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댐 완공 기점 무제한 물 공급
급수탈출 기념→민주화 상징으로
'5·18민주화운동'하면 떠오르는 수 많은 상징물 가운데 옛 전남도청사(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대) 앞 분수대는 단연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1979년과 1980년 엄혹했던 시기,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을 품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평범한 시민들에게 곁을 내어주며 기꺼이 횃불과 펼침막의 게시장으로서의 역할까지 한 '무언의 지지자이자 목격자'였던 분수대.
그렇다면 이 분수대는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졌을까?
그 역사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0년 개항 후 우물, 하천 등에 의존하던 음용수가 콜레라와 같은 신종 질병으로 오염되자 근대식 상수도 도입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20년 광주에서도 전국 15번째 통수식이 열렸다. 지한면 운림리(현 동구 운림동) 무등산 증심사 계곡 일대, 지금의 제1수원지가 완성된 것이다.
이후 1942년과 1957년, 1962년까지 지금의 용연동, 동림동, 청옥동에 제2~4수원지가 생겨나며 점차 상수도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3일제, 차량 공급 등 제한급수는 예사였다.
그러던 1971년 2월 17일.
화순군 이서면 서리에 위치한 동복호에 높이 19.3m, 길이 133.8m 규모의 제5수원지, 동복댐이 마침내 준공됐다.
전남도의 보통시 중 하나였던 광주가 인구 50만명을 돌파하며 전용 식수원의 필요성이 급부상하던 시절, 섬진강의 제 2지류인 동복천을 활용해 건설한 대규모 사업이었다.
영산강 물줄기를 생명수 삼아 유역하던 도시가 섬진강에서 수혈 받은 셈이다.
지역의 근본적인 급수난은 1985년 동복수원지 확장 공사 이후에서야 해결됐지만 당시 이 동복댐은 광주에 첫 무제한 급수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통수식에서 정시채 광주시장은 "일본인들이 계획했지만 현실화하지 못한 일을 우리의 힘으로 해냈다. '6일제', '차량 급수'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며 동복댐 건설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어 정 시장이 기념식장에 마련된 통수 스위치를 힘껏 누르자 직선거리로 20㎞ 남짓 떨어진 곳에서 물이 솟구쳐 올랐다.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가 마침내 가동을 시작한 순간이다.
광주가 명실상부 새롭고 안정적인 상수도 급수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는 선언적 의미의 상징물이 첫 선을 보이는 계기이기도 했다.
다만 도심까지 물길을 잇는 관들이 낡은 탓에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되면서 일대 도로는 물론 골목, 가정집 앞까지 때아닌 분수가 치솟는 웃지 못할 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염방열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은 "동복댐 물을 통수하면서 화순 너릿재가 뚫린 것은 물론 민주화의 성지 중 한 곳인 분수대까지 탄생하게 되었다"면서 "다시 돌아온 5월, 시원하게 가동되고 있는 옛 도청 앞 분수대를 찾아 오월영령의 얼을 기리는 동시에 광주 상수도 역사에 대한 관심도 가져주기를 바라본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해 제1수원지 통수 100년을 기념해 100년사를 발간했다.
주현정기자 doit85@srb.co.kr
- 갈수록 걱정되는 5·18 조사위 종합보고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등이 지난 25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조사위 보고서 평가 간담회를 열고 5·18조사위가 내놓은 직권조사 과제별 조사결과 보고서를 평가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작성 중인 종합보고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잘못 알려진 5·18 역사를 바로잡아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는 수단이 돼야 할 보고서에 5·18의 역사적 배경이나 성격 등이 일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27일 5·18조사위에 따르면 5·18조사위는 오는 6월26일까지 대정부 권고안이 담긴 종합보고서를 발간해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한다.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34조에 '활동이 종료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위원회의 활동 전체를 내용으로 하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서다.5·18조사위는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를 마친 뒤 종합보고서와 함께 진상규명 의결서, 백서를 공개할 예정이다.또 지난 4년간의 공식 조사 활동 기간 확보한 진술과 수집한 사진·영상 등 모든 자료는 국회 동의를 얻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계획이다.그러나 작성 완료 기간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종합보고서의 구성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전체 1천400쪽 분량의 종합보고서는 제1장 총론(200쪽), 제2장 계엄군의 진압작전(200쪽), 제3장 민간인 희생(350쪽), 제4장 인권탄압사건(300쪽), 제5장 북한개입설(100쪽), 제6장 진상규명 불능 과제(250쪽) 순으로 구성됐다.하지만 보고서 어디에도 5·18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성격, 진상규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진상규명이 갖는 의의에 대한 서술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반면 국내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중 하나인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유신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의식 확산' 등 항쟁의 역사적 배경과 '유신체제의 종말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의의가 자세히 담겨있다.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도 8·15 광복 전후 제주도의 상황이나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사건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이와 관련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제1장 총론에 위원회의 설립과정, 조직·예산·연도별 조사 활동, 대정부 권고안이 담기는 데 사실 설립과정이나 조사 활동은 백서에나 들어갈 내용이다"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5·18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성격, 5·18이 갖는 의의를 종합보고서에 싣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어 "5·18조사위의 종합보고서가 새로운 왜곡·폄훼의 근거가 될 것 같아 심각하게 걱정된다"며 "지금이라도 종합보고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초안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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