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의 딸’ 임이랑 심리상담사
마지막까지 도청서 시민군 활동한 아버지
‘산 자의 미안함’에 유공자 신청도 하지 않고
39년만에야 자식들에 터놓은 그날의 고통
시민군 2세들과 민주주의 가치 강조하고파

"아버지가 한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2년 전에야 듣게 됐어요. 그동안 왜 가족들이 힘들어야 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됐어요. 그걸 전하는 건 이제 제 몫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로만 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5·18이 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를 돕고, 지금 청년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2030세대와 노력할 겁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었던 아버지. 어느덧 나이 40을 바라보는 딸은 아버지가 한 평생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울먹였다. 힘겨웠던 아버지의 삶의 궤적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서다. 이제 그 고통의 사슬을 끊고 그날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딸은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3일 만난 임이랑(38) 온빛다원재능상담소 대표는 10년 가까이 전남대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환우들에게 미술심리치료 재능기부를 해왔다.
그가 미술을 매개로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미술심리치료를 전공하게 된 사연은 아버지에게서 비롯됐다.
임씨의 아버지 임성복(62)씨는 가족들에게조차 5·18 당시의 이야기를 꺼렸다. 딸이 5·18에 대해 물어도 "알아서 뭣하러 그러냐, 말도 꺼내지 말아라. 피비린내나서 생각하기도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낼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강해져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안 그러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 모를 한풀이를 자주 했다.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해서는 "나를 왜 잡아가느냐, 잡아가지 마라"며 소리 치며 소란을 피웠다.
5월만 다가오면 술에 취해 몸부림을 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딸은 기나긴 세월동안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해보려 대학교에서 미술심리치료를 배웠다.
말하지 않는 아버지도, 아버지를 이렇게 내버려두는 세상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2년 전, 교통사고로 큰 고비를 넘긴 아버지는 비로소 딸에게 80년 5월 그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80년 5월 22살의 아버지는 시민군이었다. 고향 완도에서 사진을 배우러 광주로 상경했던 아버지는 5·18이 발생한 이후 직장 숙소가 폐쇄되자 갈 곳이 없어 옛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집단발포 이후 다른 시민들과 함께 시민군에 합류했다. 금방 돌아온다던 동료가 돌아오지 않는 불안감에도 아버지는 끝까지 옛 도청을 지켰다.
당시 시민들이 내어 준 금침이불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함께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은 딱히 갈 곳이 없는, 광주 사회의 가난한 이들이었다. 죽은 이들의 시신도 여럿 수습했다. 시신 냄새를 지우려 피운 향내가 몸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였다.
5월27일 고 윤상원 열사가 "어리고 젊은 사람들은 나가라"며 떠밀듯이 내보내면서 아버지도 옛 도청을 떠나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40년간 말을 잃었다. 5·18 유공자 신청도 하지 않았고, 유공자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2년전 처음 들은 딸은 펑펑 울었다. 그동안 원망했던 미움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 뒤에는 오히려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5·18 2세대들과의 소통을 더 활발히 하고 싶다.
임씨는 "2030 청년들과 소통하며 5·18과 민주화의 가치를 살아 있는 형태로 전하는 것은 이제 내 몫이다"며 "부모 세대에 비해 우리 세대의 관심사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가치관 속에서 5·18이 현재의 청년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학교에서의 민주화 교육도 5·18 왜곡을 막는 데 중요하겠지만 틀에 박힌 교육으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젊은 세대가 마음을 열고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계기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현대사의 비극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자부심을 갖게 된 딸의 이야기로서 말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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