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잠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김정호 법무법인 이우스 변호사 입력 2021.04.18. 13:36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세속적 가치추구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세속적인 가치에 너무 집착하고 매달리면 추하다. 반면에 세속적 가치를 너무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멀리 하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철이 들고 세상을 알아 갈수록 진정성을 가지고 정의와 원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순식간에 바꾸는 속물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결국 이익을 보는 모습도 자주 접하게 된다. '진정성'이 번번이 '속물성'에게 밀려서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속물성'만 가지고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허망하다. 아무리 가식과 속물성이 이익을 보고, 진정성이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우리는 내면 깊은 곳에 '진정성'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양심이란 것이 있고, 우리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을 버리거나 옳고 그름을 헤아리지 않고 살다보면 꼭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리네 삶에서 속물성으로 드러나는 '현실'과 진정성으로 나타나는 '이상'은 늘 함께 공존한다. 신영복 선생은 그의 저서 에서 '이상'은 '현실'의 존재형식, 다시 말해서 현실(속물성)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이상화 되고, 반대로 이상(진정성)은 끊임없이 현실화 된다고 했다. 진정성과 속물성이 공존하는 삶이 우리의 모습이다. 세속적인 지위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대문 앞에 사람들로 가득차고(문전성시 門前成市), 세속적인 지위와 돈을 잃으면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더라도 그의 대문 앞은 참새그물을 칠 정도로 한산해진다(문전작라 門前雀羅).

이런 세태는 이미 약 2천 1백 년 전에 사마천이 '급정열전'에서 언급한 바 있다. 사마천은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서도 아침시장에는 밀물처럼 몰려드는 사람과 저녁시장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로 들면서 속물적 세태를 간파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소개되는 조나라의 장군 염파는 세상 사람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처럼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한탄하면서 이러한 행태를'시도지교'라고 하였다. 세상이 아무리 최첨단 기술시대로 진입하고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의 이기심과 본성과 인간관계는 2천년 이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사마천은 이미 기원전에 도적 같은 친구 적우(賊友), 놀 때만 함께하는 친구 일우(逸友), 마음과 어려움을 나누는 밀우(密友), 서로 존경하는 친구 외우(畏友)로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한비자는 춘추시대 교사(巧詐)의 상징인 위나라의 악양과 졸성(拙誠)의 상징인 노나라의 진서파의 고사를 통하여 교묘하게 속인다는'교사'와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성을 다하는'졸성' 가운데 졸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巧詐不如拙誠) 역시 기원전에 밝힌 말이다. 주자도 겉모습의 바탕만을 말하는 '사(史)'와 사람의 손때가 묻었지만 진정성을 말하는 '야(野)', 이 두 가지 가운데 '야(野)'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1천 년 전에 한 말이다.

이처럼 옛 성현들이 고전을 통해 후세에 전해주는 삶과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의식들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성과 속물성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면서도 순환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진정성과 속물성이 제각각 드러나기도 하고, 한 때는 진정성이 넘친 모습이었다가도 시간이 흐른 뒤에 속물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 인간의 한계일 것이다.

잠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진짜로 자고 있는 사람은 흔들어 깨울 수 있으나, 실제로는 잠을 자지 않으면서 잠자는 척하는 사람은 아무리 심하게 흔들어도 깨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진정성 있는 태도로 임하는 사람은 비록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그 잘못과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으나, 진정성 없이 가식적인 태도로 하는 척만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소통과 공감을 나눌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식으로 하는 척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행동하면 그 안에 해답이 있다. 많은 옛사람들이 사람관계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결국 '진정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식과 통속성으로 메마른 우리 인생을 촉촉이 적셔줄'진정성'은 우리가 살면서 내면으로부터, 반드시 길어 올려야 하는 마중물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진짜로 하지 않고 가짜로 하는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돌아 볼 일이다. 김정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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