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남도청 기념공간 전문가 제언

세계시민 양성을 위한 미적 혁명교육 현장으로

입력 2023.11.13. 18:45 김혜진 기자
④임동확 시인
광주 동구 245전일빌딩 옥상에서 한 시민이 5·18최후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을 바라보고 있다.

[무등일보 특별기획] 옛 전남도청(박물관)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문가 제언?④임동확 시인

흔히 인류의 보편 가치인 정치적 자유를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1789년 발발한 프랑스혁명이 하강국면에 접어들 무렵이다.

독일 고전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쉴러(Schiller, 1759~1805)는 그의 서한집 '인간의 미적인 교육에 관하여'(1795)를 통해 참된 인간성 배양을 위한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미적 교육을 강조한 바 있다.

기꺼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형제애를 내세운 프랑스혁명의 이상에 동조하면서도, 정치혁명만으로 해소할 수 없는 그 어떤 인간 본성의 이중성과 근원적인 폭력성을 지켜보면서였다. 내면적 성숙이 전제되지 않은 혁명 후의 타락상과 정치적 반동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면서였다.

그렇다고 인간성 자체의 도야(陶冶)를 위한 미감(美感) 계발을 역설하는 이러한 그의 이러한 낭만적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것이 당장 실행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날에 죽어간 희생자들 앞에서 영원히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살아남은 자들로서 우리들에겐 '기억전쟁'이 먼저다.

쉽게 규정할 수 없는 광주만의 그 무엇을 지켜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80년 5월을 역사의 서판(書板) 속에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이 첫 번째다. 80년 5월의 광주는 날로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끝없이 차이를 생성하는 세계와 투쟁하는 기억의 능력 또는 '기억의 투쟁'에 달려 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급변하는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훼손되지 않는 5월 광주의 자기정체성의 유지 내지 구축은 그런 기억의 작업과 노력만으로 부족하다. 우리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가지 않는 세월의 흐름 또는 역사의 부침 속에서 거기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그런 기억은 동시에 우리를 거기에 가두는 이율배반적 성격을 갖고 있다.

달리 말해, 작금의 5월 단체들이 보여주는 이전투구(泥田鬪狗)나 역대의 인류사적인 혁명이 보여준 쓰라진 배신과 타락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여전히 5월 광주의 숨겨진 가능성들을 현재화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가적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되는 옛 전남도청 복원 사업은 아무런 감흥과 내용이 없는, 겉만 화려하고 웅장한 기념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옛 도청 자리가 세계시민의 미적 혁명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야말로 80년 5월의 최후 항쟁지인 이곳이 스펙타클한 텅 빈 전시관 내지 거대한 맘모스 박물관으로 전락해가지 않기 위해선, 따라서 이미 드러난 사실이나 기억의 축적만이 아니다.

당대에 출현하지 않은 미래의 내용을 품고 있는 예술적 힘 또는 미적 교육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그저 환영으로 끝나지 않는 구체적 유토피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으며, 그로 인한 아름다움과 숭고함 혹은 인간적 감동과 미적인 감흥을 선사하면서 종래 미래의 자유에 대한 어떤 예견을 보여주는 게 문화 예술의 궁극적인 본질인 터이다. 세계인들이 즐겨 찾아오고 떠나가길 기대하는 역사적 현장으로서 옛 도청자리의 복원은 단연 그렇다. 여전히 쉬 납득이 되지 않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명명이 보여주듯이 기껏해야 여타의 아시아 국가들을 타자화하는 유교중심의 동아시아적 특수성에 제한할 수 없다.

이미 신화전설이나 암각화 등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처럼 차라리 지형적이고 문명사적으로 얽혀 있는 '유라시아 문명 전당'으로의 명명이 더 적당할지 모른다. 아니, 세계시민으로서 시대정신과 도덕적 자질을 요구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필시 범인류적 자산인 5월 광주의 역사적 경험을 보편화하고 드높이기 위한 이름으로 '5월혁명기념전당'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오래 전 어느 시인이 '광주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했을 때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더욱 그렇다. 광주가 여느 도시와 다름없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라면, 지금껏 일컬어지는 혁명의 도시 또는 인권의 도시 등등의 집합체로서 이해된다. 고유명사로서 광주라는 정체성은 그런 다양한 속성들의 종합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광주를 규정하는 그러한 특징적인 속성들은 이미 주어진 것이나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다. 화석화된 어떤 고정점이 아니라 열려진 시간의 지평 위에서 다양한 관계들의 형성을 통해 진화해 간다.

단지 과거의 사건이나 사실들만이 아니라 미처 현실화 되지 않은 잠재적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게, 언제부턴가 '빛고을'로 달리 부르기도 하는 고유명사로서 광주의 정체성이다

예컨대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최후를 맞은 윤상원이 "오늘 우리는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가 우릴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그는 단지 순환적이고 무의지적인 시간 속에서 역사 창조나 논리적 귀결로서 미래의 승리를 당당하게 예측한 것이 아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비참한 죽음과 피흘림 사태만이 아니라 다가올 새로운 시간의 지평 속에서 펼쳐질 미래의 승리를 확신했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걸어온 길고긴 고난의 역정과 험난하기만 한 그 극복 과정 속에서 그 때마다 섬광처럼 다가오는 또 다른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이가 바로 윤상원 열사였던 셈이다.

우린 지금 그런 가운데 '지역인으로서 활동하고 전지구인적 자세로 고뇌하라(Act locally, think globally)'라는 슬로건이 일상적인 체험이 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그런 만큼 80년 5월 투쟁 현장의 복원을 앞두고 '지역적이냐, 세계적이냐' 식의 이분법적 세계인식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우리 삶을 지배해온 폭력적 근대가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게 능사가 아니라 때로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역사적 교훈으로 가르쳐 준 것이라면, 이른바 '진보적이냐(progressive), 보수적이냐(conservative)' 식의 작금의 진영적 사고나 구호화된 정치이념도 단세포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지일 뿐이다.

이처럼 불가역적인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적 시간 속에서 우린 지역과 세계, 진보와 보수 등 크고 작은 차이와 적대를 견디고 이겨내는 '세계의 촌부'(김수영) 또는 '진보주의자'(進保, 進步+保守, provativist)'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우린 어쩌면 선택의 여지없이 우린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이고,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인' 반대일치 또는 모순 통합적인 시대 속에 놓여 있다. 우리의 눈앞에 던져져 있는 전쟁과 기후문제 등은 한 특정의 지역이나 나라의 시민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국경과 인종을 넘어 다중시민으로서 서로 대립되는 것의 일치를 통한 존재의 확장 내지 진정한 화합을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속담대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이른바 '5월혁명기념전당'의 '세계시민적 교육장으로의 활용은, 솔직히 앞으로도 수많은 논의와 지난한 합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난제 중의 난제일 것이다. 그러니 그에 앞서 당장이라도 남도인라면 세계 어느 곳을 가든 판소리 한 대목 또는 단가 한 수라도 부를 수 있는 미적 교육의 '한 걸음'을 내딛어보자. 행여 누군가 요청이라도 할라치면 제 고향 작가들의 시 한 편, 소설 한 문장을 외우고 들려줄 수 있는 예술적 감성의 멋쟁이 시민들이 살아가는 낭만과 혁명의 도시, 그리하여 모든 존재에 그 무게와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생명미감(美感)의 계발을 위한 인성 교육이 일상화된 미래의 광주를 꿈꾸어보자.

그게 우리가 그새 잃어버린 인간 생명의 존엄함과 역사적 진실의 엄혹함을 일깨우기 위한 '천리 길'을 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미적 교육의 '첫걸음'일지도 모를 테니까.

비로소 그때만이 80년 5월의 광주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는 식의 투쟁과 죽음의 도시가 아니라, '지느러미 하나라도 잃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가는'(김준태) 거룩한 생명의 장이자 모든 인류가 진정으로 화합하는 희망의 거점으로서 광주 5월가 거듭 태어날 수 있을 테니까.

참고로 모든 인류의 단결과 우애를 찬양했던 쉴러는 그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를 통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중략…)/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을./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묶는구나./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될 수 있노라'고.


임동확

시인,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 ‘매장시편’으로 등단한 이래 9권의 시집과 산문집 ‘시는 기도다’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전남대·서강대에서 ‘김지하 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 강의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세상의 모순과 불화에 주목하면서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화해와 소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80년 5월 광주의 경험에 바탕한 ‘생성의 미학’을 한 계간지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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