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기념조형물의 형식 다양
제작한 예술가들의 국적도 다양
기념조형물은 공원·보도블록 등
도시의 일상적 풍경에 스며들어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감성으로 새긴다
[무등일보 특별기획] 옛 전남도청(박물관)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문가 제언 ⑤·끝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구 전남도청을 1980년 당시 그대로 복원한다고 한다. 별다른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 나물에 그 밥인 단체, 예술인, 행정, 용역업체 등이 모여 엄청난 예산을 쓴 끝에 또 다시 그렇고 그런 '시설물'들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을 찾아가 듯이 '광주에 감동적인 기념조형물이 있으니까 꼭 가서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가?
그러려면 광주 시민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공미술로서 기념조형물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념조형물이란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좋겠다."
"기념조형물 형식도 매우 다양하고 예술가들의 국적도 그만큼 다양하다. 그 기념조형물들은 특별한 성역처럼 느껴지지 않고 공원, 광고판, 버스정류장, 기차승강장, 보도블록 같은 형태로 도시의 일상적 풍경에 스며들어 있다. 이처럼 열려 있고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지식으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깊이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기게 된다."
사람들은 베를린으로 여행을 간다. 여행의 목적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베를린 여행자들이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사진과 글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주로 '유대인 박물관'이나 '홀로코스트 추모비' 같이 역사적인 기념공간을 둘러보고 감동받았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사람들이 베를린에 가면 갑자기 진지 모드로 바뀌어 어두운 과거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지적이고 멋져 보이고자 기념공간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이 베를린의 역사적인 기념공간들을 찾는 이유는 그곳에 예술성 높은 기념조형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당수의 베를린 기념조형물들은 역사적 장소의 의미를 매력적으로 해석한 현대미술작품으로 다가온다. 기념조형물의 형식도 매우 다양하고 그것을 제작한 예술가들의 국적도 그만큼 다양하다. 그 기념조형물들은 특별한 성역처럼 느껴지지 않고 공원, 광고판, 버스정류장, 기차승강장, 보도블록 같은 형태로 도시의 일상적 풍경에 스며들어 있다. 이처럼 열려 있고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지식으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깊이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기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동했다'고 표현하는 것이고, 그 말을 들은 또 다른 사람들이 베를린 기념조형물을 찾아가는 것이다. 결국 의미 있는 역사를 기억하게 만드는 데에는 수백 마디 설명보다 수준 높은 예술 작품 하나가 더 효과적인 셈이다.
나는 오래전 여행자가 아니라 학생 신분으로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기념조형물의 세계에 깊이 빠져 들었다. 차가운 겨울날 훔볼트대학교 건너편에 있는 유서 깊은 베벨 광장에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 가면 멋진 기념조형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던 것이다. 한참을 걸어 베벨 광장 중앙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투명한 정사각형 유리창이 보였다.
바닥에 설치된 그 유리창 아래로 하얗게 텅 빈 지하도서관을 내려다보았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곳은 1933년 5월 10일 밤 나치에 비판적인 저자들의 책 2만여 권이 불태워진 자리였다. 하얗게 텅 빈 도서관은 모든 책들이 불타서 사라져 버렸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정적과 함께 역사의 깊은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도서관''은 그날의 분서 사건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스라엘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 미하 울만(Micha Ullman)이 1995년에 완성한 기념조형물이다.
한국에서 그저 높이 솟은 권위적인 기념탑만 보고 살았던 나에게 '도서관'은 충격과 전율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나는 틈나는 대로 베를린에 산재한 여러 기념조형물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그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모았다. 그러면서 기념조형물이 한 사회의 개방성이나 보수성을 보여주는 척도라는 점 그리고 그 사회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나는 베를린 기념조형물들을 잊지 못하고 오랜 시간 자료만 뒤적였다. 그러다가 한국사회에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2018년 말에는 베를린의 주요 기념조형물들을 소개한 책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을 출간했다. 책이 출간된 후 많은 이들이 공감해주었고, 이제는 베를린을 여행하는 이들이 내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에스엔에스(SNS)에서 발견할 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곤 한다. 베를린의 기념조형물 하나가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기념조형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다 보니 10년 가까이 광주에 거주하는 동안 상당히 많은 기념조형물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은 적극적으로 광주의 크고 작은 기념조형물들을 찾아다니며 연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베를린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꾸 찾아가서 다시 보고 싶은 기념조형물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광주에 산재한 대부분의 기념조형물들은 그야말로 진부하고 예술성이 낮은 편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유사한 형식과 재료들이 광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물론 비교적 최근에 설치된 기념조형물들 중에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들도 있지만 완성도가 부족하거나 주변환경과 조화롭지 못한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민망한 모습은 기념조형물이 있는 공간에 소음이 심한 제습기가 노출된 채 설치되어 있거나, 철조망을 치고 '출입금지' 표시를 해 놓거나, 파손된 부분이 1년 넘게 그대로 방치된 경우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광주의 기념조형물들을 보면 '예술 작품'이 아니라 단지 관리되어야 할 '시설물' 정도로 느껴진다. 한마디로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이다.
광주에서는 여전히 5·18를 비롯해 여러 역사적인 장소들을 어떻게 기념공간으로 조성할지 그 방향성과 방법론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한 것으로 안다. 최근에는 구 전남도청을 1980년 당시 그대로 복원한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그런데 무엇을 한다고 해도 별다른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 나물에 그 밥인 단체, 예술인, 행정, 용역업체 등이 모여 엄청난 예산을 쓴 끝에 또 다시 그렇고 그런 '시설물'들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을 찾아가 듯이 '광주에 감동적인 기념조형물이 있으니까 꼭 가서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가? 나는 아직까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말을 듣는 날이 오리라고 상상한다. 그러려면 우선 광주 시민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공미술로서 기념조형물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념조형물이란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좋겠다.
백종옥은
독립큐레이터. 미술생태연구소를 운영하며 전시 기획, 공공미술 프로젝트, 미술비평 관련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홍익대에서 회화를, 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잠과 관련된 작품들을 엮은 '잠에 취한 미술사', 베를린의 주요 기념조형물을 연구한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이 있다. 현재는 나주에서 아트프로젝트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 2023 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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