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여성들 소속 조직이나 개인별로 활동
가두투쟁 '중심'·물품 조달 등 전후방서 적극 참여
격전장서 가두방송 '진행'…시민 참여 독려해
평범하지만 용감했던 그들, 하지만 이름이 없어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민주화를 지키기 위한 1980년 5월의 광주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시민들의 참여와 연대로 실현됐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활동은 조명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5·18민주화운동 속 여성들은 결코 단순 조력자가 아닌 적극적인 주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켜켜이 쌓인 세월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이들은 시위 대열에 올라 독재의 아성을 향한 함성을 뿜어냈고, 광주의 참상을 알리고자 수없는 만행이 자행되고 있는 격전장에서 가두방송을 진행했다. 또한 전투가 치열했던 금남로로 나와 시위대에 밥과 반찬을 나눠주며 뜨거운 시민 공동체를 형성했고, 헌혈과 시신 수습 등의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전남도청의 지도부와 시민군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분담해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여성들이 계엄군의 만행 앞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저항했던 알려지지 않은 오월의 역사를 조명한 전시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진행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27일 오전 찾은 광주 동구에 위치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2층 상설전시실2.
전시실 한 켠에 1980년 5월 당시 여성들의 활동을 집중 조명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이곳은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 활동부터 열흘간의 5·18민주화운동의 역사 속 여성들의 항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조직은 다양했다. 전남구속자청년협의회, 현대문화연구소, 송백회, 한국교육문화사, 녹두서점 등이 대표적으로, 특히 70년대 투옥된 민주인사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조직된 송백회는 주로 구속인사 부인, 운동권 학생, 청년운동가 등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들이 활동했다.
이후 80년 오월 당시 여성들의 항쟁은 초기에는 소속 조직이나 개인별로 이뤄졌다. 여성들은 송백회, 가톨릭노동청년회(JOC), 극단 '광대', 들불야학, YWCA(기독교여성청년회), 녹두서점 및 개별 활동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80년 5월 18일, 여성들은 가두 투쟁의 중심에 섰다. 시내 곳곳에 흩어져 계엄군과 투석전을 하는 것은 물론 부상자를 치료하거나 시위가담자를 위해 치약, 비누, 수건 등 필요한 물품을 조달했다.
다음날 이들은 선전 홍보활동에 뛰어든다. 언론과 방송이 차단되는 등 광주가 고립되면서 정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자금과 자료를 제공했고, 들불야학에서 제작된 소식지를 받아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이후 격전장을 돌아다니며 가두방송을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참여는 증가했다. 도청 앞 금남로에 모여든 수많은 시민들은 도청 진입을 시도했고, 대형트럭과 고속버스, 시내버스, 택시 등에는 각목을 든 청년들과 여성들이 계엄군에게 저항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무차별 발포작전이 장시간 계속되면서 수십만의 인파로 들끓던 금남로는 피흘리는 환자와 처절한 주검으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고, 여성들은 시신 수습을 위해 앞장섰다. 시내에서 부족한 관은 시외로 나가 구입해 왔고, 시신에 옷을 입히는 염을 하는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부상자들이 수용된 병원 앞에는 여고생을 포함한 주부들은 물론 유흥업소 여성들이 헌혈에 동참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또한 여성들은 동네별로 밥을 지어 시위 차량이 지나가면 주먹밥을 건넸고, JOC여성 노동자들은 도청 내 취사팀을 구성해 활동하는 등 항쟁을 지속시키는 원동력 역할을 했다.
항쟁이 지속되면서 여성들은 YWCA로 활동 거점을 집중시켜 모금, 취사, 가두방송, 대자보, 보급, 선전홍보팀 등 역할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면서 '광주 YWCA 여성 항쟁공동체'를 구성했다.
5월 27일, 열흘 간 이어졌던 5·18항쟁이 끝이 났지만 정부가 민주항쟁 관련자들을 검거하고 지명수배를 내리면서 도청, YWCA, 녹두서점에서 항쟁에 참여한 여성 40여명이 구속됐다.
이날 전시실을 둘러보던 정모(22)씨는 "민주주의를 되찾고자하는 일념 하나로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항쟁에 참여해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룩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조명을 받지 못했다는 것에는 공감한다"며 "비록 전시실 한 켠에 마련된 공간이지만 이 속에서 그동안 몰랐던 여성들의 활약상을 알 수 있게 돼 뜻깊다. 오월 여성의 역사가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예지기자 foresight@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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