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20%와 하위 20%, 무려 10배 차이
전남지역 농촌 소득도 양극화 날로 심화
인건비·자재비 등 감당못해 쌀 포기 늘어
보조금도 대농 위주 '중소농 대책' 절실
#사례 1
"저처럼 가지고 있는 논이 크지 않은 중소농들은 벼농사만 지어서 번 돈으로는 생활하기가 빠듯해요. 이렇다 보니 처음엔 농사만 짓는 전업농으로 시작했다가 투잡, 쓰리잡을 뛰는 겸업농으로 전환하게 되는 거죠."
전남 장성군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수철(45·가명)씨는 4년 전 1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 길에 올랐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벼농사를 짓던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농사일을 배웠던 기억에 40대 중반이 되면 고향인 장성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돕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그의 이상과 달랐다.
벼농사를 지어서 번 돈으로만 생활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논 25마지기(약 5천평·1.65ha)에서 일년 간 땀 흘려 손에 쥔 돈은 1천900여만원. 전체 소득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농지 임대료와 자재비, 작업비 등 경영비를 제외하면 순수익은 연간 1천300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특히 해마다 경영비마저 천정부지로 치솟다 보니 주머니 사정에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에 김씨는 지역 농가에 퇴비를 배달하는 일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농기계(트랙터·이양기)를 활용해 공동방제를 해주고 농작업을 대행해주는 일을 하면서 부족한 생활비를 채워갔다.
그는 "중소농들의 경우 벼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가 팍팍한 실정"이라며 "귀농의 꿈을 안고 왔을 땐 다들 전업농이 되리라 결심하지만 점차 농업 외의 소득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찾게 되는 게 현실이다"고 한숨 지었다.
이어 "그나마 수도작(벼농사)은 대부분 기계화돼 있어 다른 농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많이 들지 않아 다행이다"며 "하지만 이마저도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 농작업 대행을 맡겨야 해 작업비와 같은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사례 2
"벼농사 지어서 버는 돈은 연간 8억원 정도 돼요. 겸업은 하지 않고 오직 벼농사만 짓고 있어요. 최근에는 아들들도 농업에 뛰어들어서 삼부자가 함께 질 좋은 쌀을 생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전남 장성군에서 경운기 한 대로 시작해 40여년간 벼농사 외길을 걸으면서 억대 부농의 꿈을 이룬 이재갑(59)씨.
어릴 적부터 '농업인'이 꿈이었다는 그는 18살이 되던 해 경운기 한 대로 거친 논을 일궈나가기 시작했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에 일어나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작업을 반복하길 40여년이 지나 마침내 억대 수익을 올리는 부농이 됐다.
그가 짓는 벼농사만 논 1천마지기(20만평·66ha). 이곳에서 생산된 쌀 일부는 정부의 공공비축미로 수매하고 나머지는 자체 판매한다. 아울러 농촌진흥원에서 개발한 벼·보리 품종을 심어 종자를 내 국립종자원에 납품하는 일도 하며 연간 8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특히 벼농사에 필요한 농기계 20여대를 가지고 있는 등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음과 동시에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해 미작 농가에서는 보기 드문 부농이 됐다.
이씨는 "일반 농업인들이 2천만원에서 1~2억원 상당의 트랙터, 이양기, 콤바인, 방제용 농약 드론, 창고 등 벼농사에 필요한 기계와 기반 시설을 다 갖추기란 사실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농업인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인 공익형 직불제가 중소농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고 전남도에서는 농어민 공익수당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지원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농촌에 드리운 '소득 격차' 그림자
농가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농산물 시장 개방이 본격화되고 농촌 사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업 경영의 불안정과 농가 소득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전남에서도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와 판매 소득이 낮은 농가 간 소득 양극화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매년 인건비, 농지 임대료, 농자재 등의 경영비가 오르면서 견디다 못해 농업을 포기하는 영세 중소규모 농가(영세 중소농)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대규모 농가(대농)는 갈수록 늘어나면서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반적인 농가구 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연간 소득이 5천만원 이상인 대농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기준 전남 농가는 14만3천798가구로 2015년(15만141가구) 대비 4.22% 감소했다. 이 가운데 연간 5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농가는 2015년 1만716가구에서 2019년 1만2천861가구로 20.01% 증가했다. 특히 1억원 이상 매출을 기록한 농가는 동기간 3천423가구에서 4천671가구로 36.45% 급증했다. 반대로 연간 소득이 5천만원 미만인 영세 중소농은 2019년 13만937가구로 2015년(13만9천425가구) 대비 6.08% 줄었다.
이처럼 농업 소득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농사 외에 다른 일을 겸하는 겸업농가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겸업농가 중에서도 농업 소득보다 다른 소득이 높은 2종 겸업농가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2종 겸업농가는 2015년 3만2천471가구에서 2019년 3만6천486가구로 12.36% 증가했다. 이를 방증하듯 겸업 소득 또한 2015년 389만4천원에서 2019년 702만1천원으로 80.30% 큰 폭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탈도 많은 공익 보조금 제도
농촌인구 유출이 고착화된 상태에서 해마다 농가 수가 감소하는 등 농업이 쇠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농촌 지역에서 농업은 중요한 활동이다. 그러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영세 중소규모 농가들이 버티다 못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대규모 농가와 영세 중소규모 농가들의 격차가 분화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인구 감소 문제는 물론 지역 경제도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양극화 문제로 촉발된 농촌 사회의 부정적인 상황을 해소하고자 공익 보조금을 활용해 영세 중소농들의 소득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우선 정부는 농업인들의 경쟁력 제고와 소득 보조를 위한 제도인 직불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재배면적에 비례해 직불금을 지급하는 기존 직불제를 두고 대농 위주의 규모화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자 면적직불금과 소농직불금과 같은 영세 중소농의 소득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한 공익직불제를 시행했다.
공익직불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도 잇따랐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직불금 지급 대상 농지를 '2017~2019년 1회 이상 직불금 수령농지''2016~2019년 1회 이상 직불금 수령 농민'등의 제한요건을 정하면서 해당 기간동안 직불금을 수령하지 못한 농가들은 직불금 신청 조차 할 수 없게 돼 이를 개정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소유권이 복잡한 농지 등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수 없는 경작 농민의 경우 직불금을 받지 못하고 농지 소유주가 직불금을 부당수령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면밀한 제도 관리와 더불어 대상 농지를 확대하기 위한 예산 증액을 주장했다.
전남도도 이같은 농가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연간 60만원 상당 지급을 골자로 한 농어민 공익수당을 도입했다. 지난해에만 농어업 경영체 경영주 19만 1천541명에게 1천149억원이 지급됐다.
그러나 농촌 지역의 농업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재정적인 지원은 한계가 있다며 중소농 육성을 위한 대책 마련과 농외소득 창출을 위한 일자리 대책 마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농가 소득 자체는 증가 추세를 보여왔지만 소득 상위 20% 농가와 소득 하위 20% 농가의 차이가 10배 가까이 나는 등 사실상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와 같은 문제는 결국 농업 소득을 늘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대책이다"고 말했다. 이어 "공적 보조금을 활용해 소득 안전망과 경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차선책이다"고 설명했다. 이예지기자 foresight@mdilbo.com
[전남농촌 2021 리포트ㅣ인터뷰] "농가 소득 양극화는 지역 경제 문제"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경기 침체·인구 유출 가속화 우려 커져
공적 보조금 등 소득 직접 지원 효과적
"농가 소득 양극화 문제는 농가의 살림살이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침체와 인구 유출 등 지역의 문제로도 이해해야 합니다. 공적 보조금 등을 활용해 소득 안전망과 경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촌 사회의 농가 소득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공적 보조금을 활용을 제언했다.
영세 중소규모 농가와 대규모 농가 간의 소득 격차 분화는 농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 만큼 농업 소득을 늘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에서다.
유 연구위원은 최근 농가의 평균 소득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지만 이와 비례해 농가 소득 격차 또한 크게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농가 소득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평균 소득뿐만 아니라 소득 분포를 함께 봐야 한다"며 "예를 들어 농가 100가구가 있는데 모두가 똑같이 4천만원을 번다고 하면 이들의 평균값은 4천만원이지만 반대로 20가구가 1억원씩 벌고 80가구는 2천500만원을 번다고 해도 평균값은 4천만원이다"고 말하며 후자의 경우 80% 농가는 소득 문제에 시달린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최근 소득 상위 20% 농가와 소득 하위 20% 농가의 차이가 10배 가까이 나는 등 사실상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는 다수 농가가 생계를 유지하거나 이듬해 농사를 꾸릴 만큼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농가 간 소득 격차 분화의 원인으로 소득이 적은 농가의 열악한 경제적 여건이 구조적으로 나아지기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유 연구위원은 "농업 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농지를 늘려야 하는데 사실상 농지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매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농지를 임차하기도 만만치 않다"며 "특히 시설을 들여 이른바 고소득 작목을 키우려고 해도 소득이 적은 농가의 경우 초기 자금 마련이 어려운 것은 고사하고 불투명한 미래와 부담스러운 시설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소득이 적은 가구는 대체로 가구원 수도 적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코로나19 장기화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농촌 지역에서도 일자리가 줄어드는 양상을 보여 농외활동을 해 소득을 올리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지역 경제와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많은 농가가 농사로 삶을 일구기 어렵다는 판단에 농사를 그만둔다면 농업 부문 고용도 줄어들고 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지출도 줄면서 지역 경제도 침체될 수밖에 없다"며 "더 나아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타지역으로 떠난다면 상권이 침체되는 것은 물론 농촌 인구 감소로도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생산 기반 정비, 기술 전파 등의 기능 지원보다 소득 직접지원이 더 긴요하고 효과적이라고 역설했다.
유 연구위원은 "영세 중소농의 경우 열악한 수익 구조 속에서 작목 전환을 꾀하기도 어렵고 경영비와 생산비도 스스로 정할 수 없어 농업 소득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며 "겸업을 통해 생계를 꾸리는 방식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만 현재 농촌의 일자리 여건을 생각하면 녹록치만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최선은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차선책은 공적 보조금 등을 활용해 소득 안전망과 경영 안정망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물론 '무료 지원'이 돼서는 안 되고 농사를 짓는다는 최소한의 조건 하에 실시돼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예지기자 foresight@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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