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05.15. 13:53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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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5일자 아침시평에서 나는 당시 유력 대선 후보의 출마 선언문을 읽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 선언문에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그의 진짜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보수 정당 후보로 나서게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보수 유권자의 마음에 영합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도자가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가지고 성급하게 대중을 이끌려고 하거나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시각에 영합하려고 하면 정치공동체의 운명이 암울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반걸음' 앞서 나갈 것을 주문했다.

새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나는 당시 선언문에 담긴 생각이 본인의 것이었음을 알았다. 취임사의 내용도 같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 이데올로기의 서사는 간단하다. 역사의 주인공이 출발점에 서 있고, 그 반대편에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놓여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주인공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 그러니까 장애물을 어떻게 해서든지 뛰어넘어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이런 단순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순한 만큼 호소력이 있지만 그만큼 또한 위험하다.

냉전 시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서사 속에서 주인공이 가려고 하는 곳은 '자유'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이 주인공을 대통령은 '자유 시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자유 시민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그 앞에 놓여 있다. 과거에는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였고, 한때는 테러리즘이었으며, 이제는 '반지성주의'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시민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를 위해 그것을 억압하는 전체주의, 공산주의, 테러리즘에 맞서 싸워왔고, 이제 반지성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자유세계의 모든 시민은 "개별 국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기아와 빈곤,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연대하여 도와야 한다. 이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1950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 세계 각국이 참전하여 도운 것을 그런 연대 행위의 소중한 사례로서 언급한다. 그러나 1980년 5월 남한에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를 유린하는 것을 미국이 묵인한 것에 대해서는 별 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반미주의자'로 낙인찍는다.

냉전 자유주의자들은 전 세계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에 적과의 공존을 선택하는 것은 '취약한 평화'이고, 적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지속 가능한 평화'이다. 전쟁을 영원히 종식시키기 위한 '최후의 전쟁'이라는 생각은 인류 역사에서 오래된 것이지만, '영원한 평화'만큼이나 지상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이라는 것이 역사를 통해 이미 드러났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거나 남을 기만하는 것이다.

자유 시민의 연대 정신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극히 선택적으로 발휘되곤 한다. 그 결과 연대의 약속을 믿고 일어선 많은 사람이 억압받고 학살당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자유세계'의 시민들은 침묵한다. 자유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미국은 10년을 끌어온 전쟁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고, '국제사회와의 연대' 차원에서 적지 않은 병력을 보낸 우리나라도 미군의 철수 결정이 내려지자 영화 같은 작전을 수행하며 함께 철수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무기를 지원해야 할까, 병사를 파견해야 할까?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의 전쟁도 불사해야 할까? 우크라이나인들이 원하기만 하면 그들의 자유를 위해 얼마든지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시켜줄 것처럼 얘기하던 서방 국가들은 그런 섣부른 약속의 결과로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이제 와서 간접적으로 돕고는 있지만. 애초에 전쟁을 막으려는 적극적 노력도 하지 않았고 지금 최후의 전쟁을 불사하며 나서지도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자유 시민의 연대'라는 구호가 현실에서 얼마나 일관되지 못하게 실천되는지, 또 얼마나 많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지를 지적하는 것이다. 부디 우리의 새 대통령이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에 대해 책임지려다가 자기가 우선해서 책임져야 할 나라의 국민에 대해 무책임해지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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