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전통으로 엮는 '영광굴비' 천하일품

입력 2021.11.10. 15:41 김봉일 기자
[숨은 농어촌 스토리, 부농을 찾아서]
영광 굴비장인 서민성씨
서민성씨가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작업장에서 섭간하는  ‘영광굴비’는 일반 굴비와는 차원이 다른 풍미와 깊은 맛을 자랑하고 있다.

[숨은 농어촌 스토리, 부농을 찾아서]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귀한 음식

차원 다른 풍미와 깊은 맛 자랑

할아버지서 아버지로 또 자신에게

눈물로 온몸으로 가문의 비법 체득

명실공히 지역 대표 자존심 지켜가

섭간부터 건조까지 쉬운 것 없어

최상의 맛 깨닫는데 10여년 걸려

참조기 수확량·감소김영란법 영향

국내 판매 부진에 해외로 눈 돌려

말레이시아 수출로 새 가능성 엿봐

"최고의 맛과 최상의 품질로 보답

어렵더라도 대강대강 하지 않을 것"

별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공기쯤은 게 눈 감추듯 해치울 수 있는 짭조름하고 감칠맛 나는 굴비. 그 굴비는 지방질이 적고 철분 등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해 예로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영광군 법성면 법성포구 일대에서 가공된 '영광굴비'는 일반 굴비와는 차원이 다른 풍미와 깊은 맛을 선보여 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법성포 특산품인 '영광굴비'가 단연 인기를 끌면서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이유다. 한 두름에 많게는 100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굴비세트(10마리)가 이를 방증해 주고 있다.

영광 법성포 진내리에서 전통 방식대로 영광굴비의 가업을 3대째 잇고 있는 서민성(48·범진유통 대표)씨는 맛과 영양이 풍부한 최고의 영광굴비를 만들어내는 굴비 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서 대표의 영광굴비를 시식했을 정도였으니 가히 천하일품이 아니었다면 그랬을까 싶다.

그는 할아버지의 굴비 가공기술을 온몸으로 익힌 아버지 서기복(73)씨로부터 30여년간 명품 굴비로 만들어내는 서씨 가문의 비법을 체득했다. 때론 호된 질책에 못 이겨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때론 진저리 나는 치다꺼리의 답답함을 견뎌내며 이제는 명실공히 영광 전통굴비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

3대째 내려오는 전통방식으로 섭간중인 영광굴비 모습.

◆ 명품굴비 비결, 열정과 세월의 경험치

대를 이어 그가 본격적으로 굴비가공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93년 초. 그때까지만 해도 엄청난 상업용 냉동고와 중량 선별기 등의 시설이 흔하지 않았던 터라 일일이 수작업에 의존, 날밤을 새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법성포구 경매로 낙찰받아온 참조기의 길이와 크기, 무게에 따라 선별작업을 거쳐 3~5년 동안 간수를 뺀 영광산 천일염으로 아가미와 몸통에 적정량의 섭간(참조기에 물기 없이 소금뿌리기)을 하기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다 조금 실수라도 할 경우는 짜디짜고 맛없는 굴비로 변했고, 신경을 쓴다 했건만 선도와 맛이 형편없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항상 말할 수 없는 중압감이 머리와 가슴을 짓눌렀다.

또 6~10시간가량 염장된 참조기를 크기에 따라 10마리와 20마리로 엮은 후 깨끗한 물로 서너 차례나 세척하고 덕장에서 숙성하는 건조작업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천일염의 양과 염장시간을 적절하게 조정한 뒤 해풍으로 말리는 일체의 작업도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의 손맛과 정성이 맞아 떨어져야 질 좋고 맛있는 최상의 굴비로 탄생한다는 노하우를 깨달아가는 시간이 무려 10여년이었다.

"최상의 굴비로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정말 지난함 그 자체였습니다. 솔직히 어떤 정형화된 공식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참조기의 크기와 중량에 따라 눈과 손끝으로 헤아리는 섭간을 하면서 이를 눈으로, 가슴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세척방법과 건조방법 또한 어느 정도의 룰은 있었지만 마찬가지였어요. 그저 손끝으로 섭간하려는 적정량을 정해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는 "명품 굴비를 만들어내는 첫 번째 비결이 열정과 지나간 세월의 경험치"라면서 "흔히들 맛있는 음식의 생명은 손맛과 정성이라고 말하는데 참조기에서 굴비로 태어나는 것 역시 똑같은 이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굴비 가공업체들마다 손맛과 기법이 제각각이어서 굴비 맛이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일단 어떤 업체의 입맛에 길들여져 있느냐에 따라 그 굴비 맛이 최고라고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요즘은 그나마 크고 작은 참조기를 가려내는 선별기와 영하 20℃까지 꽁꽁 얼게 하는 급속 냉동창고가 있어 굴비 작업이 훨씬 수월한 편이다. 목포와 여수, 제주 등 국내 연근해에서 어획한 참조기 전량을 곧바로 냉동창고에 보관, 필요할 때 해동→선별→염장→엮기→세척→건조과정을 거쳐 굴비 만드는 일을 계속 진행한다. 해동부터 세척작업은 사흘이면 충분하다. 법성포 덕장에서의 숙성 건조작업은 특수한 기후조건(기온 10.5℃, 평균 습도 75.5%, 풍속 4.8㎧)과 서해에서 불어오는 겨울철 하늬바람으로 40일~100일 가량 말리면 최상의 '영광굴비'가 탄생한다. 쫄깃하고, 고소하며, 영양이 풍부한 동시에 식감마저 부드러운 '영광굴비'로 태어나는 것이다.

"아버님이 70년대 중후반까지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를 영광 천일염에 절이고 말려서 굴비로 만든 다음, 영광 장날을 비롯해 함평, 장성, 문장 등 인근 지역 장날에까지 가셔서 파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법성포구 진내리를 중심으로 굴비를 파는 노점상과 주막이 즐비해 자연스럽게 진내리 일대는 굴비골목으로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는 영광에 현존하는 굴비가게는 400여곳에 이르고, 진내리 일대에만 족히 150곳은 넘을 것이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법성포구 진내리가 '영광굴비'의 표상 같은 곳이라는 얘기다.


◆ 오사리굴비, 맛 으뜸…환경 변화로 감소

"봄은 참조기와 함께 찾아옵니다. 참조기가 칠산 앞바다를 지날 즈음이 봄이었으니까요. 4월 한식과 곡우를 거치는 사이 산란이 시작되고 곡우절에 잡히는 참조기가 보물과 같았으니까요. 알이 꽉 들어찬 참조기는 '오사리' 또는 '오가 잽이'로 일컬어졌습니다. 참조기에 소금을 뿌리고 해풍에 말려 먹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집니다. 그것이 요즘 말하는 '오사리굴비'입니다. 말리는 작업이 얼추 끝나면 파시(波市)로 이어지고 봄철도 끝나 갔습니다. 여름의 시작과 더불어 겉보리를 수확할 무렵, 애써 말린 굴비가 후텁지근한 날씨로 곰팡이가 쉽게 피었습니다. 선조들은 겉보리와 굴비를 켜켜이 쌓아 항아리 안에 넣었습니다. 겉보리는 말린 굴비의 수분을 흡수하거나 침투하는 현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이 '마른굴비' '보리굴비'의 효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형 냉동고의 보급과 함께 '보리굴비'의 명칭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남획과 어장 환경의 변화, 불법어업 등이 횡행하면서 칠산 앞바다는 물론 남해안 연안에서조차 참조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서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어획량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어느 땐 경매장에서도 참조기를 구할 수 없는 현상이 빚어졌고, 그런 모습은 3년 주기로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환경적 요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영광굴비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고, 참조기보다 가격이 저렴한 '부세'를 숙성시켜 '보리굴비'로 일상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주로 중국에서 잡은 부세는 법성포 등 국내로 유입돼 참조기와 거의 비슷한 공정을 거쳐 '보리굴비'로 판매되고 있다. 부세는 주둥이 끝이 둥글고 몸이 더 통통하면서 살이 많다는 특징을 지닌다. 비슷한 크기의 참조기와 비교해 가격은 ⅓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서 대표는 사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인 지난 2016년 9월 중순까지 연간 5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잘나가는 굴비가공업자였다. 하지만 법이 시행되자마자 매출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광굴비는 주로 선물용으로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납품 등 오프라인 물량과 판매처를 늘리려 부단히 노력했는데도 헛수고였다. 대부분의 영광굴비 가공업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판로 확보에도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굴비판매의 특성상 대부분 현물을 보고 사려는 인식으로 그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김영란법의 선물 상한가가 조정되면서 매출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느닷없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순식간에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답답함과 한숨이 늘어갔다.

최근엔 부세마저 어획량이 줄어 가격이 상승했다. 서 대표는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하나 요즘 고민에 휩싸여있다. "뭔가 판로개척은 해야 하는데 해외에 눈을 돌려볼까 계획 중입니다. 우연찮게 말레이시아로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보내봤더니 좋은 반응을 나타내고 있어서입니다. 이제는 다른 나라에도 수출길을 열어볼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절대로 대강대강 가공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앞으로도 늘 최고의 맛과 최상의 품질로 고객에게 보답하는 영광 법성포 굴비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런 말을 전하는 그의 두 눈엔 어느새 비장함과 함께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소비자들이 좋은 굴비를 고르는 요령과 관련, ▲몸체와 표피에 상처가 없고 깨끗한 것 ▲크기가 일정하고 고른 것 ▲색깔이 자연스럽고 고유 색깔을 유지하는 것 ▲적당한 윤기가 있고 건조 상태가 너무 심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언제나 굴비의 맛과 품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굴비장인 서민성씨. 바다와 햇빛, 바람 그리고 시간이 빚어내는 자연의 선물인 '영광 법성포 굴비'로 그가 간절히 바라는 미래에의 모습이 활짝 펼쳐졌으면 좋겠다.

김봉일기자 amazingreporter@gmail.com·영광=한상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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