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이 '오월 광주' 대변자
관련 구술·사료적 기록도 활용
현장감정 반영은 '詩'가 최고
묻혀버린 역사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문학의 몫이다.
그래서 문학의 책임과 작가의 역할은 크다.
조진태 시인(5·18기념재단 상임이사)이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문학작품을 통해 성찰한 '오월의 감정학'(문학들刊)을 펴냈다. 그는 '오월 광주'가 인간의 모든 감정이 촉발된 시공간이었고,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이 바로 문학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현장 경험을 감각화하는 기억 매체가 바로 문학작품이라는견해에서 비롯됐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한 평론집이나 비평서인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 외에도 사건 관련 구술이나 사료적 기록이 적잖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 기록들에서 분노와 공포, 슬픔과 기쁨 등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촉발되며, 그 감정의 무늬가 어떻게 언어로 표현되어 읽는 이들과 공감을 이루는지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우리의 대표적 민요 아리랑이 갖는 그토록 피 끓는 전율을 광주에서 처음 느꼈다. 단전단수로 광주 전역이 암흑천지로 변하고 방송국, 파출소 등이 불타 도청 앞 광장으로 손에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모여드는 군중들이 부르는 아리랑 가락을 깜깜한 도청 옥상에서 혼자 들으며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내 피 속에 무엇인가 격렬히 움직이는 전율을 느끼며 얼마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김충근, '금남로 아리랑' 부분, 5·18특파원리포트)
"어느 순간 나는 쫓아오는 공수부대원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잡힌 즉시 머리, 어깨, 몸통, 다리 할 것 없이 온몸에 진압봉과 군홧발이 쏟아졌다. 이빨 하나가 부러져 나가고 머리가 터지고 피가 흘렀다. 그러다가 잔뜩 짓밟혀 한풀 꺾인 우리를 놔두고 공수부대원이 시위대를 잡으러 달려갔다. 잡혀서 맞는 사람, 쫓기는 사람, 쫓아가는 공수부대원들이 뒤섞여 주위가 아수라장이었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공수대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큰길에서는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죄 없이 두들겨 맞고 끌려가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공수부대 놈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풀빛·1990) 중에서)
저자는 당시의 현장 감정을 가장 감각적이고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시를 꼽았다. "시문학(문학)은 영상기록, 구술기록과 함께 오월의 현장 경험을 감각화하는 주요 기억 매체이다. (…) 반성과 성찰을 위한 기억 투쟁이 지속적인 상징화를 통해 사건의 의미를 현재화하는 일이라면 기억을 위한 문화적 서사로서 시문학은 기억매체의 감각화를 통해 잊지 말아야 할 고통과 더불어 단번에 절대공동체의 신기루를 경험하는 상상력의 길과 접속하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가 '오월의 감정'에 주목한 이유는 거시적 성찰과는 별개로 미시적 성찰 또한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올해로 '5·18'은 42주년을 맞았다.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다. 오월을 당파적 이해를 초월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회상하고 상상하도록 하려면 기억 매체를 통해 현재의 것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감정에 문장이 새겨진다"고 시작하는 구절의 울림이 절절하다.
저자는 오월 항쟁 당시 조선대 국문과 1학년이었다. 항쟁 이후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조지형'이라는 필명으로 오월을 형상화한 시 '일어서라 꽃들아'를 인쇄, 학교와 광주시내에 살포했다가 구속됐다. '광주 젊은 벗들'을 결성해 시 낭송 운동과 시화전을 열기도 했으며,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설립에도 땀을 흘렸다.
지난 1984년 시 무크지 '민중시'1집에 '어머니' 등을 발표하며 등단해 시집으로 '다시 새벽길', '희망은 왔다'를 펴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갈수록 걱정되는 5·18 조사위 종합보고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등이 지난 25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조사위 보고서 평가 간담회를 열고 5·18조사위가 내놓은 직권조사 과제별 조사결과 보고서를 평가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작성 중인 종합보고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잘못 알려진 5·18 역사를 바로잡아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는 수단이 돼야 할 보고서에 5·18의 역사적 배경이나 성격 등이 일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27일 5·18조사위에 따르면 5·18조사위는 오는 6월26일까지 대정부 권고안이 담긴 종합보고서를 발간해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한다.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34조에 '활동이 종료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위원회의 활동 전체를 내용으로 하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서다.5·18조사위는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를 마친 뒤 종합보고서와 함께 진상규명 의결서, 백서를 공개할 예정이다.또 지난 4년간의 공식 조사 활동 기간 확보한 진술과 수집한 사진·영상 등 모든 자료는 국회 동의를 얻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계획이다.그러나 작성 완료 기간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종합보고서의 구성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전체 1천400쪽 분량의 종합보고서는 제1장 총론(200쪽), 제2장 계엄군의 진압작전(200쪽), 제3장 민간인 희생(350쪽), 제4장 인권탄압사건(300쪽), 제5장 북한개입설(100쪽), 제6장 진상규명 불능 과제(250쪽) 순으로 구성됐다.하지만 보고서 어디에도 5·18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성격, 진상규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진상규명이 갖는 의의에 대한 서술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반면 국내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중 하나인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유신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의식 확산' 등 항쟁의 역사적 배경과 '유신체제의 종말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의의가 자세히 담겨있다.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도 8·15 광복 전후 제주도의 상황이나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사건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이와 관련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제1장 총론에 위원회의 설립과정, 조직·예산·연도별 조사 활동, 대정부 권고안이 담기는 데 사실 설립과정이나 조사 활동은 백서에나 들어갈 내용이다"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5·18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성격, 5·18이 갖는 의의를 종합보고서에 싣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어 "5·18조사위의 종합보고서가 새로운 왜곡·폄훼의 근거가 될 것 같아 심각하게 걱정된다"며 "지금이라도 종합보고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초안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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