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개인의 시대

@정지아 소설가 입력 2021.03.28. 12:55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통령이었고, 내가 경험한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그날 교실은 종일 울음바다였고, 한 아이는 얼마나 울었는지 혼절해서 양호실로 실려갔다. 그때의 우리는 국민에게 대통령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대통령은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는 줄 알았다.

사춘기였던 우리에게 권리 같은 건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부모와 교사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고, 어른들에게 몇 대 얻어맞는 것쯤은 당연한 줄 알았다. 교복, 귀밑 2센티미터의 단발머리, 감색이나 검정색 운동화, 군복 같은 교련복, 제식훈련, 한 여름 땡볕 아래 한 시간 넘도록 끝나지 않는 교장선생의 훈화, 학생이라면 누구도 거부해서는 안 되는 의무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양말 접는 간격까지 규제당했고, 남성의 욕망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올인원(위에서 아래까지 연결된, 혼자 힘으로 입고 벗기조차 어려운 거들) 착용을 강제당했다. 어디서도 우리의 권리를 알려주지 않았으므로, 그런 규제가 답답했지만 거부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사춘기의 우리들은 어린 우리에게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40년 전,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풍속도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개인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미성년자들은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동복지법이나 청소년법에 의해 가정과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내 자식이라고 해서 함부로 때리거나 굶기거나 정서적으로 학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노동자들 또한 노동법에 따라, 여성들은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다. 물론 법이 존재한다고 해서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완전히 보호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가 멀다고 학대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희롱당하고 추행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뉴스를 도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개인의 권리가 이전보다 확장된 것만은 명백하다.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개인 권리의 확장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까지 노예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마저 갖고 있지 않았다. 개인에게 거주이전의 자유조차 없던 시절이 있었고, 신분에 따라 교육조차 받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근대 이전까지 귀족 계급이 아닌 개인은 한낱 노동력에 불과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개인의 권리가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SNS나 블로그,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의 탄생과 성장에 힘입어 개인의 힘과 권리는 더 강력해지고 있다. 잘 먹는 것, 많이 먹는 것, 화장 잘 하는 것, 음식이나 의자나 뭐든 잘 만드는 것, 예전이라면 재능으로 인정받기는커녕, 공부도 못하는 게 밥만 처먹는다고, 화장이나 한다고 욕이나 얻어먹었을 사소한 개인의 특성이 소셜 미디어의 세계에서는 돈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한다. 사소한 능력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그것으로 돈도 벌 수 있는 것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염려가 없지는 않다.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모든 권력은 타락하고 부패한다. 개인의 권력 또한 마찬가지다. 블로그에 좋은 평을 써줄 테니 공짜로 음식을 달라거나 뒷돈을 요구하는 블로거나 유튜버들의 이야기가 이미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뜻밖의 떼돈을 번 아프리카 BJ들이 마약에 빠지거나 성적으로 타락했다는 기사 또한 자주 접할 수 있다. 개인의 권력은 공적 권력과 달리 강제할 사회적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세상이 원하는 뻔한 가치(학벌, 집안 등)를 따르지 않고도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다니, 참으로 통쾌하지 않은가!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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