방류 저지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전남도당은 지난 12일 장흥통합의학컨벤션센터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총괄대책위원회 발대식을 개최하고 제도적 대안 마련과 해양 방류 저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대책위는 우선 도민과 어업인을 대상으로 한 원전 오염수 방류 시 위험성을 홍보함과 동시에 국제해양제판소와 국제인권위원회 제소 등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전남도의회도 17일 오전 도의회 브리핑룸에서 비용 절감을 이유로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계획 중인 일본과 일본을 대변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고흥=박용주기자 dydwn8199@mdilbo.com
- [르포] "다가올 추석이 걱정"...日 오염수 방류에 광주 수산업계 '한숨'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하루 앞둔 23일 오전 광주 남광주시장에서 만난 신현숙(68·여)씨가 텅 빈 거리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코로나 때는 숨 쉴 구멍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네요. 당장 다가올 추석이 걱정됩니다."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눈앞에 닥친 23일 수산물 상인들의 위기감과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특히 수산물을 파는 상인들은 추석이 한 달여 남은 시점에서 일본 오염수가 방류돼 생선은 물론 수산물 선물세트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면서 정부의 신속한 지원대책 마련을 호소했다.수산물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음식이나 재료를 파는 상인들도 원전 오염수 방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23일 오전 광주 남광주시장. 광주를 대표하는 수산물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흥정 소리 대신 상인들의 한숨 소리만 맴돌고 있었다.상인들 대부분은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열고 장사 준비에 애를 썼지만, 손님은커녕 지나는 시민도 많지 않았다. 몇 안되는 손님들마저 생선의 상태가 괜찮은지 한참을 확인하다가 이내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하루 앞둔 23일 오전 광주 남광주시장에서 만난 이두영(53)씨가 씁슬한 표정을 짓고 있다.수산물 코너 곳곳엔 '임대' 현수막이 붙은 채 셔터가 내려간 상가들도 눈에 띄었다.며느리와 함께 수산물을 파는 신현숙(68·여)씨는 "코로나 이겨냈더니 이제 오염수가 큰 걱정거리가 됐다"면서 "찾아오는 손님마다 '먹고 괜찮겠죠?'라고 물을 때마다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이어 "당장 추석 대목부터 문제다.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구색을 갖추고자 생선을 구매하겠지만, 제사상 차리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육류를 구매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이곳에서 2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이두영(53)씨도 과학적·기술적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판단을 믿을 수 없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씨는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시간이 흘러 방사능이 몸에 쌓여 중독됐을 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며 "지원금이라도 나왔던 코로나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도산하는 업체들도 수두룩해질 것이다"고 우려했다.비슷한 시각 광주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서구 양동시장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일류와 채소류, 육류 코너와 달리 수산물 코너 일대는 상대적으로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전복과 낙지 등 신선한 제철 수산물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지만, "싸게 준다"며 지나가는 손님을 붙잡는 상인들의 분주한 모습만 보였을 뿐 구경하는 손님들은 손에 꼽았다.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하루 앞둔 23일 오전 광주 양동시장에서 만난 상인 나종려(94·여)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수산물을 파는 나종려(94·여)씨는 "70년 한 평생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일은 처음이다.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더라도 수산업은 예년과 같지 않을 것이다"며 "엊그제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부터 매출이 반토막으로 줄었는데 실제 방류가 이뤄진다면 경제적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코로나 때와 달리 숨 쉴 구멍도 없다"고 눈물을 글썽였다.인근에서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강옥주(61·여)씨도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로 손님이 줄었는데 방류가 시작되는 내일(24일)부터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더 줄어들 것이다. 다가오는 추석 대목이 최대 고비다"며 "정부 차원에서 수산업계 소상공인들의 매출 급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했다.양동시장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도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가 결정되면서 손님이 30% 가량 줄었는데 당장 내일부터가 더 걱정이다"며 "국내산 재료만으로 장사하더라도 별 도움이 안될 것 같아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는데 가슴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한편,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24일 오후 1시께부터 시작하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 오염수의 트리튬 농도를 1ℓ당 1500베크렐(㏃) 이하로 희석, 하루 460t에 달하는 오염수를 17일간 총 7천800t가량 방류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이후 12년 만이다.글·사진=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고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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