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 맞아떨어진 5.18재단과 정부···'대통령 공약' 후퇴시켰나

입력 2023.04.11. 18:54 이삼섭 기자
[대선 1년…윤 대통령 ‘광주·전남 공약’ 점검]
⑪광주국제자유민주인권도시 조성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2월16일 오전 광주 광산구 송정매일시장을 찾아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대선 1년…윤 대통령 ‘광주·전남 공약’ 점검] ⑪광주국제자유민주인권도시 조성

尹, 5·18국제자유민주인권연구원 설립 약속

국가기관 위상·네트워크 거점 기대했지만

기념재단 산하 '운영비 13억원' 조직 설립

市·유관 단체와 충분한 협의 없이 '속전속결'

"위상·사업 뺏기지 않으려는 시도" 해석도

재단 "현실적 운영 방안 공감대…시범사업"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광주 국제자유민주인권도시 조성'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은 5·18국제자유민주인권연구원 설립이다. 5·18민주화운동의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인권 정신을 세계로 확산하기 위한 '전세계적' 네트워크 거점 기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국가기관이 설립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비영리재단인 5·18기념재단 산하 조직으로 출범하면서 사실상 공약이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적은 돈으로 대선공약 하나를 털어 내려는 정부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5·18기념재단,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한 광주시의 '3박자'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내 5·18국제연구원 소개란 홈페이지 갈무리

◆대통령 공약 사업비 받았는데…기념재단 '쉬쉬'

대통령직인수위가 공약으로 발표했던 5·18국제자유민주인권연구원은 올해 행정안전부 운영비(13억원)를 받아 5·18기념재단 내 이사회 직속 5·18국제연구원이라는 조직으로 설치됐다. 그야말로 소리소문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면서, 5·18기념재단 관계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업이 진행된다는 사실 조차 모를 정도였다.

무등일보가 단독보도(2023년 2월 6일자 윤 대통령 공약 '5·18국제연구원' 추진한다)하기 전까지 보도된 바 없다. 이유는 5·18기념재단이 이에 대해 '쉬쉬'했기 때문.

대통령 공약사업인 5·18국제자유민주인권연구원이 비영리재단법인인 5·18기념재단 조직으로, 심지어 명칭조차 자유, 민주, 인권이 사라지고 5·18국제연구원으로 축소된 것에 대한 논란이 강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5·18국제연구원 운영을 위한 국비 확보 사실이 뒤늦게 5·18 관련 단체들과 5·18 관련 연구기관 등에게 알려지면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5·18기념재단이 광주시는 물론, 관련 단체나 연구소 등과 충분한 협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관련 사업비를 올해 정부 예산에 끼워 넣었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5·18기념재단이 5·18국제자유민주인권연구원의 별도 설립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재단 '기득권 지키기'가 작용했나

5·18기념재단이 지위상 더 높은 기관 출현을 막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광주시의회 A 의원은 "5·18기념재단이 결국 더 지위가 높은 5·18국제자유민주인권연구원으로 인력이나, 국비가 몰리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설립한 5·18기념재단은 5·18과 관련한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 사업이 늘어나고, 사업 상당수를 수행하면서 규모로나 위상으로나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올해 예산만 무려 약 7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5·18기념재단이 하는 각종 사업들이 교육, 홍보,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으로 윤 대통령이 공약한 연구원과 기능이 상당수 겹친다는 것이다. 국가기관 연구원이 생긴다면 5·18기념재단의 독점적 지위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A 의원은 "정부로서는 공약 이행률을 놓고 봤을 때 돈 조금 빼주는 게 어렵진 않았을 것이니, 별 고민 없이 대충 넘겨버렸을 수 있다"면서 "정부의 니즈(필요)와 5·18기념재단이 독점적 지위를 지키려고 하는 게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A 의원 말처럼 대통령 공약 사항을 이행해야 하는 정부 부처로서는 5·18기념재단의 이해와 맞아 떨어지면서, '손 안 대고 코 풀기'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제자유민주인권도시 조성'이라는 공약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은 연구원 설립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공약을 이행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재단 측 "현실적으로 운영 가능한 방식"

5·18기념재단은 정부가 공약사업에 대한 예산을 편성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재단이 노력해 5·18국제연구원을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항변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5·18국제자유민주인권연구원 설립만 공약했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면서 "처음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획을 크게 잡지 말고 현실적으로 운영 가능한 방식으로 시작하자는 의견이 모여 재단 이사회 산하에 5·18국제연구원을 시범운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국제연구원 기본운영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며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다.

다만, 5·18기념재단 산하 조직으로 출범한 터라, 운영비는 늘 수 있겠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역정치권 한 관계자는 "광주시 또한 공약 사업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5·18단체들과 협업했어야 했는데, 지금에 와서 사업비 받은 걸 어떻게 하겠냐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광주 북구 동문대로 옛 광주교도소부지 내에 계획되어 있는 민주인권기념파크 조성 사업도.

◆국제자유민주인권도시 '불분명' 문제

윤 대통령이 공약한 '국제자유민주인권도시' 자체가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연구원 설립 외에 명확하게 적시된 사업들이 없다. 공약 사업에 대해 중앙정부에 적극 건의해야 하는 광주시 또한 난감한 상황에 명확한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광주시는 연구원 설립과 함께 옛 국군광주병원을 리모델링해 5·18기록물 보존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특히 대통령 공약과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 조성하는 민주인권기념파크와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광주시는 지난 2019년 정부 소유인 옛 광주교도소 부지를 위탁개발해 인권교류복합시설과 혁신성장공간, 체험전시관, 근린생활시설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상복합 건립 수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할 계획이 알려지면서, 시민사회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 결국 좌초됐다.

광주시 관계자는 "민주인권기념파크 조성사업이 기재부 선도사업으로 선정돼 있는데, 온전한 원형 보존을 위해서는 우선 이를 해제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정부의 국가사업으로 여론이 원하는 원형 보존 방식의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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