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지속적 패권의 비결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1.04.25. 12:25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의 우위가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중국의 추격세가 심상치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30년 전 미국은 소련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했다. 최후의 승자일 것만 같았던 미국은 30년 뒤 중국이라는 새로운 도전자를 맞게 되었다. 이번 경쟁에서는 누가 승자가 될까? 과연 무엇이 승패를 가를까? 우리가 이 경쟁의 추이를 속 편하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도, 그러나 또한 우리나라 정당 정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패권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제국'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독일의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가 쓴 책은 유럽인의 시각에서 쓴 것이어서도 말 그대로 조금은 더 객관적이다. 뮌클러는 동서고금의 제국들을 비교 분석한 뒤 거기에서 제국적 지배의 등장과 지속, 붕괴의 논리를 찾아낸다. 제국은 기본적으로 중심부와 주변부, 바깥이라는 동심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제국이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것이 주변부라면, 제국이 지속되는 데 결정적인 것은 중심부이다. 주변부의 권력 공백이나 불안정이 중심부의 팽창을 유인하는 요소라면, 중심부의 야심은 팽창을 추진하는 요소이다. 이렇게 한번 팽창한 힘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제 중심부의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 변화를 뮌클러는 로마가 제국으로 변하는 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황제의 이름을 따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고 불렀다. 이 문턱을 넘어서야 비로소 제국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제국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의 중심이 되는 시민 집단이 보편적 사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타인을 기만하는 위선적 이념이 아니라 자신도 철저히 그것에 복종하고 헌신하는 종교와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런 보편적 사명이 있을 때 주변부에 대한 착취와 중심부 엘리트의 부패가 방지될 수 있고 주변부에 대한 물질적 양보와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주변부에 실질적 이익이 주어지면 중심부가 표방하는 이 보편적 사명이 신뢰를 얻게 되고, 그러면 중심부로의 인재 유입이 이어진다. 이들이 차별 없이 능력에 따라 중심부 엘리트로 받아들여질 때 중심부의 시민 집단이 양적·질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이나 중국 제국의 역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20세기의 일본과 미국의 팽창 사례만 비교해보면, 그리고 냉전기 미국과 최근 미국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지속적 패권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 이념의 존재와 그 이념의 정당성을 몸소 입증하는 중심부의 자기희생, 그리고 포용을 통한 중심부의 인적 재생산이다. 이 요소들을 중심에 놓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살펴보면 오히려 이 두 나라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투스의 문턱' 개념을 통해 우리는 현재 한국의 정당들이 가진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지난 4월 7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한 뒤 그 패인에 대한 해석 경쟁이 한창이다. 작년 총선에서의 승리 후에 이제 유권자 지형이 바뀌어서 20년 집권도 가능하다고 말했으니 민주당으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까지 보수 정당의 패권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패권의 안정적 지속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보수 정당이 과거에 패권을 상실한 이유는 민주당이 지금 패권을 상실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30년 전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섣불리 '탈이념의 시대'를 외쳤다. 각자의 이익 추구가 자연적으로 조화될 것이라는 환상은 지난 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이미 깨어졌지만, 이른바 '탈이념'의 시대에 사람들은 그 깨어진 환상을 되살려냈고, 그 결과는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심각한 불평등과 양극화, 그리고 환경 파괴이다. 각 사람과 각 나라의 이익 추구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이념이 절실하지만, 지금 그 이념의 존재는 불분명하고 그 이념의 힘은 너무도 약하다. 국가도 정당도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보편적 이념을 제시하고 그 이념에 자신이 먼저 복종할 때 패권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계속해서 그 패권을 보유할 수 있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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