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 안병하 정신계승, 공적영역 체계화 뒤따라야

@무등일보 입력 2021.10.12. 18:42

1980년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광주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다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고 안병하 치안감 추모식이 사후 33년 만에 광주에서 처음 열렸다. 그러나 '경찰 영웅 1호' 안병하 치안감의 첫 추모식이 경찰 공식 행사가 아니라 지역 시민사회가 마련,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 9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경찰국 일원에서 전개된 '80년 5월 전남도경 국장 안병하 치안감 33주기 추모식'은 민간 모임인 안병하기념사업회가 마련했다. 1980년 전남도경찰국장 안병하는 신군부의 발포명령 등 강경진압을 의연히 거부했다. 그의 시민보호 치안으로 광주는 민주화운동 기간 내내 유혈충돌 없이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허나 그는 강제해직을 당하고 신군부의 혹독한 고문으로 1988년 생을 달리해야했다.

이후 그는 잊혀졌고 가족들은 처참한 생계 전선에 내몰렸다. 안 치안감의 명예회복을 위한 유족의 눈물겨운 노력, 지역사회의 뜻있는 시민들의 참여로 그의 활동이 알려지며 2000년대 들어서야 조명받았다. 서울 국립현충원 경찰 묘역 안장(2005년), 국가보훈처 선정 6·25 전쟁 영웅(2015년), 치안감 특진 추서, 경찰청 경찰영웅 1호 선정(2020년) 등 사회적 평가가 잇따랐다.

1980년 안 치안감의 행보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숭고함이다. 당시 그는 육사출신에다 한국전쟁 전과로 화랑무공훈장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과 같은 육사 8기로 보장된 출세가도에 서 있었다. 시민생명을 위해 자신의 영화를 내던지고 고난을 자쳐한 그의 행보는 아무리 높이 사도 아깝지 않다. 광주시민과 한국사회는 그와 그의 가족에게 심각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전남경찰청, 한국경찰은 지금부터 그의 정신과 참 공직자로서 삶의 길을 기리는 공식 행사를 본격화해야한다. 지난해 5·18 4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안병하 평전'과 올 추모제 모두 그의 삶을 높이산 시민들이 마련한 사실은 안타까움과 함께 경찰의 존재를 묻게한다. 안 치안감은 해방 이후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을 받아온 한국경찰 역사에 기념비적인 인물일 뿐아니라 공직자의 표상이다.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선양작업이 뒤따라야하는 이유가 아닐 수 없다. 기념비든 추모제든 형식은 얼마든지 널려있다. 유족과 시민들의 10여년이 넘는 노력에도 그의 신원회복조차 미적대는 경찰은 부끄러운줄 알아야한다. 경찰의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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