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발포명령 문서 첫 확인, 5·18 '최종진실' 이번엔 밝혀야

@무등일보 입력 2022.05.12. 18:17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지휘관들이 광주에 파견된 계엄군에게 발포를 명령한, 명령사실·명령권자를 담은 군 문건이 최초로 확인됐다. 당시 계엄군 발포 과정에 대한 군 내부 문건이 처음으로 확인되면서 42년 동안 감춰졌던 발포 명령의 최고 책임자에 대한 실체적 진실규명을 이번엔 반드시 이뤄내야할 것으로 지적된다.

5·18과 관련된 군 문건에서 발포 명령과 명령권자가 명확히 확인된 최초의 사례로 향후 최종 발포 명령자 확인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대 5·18 연구소와 5·18 기념재단이 '광주소요사태 진행 상황'이라는 1980년 5월 보안사령부가 생산한 600여 쪽 분량의 문건에 대한 분석 작업 등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1980년 5월 작성한 문건은 5월18일 오전 11시 전남대 앞 상황을 시작으로 계엄군의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린 5월27일 오후까지를 담고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당시 계엄사령부가 5월 21일 오후 7시30분, 공식 발포 명령인 '자위권 보유'를 천명하기 전에 이미 4차례에 걸쳐 발포 명령이 확인된 점이다. 이는 그간 전두환씨를 비롯한 군부의 "광주 발포는 상부명령없이 현장 지휘관 판단으로 이뤄졌다"는 주장과 전면 배치된다. 21일 저녁 '자위권 천명' 이전에 이미 4차례 발포명령을 내렸고 계엄군에게 탄약이 지급되고 발포까지 허용되는 '진돗개 하나'도 발령됐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군 최고지휘부 교감 없이 불가능한 일로 최고위급들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광주에서 계엄군의 발포명령은 5월20일 최세창 3공수여단장의 첫 명령 이후 다음날 31사단·2군사령부로 이어졌다. 21일 오후 4시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전에 이미 '실탄 배부 및 장착' '발포권한을 개인에게' 적시했고 계엄군은 그날 저녁 7시30분에야 공식적으로 자위권 차원의 발포를 발표했다. 5월20일 오후 9시50분 첫 발포명령으로 광주역에서 최소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고 다음날 오후 4시 도청앞 집단발포에 이어 발포는 도청이 함락되는 27일까지 이어졌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그동안 피해자들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불행한 역사의 진행이었다. 이번 군 문건에 대한 연구가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라고 명령한 최종 결정권자, 최종진실을 밝혀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반드시 발포명령자를 밝혀내 역사의 진실을 확립해가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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