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대머리가 불편한 이유는 대머리여서가 아니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01.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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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머리가 될 것을 예감한 것은 20대 후반의 일이다. 모친이 물려준 유전인자가 환경적 요인과 결합해 정해진 때보다 일찍 발현한 것이다. 석회 성분이 많은 베를린의 물과 독일어로 공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그 이른 발현의 원인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미용실에서 정기적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하루는 미용사에게 이 상황에서 어떤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좋겠냐고 물어봤다. 정직한 미용사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를수록 중심과 주변의 농도 차이가 덜 두드러져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뒤로 나는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기계를 사서 집에서 혼자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머리가 되어가는 과정은 주위의 관심 때문에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주위의 한국인 학생들이 내심 즐기면서 나의 모발 건강을 걱정해주었지만 내가 비교적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그 과도기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사회에 흔한 대머리들과 그들을 아무런 차별 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덕분이었다. 오히려 내가 대머리임을 의식하고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였다. 나의 헤어스타일을 본 부친의 첫 마디가 "진성아, 그래도 머리는 좀 길러라"였다. "물려주신 유전자가 대머리여서 부득이하게 짧게 깎은 것입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반대했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려면 그런 헤어스타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이주일이나 전두환의 헤어스타일이 점잖은 대머리 헤어스타일이었다.

내가 지난 20년간 지금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에서의 다른 경험과 대학이라는 특수한 활동 공간, 덜 못생긴 두상 덕분이다. 한국에서만 줄곧 생활했고 남의 시선을 조금 더 의식해야 하는 일을 했고 두상마저 못생겼다면 내가 대머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상태를 벗어나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탈모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각자 유용하다고 여기는 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고통의 원인이 탈모 자체인지, 아니면 탈모와 무관하게 사회가 만들어낸 것인지 묻고 싶을 뿐이다.

머리카락이 없으면 불편하다. 머리를 보호해주는 털이 없어서 어디 부딪히기라도 하면 훨씬 더 큰 상처를 입고 추위와 더위에도 취약하다. 이런 불편은 약한 시력을 안경으로 보완하듯이 모자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차별적 시선에 대한 보호책은 대머리가 안 되는 수밖에 없다. 흑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그대로 둔 채로 흑인이 그런 시선으로부터 보호받는 방법이 자기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흑인인 것이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듯이 대머리인 것도 질병은 아니다. 물론 질병인 대머리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연스러운 대머리조차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만들고 감추어야 할 수치와 벗어나야 할 상태로 만드는 것은 탈모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오히려 그런 사회적 환경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결합해 질병으로서의 탈모까지 낳고 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에 근거해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이재명 후보의 주장이다. 나도 동의한다. 남녀의 성이 그렇듯 동성애나 이성애 역시 자신의 선택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대머리는 더욱 그렇다. 스스로 선택해 대머리가 되는 사람은 없다. 탈모 인구가 많건 적건 간에 도대체 누가 그 사람들을 탈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애쓰게 만드나?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하지만 질병에 해당하는 탈모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스러운 탈모조차 우리 사회가 질병처럼 취급하고 그 '질병'을 각종 기술로 '치료'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탈모 치료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아직은 검토중인 공약에 비판적이다. 대머리가 불편한 이유는 대머리라는 사실이 아니라 대머리를 이상하게 보는 차별적 시선이다. 모든 문제를 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단순 근대적 접근은, 지금 우리가 기후위기와 코로나19를 통해 확인하고 있듯이, 인체에나 사회에나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모두가 환호할 때 소수 의견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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