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남도청 기념공간 전문가 제언

기억을 전시한다는 그 숭고하고 험난한 일

입력 2023.10.22. 19:14 조덕진 기자
①김한결 전남대 사학과 교수
마을 성당을 비롯한 마을 건물들이 당시의 무자비한 폭력과 급박함을 증언하듯 산산이 부서진 채 그대로 보존돼 있다. 뼈아픈 역사를 은폐하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특유의 목가적 풍경 속에 마을이 간직한 상처들을 담담하게 내보인다.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 폐허 현장.

[무등일보 특별기획] 옛 전남도청(박물관)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문가 제언 ①김한결 전남대 사학과 교수

옛 전남도청을 1980년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작업이 본격화된다. 복원될 옛 도청공간을 박물관(가칭 5·18민주화운동 현장기념)으로 만들어 후세와 세계 시민들과 함께 하려는 작업도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허나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박물관 전시콘텐츠사업을 전문가가 아닌 '업체'에 맡기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등일보는 이같은 전개가 자칫 옛 전남도청을 하드웨어적 복원에 머물 위험이 크다는 문제의식에서 국내 역사와 건축, 인문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제언을 마련한다.?세계사적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주>


"여론조사에서 복원시 고려할 중요한 요소로 계승, 교육, 체험 세 가지 키워드가 질문 문항으로 제시됐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요소 보다 과연 무엇을 계승하고, 교육하고, 체험하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하는 일에 있다. 전시 주체의 매우 확고한 전달 의지와 구체적인 전시물의 확보, 성실하고 세심한 교육·체험 콘텐츠 없이는 이와 같은 낱말들은 그저 실체 없이 휘발할 것이다."


기술적 화려함, 관람객 호응 중시한 어법

자칫 이를 희화화하거나 훼손할 우려 커

옛 전남도청 역사적 가치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박물관학적, 기술적 고려뿐만 아니라

철학적·윤리적 숙고가 필요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역사와 전시는 매우 긴밀한 상호협조 관계를 맺어왔다.

물질의 전시를 통해 집단의 지성 안에 과거를 소환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은 20세기 들어서는 인간의 과오가 남긴 폭력과 희생의 역사까지 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목적의 숭고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생존한 많은 이들이 함께 겪은 역사의 상흔과 여기서 비롯된 기념물이나 정신적 유산을 전시하면서 사회적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전시란 근본적으로 해석을 동반하기 때문에 기념 주체와 수용자 사이에서, 또 기념의 행위자들 가운데서도 첨예한 입장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폭력과 관련된 사건은 '반영웅'(antagonist) 또는 '적'을 명시하는 데 모종의 '불편함'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민족적·공동체적 차원에서 비교적 손쉽게 특정할 수 있는 전쟁의 기억과는 차이를 지닌다. 이러한 장소는 내국인 방문자에게도 부끄러운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고, 보는 이가 폭력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음에도 자성을 요구할 수도 있다. 또는 기념물이 지나치게 최근의 폭력을 다룬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기념물과 문화유산을 '불편문화유산'이라 부른다. 전시의 방향성과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비롯해 내용과 시각적 장치 전반에서 더욱 신중한 논의와 의견수렴이 필요한 이유다.

오라두르-쉬르-글란 폐허 현장?

옛 전남도청 복원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의미 있는 계획이자, 그 자체로 까다로운 도전이다. 옛 전남도청은 5.18민주화운동의 성지다. 이 장소가 간직하는 저항의 기억과 그만큼이나 강렬한 두려움과 긴장감의 흔적은 아직도 방문객을 몸서리치게 한다. 이처럼 현대사의 상징적인 건물을 복원해 그대로 전시관으로 사용하는 사례는 박물관의 역사상 의외로 찾기 어렵다. 상술했듯 민중을 대상으로 국가가 자행한 폭력과 관계된 공간이라는 점 또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앞선 여러 기념 전시 사례에서 그 올바른 방향성에 대한 몇 가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리버풀 시민이 힐즈버러 사건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패치워크 작품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에서 일어난 힐스버러 참사는 리버풀 FC와 노팅엄포레스트의 경기가 열린 축구 경기장 내 관객의 과밀에 대한 경찰, 소방당국 등의 대응 태만으로 97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다. 이 참사에서 수많은 시민을 잃은 리버풀시는 2011년 확장 개관한 리버풀박물관에서 이들을 추모하고 안전불감증과 국가의 진상 은폐와 책임 회피를 규탄하는 내용의 전시를 선보였다. 이 전시는 화려한 전시 테크놀로지나 거창한 서사를 내세워 결과론적인 의미부여로 성급하게 마무리 짓는 식의 역사 전시 포맷을 배제하는 대신 언뜻 사소해보이지만 '진실된' 유물들을 전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당시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실제 기념물(경기 티켓, 홍보물, 희생자들의 이름)과 더불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여러 사회구성원들의 참여(시, 그림, 수공예 작품 등)가 그것이다. 이들이 목표하는 바는 바로 일상적 정의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고 희생자들에게 위로와 포용을 거듭 약속하는 일이다.

오라두르-쉬르-글란 메모리얼 센터 전경.

1944년, 온 마을 주민들이 몇 시간 만에 나치친위대에 의해전부 학살된 프랑스의 작은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Oradour-sur-Glane)에는 마을 성당을 비롯한 마을 건물들이 당시의 무자비한 폭력과 급박함을 증언하듯 산산이 부서진 채 그대로 보존되었다. 뼈아픈 역사를 은폐하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특유의 목가적 풍경 속에 마을이 간직한 상처들을 담담하게 내보이는 이곳은 대통령과 지역 정치인뿐만 아니라 매년 30만 명이 방문하는 중요한 기억의 장소로 남았다. 이곳 기념관은 상설전과 특별전을 개최하고, 때마다 작지만 구체적인 역사적 주제를 선정해 유물과 아카이브의 시청각, 구술 사료 등을 가지고 크지 않은 규모로도 생동감 있는 전시를 해낸다. 여기 지어진 기념관(메모리얼 센터)에는 당시 가해 국가였던 독일과 오스트리아 대학생들이 자원해 와서 전시 도슨트로 활동한다.

디지털 미디어 전시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거나 비중이 지나치게 클 경우 관객은 실제 사건과 '재현'을 혼동할 수 있고 전시 내용을 오히려 남의 일처럼 느끼게 되는 역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사료와 소장품이 빈약하거나 준비가 미흡하다는 인상을 줄 우려도 있다.

또한 일차적 기록물 등 소장품의 기반이 갖춰져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전시 안에서 콘텐츠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더욱 첨예한 지적 가공의 과정이 필요하다. 옛 전남도청처럼 다양한 당사자들의 쓰라린 기억이 교차하는 기념물의 경우 이를 설명할 유물 및 기록 자료들을 전시품으로 만드는 데 더욱 높은 수준의 완성도가 요구되리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희생의 현장에 세워진 추념의 장소로 가장 대표적인 곳은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일 것이다. 묘비를 댄해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난간 아래 심연으로 떨어지는 물이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사진 김한결)

한편,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항전지'로서 옛 전남도청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과연 어떻게 전시 콘텐츠로 풀어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박물관학적, 기술적 고려뿐만 아니라 철학적·윤리적 숙고가 필요하다.

언론은 옛 전남도청에 "미래 세대들이 당시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전시 공간이 조성될 예정"이라 보도한다. 최근 과학기술과 발맞추어 발전을 거듭한 가상현실·증강현실 등 몰입형 전시는 과거의 특정한 서사, 사건과 장면을 그야말로 생생하게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최근 전시 기법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높은 오락성에 있다.

이를 고려할 때 그날의 옛 전남도청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희생자들이 겪었을 그 순간순간의 참혹함과 여기 투쟁한 그 용기를 왜곡하지 않는 것이 전시 기획의 관건이라 보인다.

기술적 화려함을 지나치게 좇거나 관람객 호응을 의식해 너무 쉬운 어법으로 전달하려다가는 자칫 이를 희화화하거나 훼손할 우려가 있다(이러한 사례가 실제로 더러 있다). 기획자는 전시 콘텐츠의 기획과 방향성 설정에서부터 세밀한 기술적 구현에 이르기까지 높은 수준의 역사 이해뿐만 아니라 완고하고도 투철한 의지를 곳곳에서 관철해야만 할 것이다.

옛 전남도청 복원 준비과정에서 실시된 의견조사에는 복원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로 계승, 교육, 체험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질문 문항으로 제시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요소들을 꼽는 것보다도 과연 무엇을 계승하고, 교육하고, 체험하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하는 일에 있다. 전시 주체의 매우 확고한 전달 의지와 구체적인 전시물의 확보, 성실하고 세심한 교육·체험 콘텐츠 없이는 이와 같은 낱말들은 그저 실체 없이 휘발할 것이다.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한다는 지상 목표는 그 자체로 물론 훌륭하지만, 이것을 달성하는 기쁨은 어쩌면 전시 주체에게만 만족을 안겨주는 데 그칠 문제인지도 모른다. 험난하지만 더욱 의미 있는 일은 역사와 희생자들을 존중하고 위로하며, 살아남은 이들을 현시점에서 포용하는 사회적 과제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위에 소개한 사례들을 통해 되새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한결

전남대 사학과 조교수. 김 교수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서양근세미술사와 박물관·문화유산사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8세기 유럽 박물관과 컬렉션의 역사, 박물관 이론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귀국 후에는 박물관·미술관 전시 관련 연구용역 및 자문, 역사 관련 전시기획과 비평에 참여했다. 역서로 '박물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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