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가사노동의 가치 존중, 어떻게 정책화 할 것인가?

@김경례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입력 2023.05.14. 17:38

광주광역시(강기정 시장)가 전국 최초로 도입 예정인 가사수당제도는 가정 내에서 수행되어 온 가사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현금성 지원정책이다. 그간, 무급화·저가치화 되어 온 가사노동의 유급화를 통해 가사노동의 가치 제고를 도모하고 가사노동의 존중문화를 확산해 보자는 것이다.

지난 칼럼에 제시한 광주시민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가사노동이 가족과 사회를 유지, 재생산하는 필수 노동이며, 따라서 가정 내에서 수행하는 모든 활동을 사회적(공익적)'노동'으로 인정하고 가사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즉 '가사노동의 가치화'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가사노동의 가치 제고를 어떻게 정책화할 것인가는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한다. 가사노동의 가치화를 위한 정책적 설계를 위해서는 먼저, 가정 내에서 수행하는 무급 가사노동(가정노동)과 공적 영역에서 수행하는 유급 가사서비스 지원 노동(가사서비스 노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확립 과정에서 공(사회)·사(가정)영역의 분리가 일어났고 공적 영역의 임금노동에 비해 사적 영역의 무급노동은 중요하지 않은 일로서, 그 가치가 폄하되었다. 그리고 가정 내 무급 가사노동은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일로서 성별분업구조(남성=생계노동, 여성=가사 및 양육노동)와 가부장제를 공고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가정 내 가사노동의 무급성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무가치화, 저가치화하는 일차적 원인이자, 나아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가사노동임금 캠페인 및 투쟁이 전개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달하고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진행된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가정의 유지와 관리, 가족 구성원의 돌봄을 위해 개별 가정 내에서 수행해야 했던 노동이 상품이나 서비스의 형태로 사회적 영역에서 제공되는 것을 말한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되어 소비를 통해 구현하는 방식(가사 산업)과 공적 서비스 지원 제도를 통해 구현하는 방식(가사서비스 지원),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컨대 전자는, 집에서 요리나 세탁을 하지 않고 식당이나 세탁소를 이용하거나 가전제품을 구입, 사용하거나 가사 및 돌봄 서비스 노동자를 고용해 가사 및 돌봄 활동을 대신하게 하는 방식으로서 가사노동의 산업시장 형성과 관련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혹자는 '가사노동의 시장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후자는 가사 및 돌봄 노동을 사회적 필수 노동으로 보고 공적 공급체계를 통해 제공하는 것으로서 국가나 지자체가 저소득층, 장애인, 임산부, 노인 등에게 제공하는 가사 및 돌봄서비스를 말한다. 민간 가사노동 시장과 공적 가사서비스 지원제도는 궁극적으로 가정 내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한다.

하지만 가사 및 돌봄 노동의 시장화 및 사회화가 가정 내 가사노동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가사 및 돌봄 노동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며 관계노동과 정서노동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세탁소, 청소업체를 이용하고 가전제품을 구입하더라도 개별 가정에서 해야 할 요리와 세탁, 청소 노동, 가전제품 관리 노동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더욱이 가족구성원의 직접적 노동에 비해 가사 및 돌봄 서비스 노동자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및 정서적 만족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가사수당제도 보다는 가사서비스 지원제도 확대를 통해 가사노동의 가치가 제고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이기도 하다. 또한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임산부 등에 대한 공적 가사서비스 지원제도는 현재도 수행되고 있으나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전업주부 연금제도 도입을 통해 가사노동의 가치를 제고하자고 주장하기도 하나 연금제도는 노후보장의 성격이 강한데다 전 국민 국민연금 가입이 권장되고 있고 공무원, 군인 등 일부 직종에서는 사별 후 배우자 연금분할 보장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자체에 대한 가치 제고 효과는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대 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직종이나 저임금, 불안정 플랫폼 노동자들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보험 및 연금제도를 활용한 사회적 안전망 마련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 내 가사노동의 가치 인식 제고가 공적 노동시장의 가사 및 돌봄 노동자의 처우개선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정 내 가사노동의 무급화, 저가치화는 공적 가사노동시장의 여성노동력의 가치를 저평가하여 저임금, 불안정 노동 영역으로 위치 지웠다. 따라서 가정 내 가사노동에 대한 유급화 및 가치화를 지향하는 가사수당제도와 공적 가사노동시장의 가사 및 돌봄 노동자의 처우개선 문제는 별개의 영역이거나 우선 순위를 따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가사노동의 가치인식 제고를 위해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경례(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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