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품서 사진 찾아 41년만에 영정
여동생 “사진 보니 그날의 기억 생생히 떠올라”

살아 있었다면 올해 53세로, 평범한 중년으로 살아갔을 5·18민주화운동 최연소 희생자 전재수군.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하고 묘역에 묻힌 4살배기 행방불명자를 제외한다면 현재로서는 1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전군이 5월의 막내다.
그동안 '얼굴없는 희생자'로 남았던 전군의 묘비는 생전 사진 한 장을 찾지 못해 무궁화꽃이 영정을 대신했었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을 며칠 남기지 않은 어린이날, 전군은 비로소 얼굴을 되찾고 영면에 들었다.

5일 국립5·18민주묘지 2-22번 전재수군의 묘에서 전재수군 사진묘비 제막식과 추모제가 열렸다.
지난 1월 전군의 가족들이 20년 전 작고한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전군의 사진을 찾은 덕분(무등일보 2021년 3월 8일 6면)이다. 가족들은 어린이날을 맞아 전군의 사진을 바꾸려 4개월을 기다렸다. 비로소 이날 전군의 묘 앞에서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12살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에 통곡을 금치 못했다.
형 전재룡(62)씨는 동생의 영정 사진과 묘비를 연신 쓰다듬으며 "재수야, 드디어 찾았다.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이제 편히 쉬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재수군은 1980년 5월 24일 오후 광주 남구 효덕동의 집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던 중 계엄군을 보고 달아나다가 벗겨진 고무신을 다시 주워들다 M16총탄 6발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계엄군은 자신들끼리 오인사격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시민군에 보복하려 인근 마을에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었다.
전군의 죽음으로 가족들도 비탄에 빠졌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1984년 아들 곁으로 떠났고 아버지는 2000년에, 누나도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전군 가족은 형 재룡씨와 4살 아래 여동생이던 영애(49)씨 뿐.
재수군의 여동생 영애씨는 41년만에 다시 찾은 오빠의 사진을 보고 주저앉아 통곡하고 말았다.
영애씨는 "그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데, 오빠 사진 보는 순간 그날의 상황이 불현듯 선명하게 떠오른다"며 "그날 내게 물총을 쏘며 장난치는 오빠에 화를 내자 오빠는 친구들과 놀러 밖으로 나갔다. 그 후 총소리가 나서 이불 둘러쓰고 벌벌 떨고 있는데 오빠가 죽었다고 했었다"고 울먹였다.

이날 추모제에는 재수군이 다녔던 효덕초등학교 후배들이 쓴 편지글도 전해졌다. 광주에서 농사를 짓는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씨도 추모배지를 제작해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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